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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희 Oct 11. 2015

녹두꽃과 기생충

우리는 언제를 "어려운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가깝게는 세월호 사건 때에도, IMF때도, 6.25 전쟁 이후 수많은 사건과 어지러운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어려운 시기라고, 우리는 다 지나갈 거라고 말해왔다. 좋아질 거라고 말이다. 살다보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오고,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한치 앞의 일도 알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거대한 세상에서 아니 온 우주 가운데에서 정말 작은 '나'라는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그 순간을 맞이했을 때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싶고, 만나고 싶었다. 그때의 나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름도 몰랐던 나라에 와서 살다가 이 땅에 묻혀있는 선교사들의 무덤은 다시 물었다.

"당신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나요?"

내가 너무도 중요한 나는 그럴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직 믿음 하나로 낯선 "조선"에 왔던 선교사들의 믿음 앞에 나는 부끄러웠고,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괜찮다는 말씀에 위로를 받았다.


정말 살기 어려웠던 19세기 조선, 뺏는 자와 빼앗기는 자만 존재했다. 19세기의 조선에 왔던 외국인들은 양반들을 "기생충"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스스로 담배대조차 들지 않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양반은 백성들의 피를 빨고 사는 기생충처럼 보였던 것이다. 양반들의 끊임없는 핍박과 대가없는 노동과 세금, 혹독한 부역은 1894년을 지나며 운명이라 순응하던  호남의 농민들을 일어나게 했다.  온갖 미신들과 무당에 매여 있던 농민들은 동학을 믿고 싶었다. 믿음이 필요했고, 믿음이 생긴 농민들은 꿈을 꿀 수 있었다. 꿈꿀 수 있었던 그들은 한달 만에 호남을 휩쓸었고, 전주를 점령했다. 힘없는 조선은 농민을 진압하기 위해 청국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인천항으로 밀려왔다. 결국 농민들은 청나라와 일본의 군사 주둔을 막기 위해 서울로 진격하지 않고 조선 정부에 폐정개혁안을 요구하고 전주 화약을 맺었다.

그리고 해산했다.

집으로 돌아간 농민들은 약속대로 개혁을 추진했지만, 정부는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조선은 동학농민군의 해산 이후 군대를 철병할 것을 일본에 요구했지만, 일본은 전라도에 조사관을 파견하여 시간을 끌고, 극우파를 동학군에 잠입시켜 동학군을 자극해 전쟁이 계속되게 했다. 결국 일본은 철병대신 청국에 조선의 내정을 공동으로 개혁하자고 제의했다. 청나라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단독으로 내정개혁을 강행하며 조선을 지배하려는 더러운 속셈을 드러냈다. 청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894년 7월23일 경복궁을 점령했다.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동학 농민운동과 청일전쟁으로 힘없는 농민들과 아이들과 여자들이 죽어갔다. 핍폐한 조선 땅 위에서 일어난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은 조선을 더 참담하게 만들었다. 참담한 조선은, 무능한 정부는 "조선인" 백성에게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조선인"백성은 모두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그저 쉬운 "먹잇감"이 되버렸다.


전쟁 동안 서울에 모여 있던 선교사들만이 조선의 여인들을, 버려진 아이들을, 병든 사람들을, 쫒기는 사람들을 "먹잇감"이 아니라 돌봐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불안한 나날들 가운데에서 7명의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했다. 전킨 선교사는 서대문쪽에서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고, 레이놀즈는 남대문쪽에서 사역을 시작했으며, 리니데이비스 선교사는 아이들과 여인들을 섬겼다. 그리고 테이트 선교사와 북장로교의 마펫과 닥터 홀 선교사는 전쟁이 끝나기도 전부터 평양에 돌아가서 층층이 쌓인 시체들을 치우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그 대가로 모두 말라리아를 앓아야 했다. 시체가 썩는 악취로 가득한 평양에서 북장로교의 의료선교사로서 사람들을 돌보던 닥터 홀은 말라리아와 발진티푸스로 결국 숨을 거두었다.

전쟁의 끝에 남은 것은 쌓여 있는 시체들과 구더기들과 전염병이었다.


동학농민군은 패했다.

일본에 패한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일본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물러갔고,

일본은 스스로 조선 정부의 고문이 되어 조선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잎이 떨어지고 녹두꽃이  스러졌다.

전염병은 잠잠해지고


겨울이 왔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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