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행복의 이유

by 일요일의 조작가

종훈은 우울한 기분으로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었다. 평소와 같이 수많은 승객들과 함께 뒤섞였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붐비는 지하철에 매일 아침 피로한 몸뚱이를 싣는 것이 유쾌한 일상은 아니었지만, 종훈은 오늘따라 유난히 불쾌하다는 느낌이 들어 곰곰이 어제를 되짚어 보았다.


어제 아침에 올린 사업보고서 최종안에 부정확한 근거 자료가 첨부된 것을 발견했지만, 나머지 내용이 타당하다고 판단되어 그대로 제출한 것이 찝찝해서도 아니었고, 오후에 팀장에게 그 근거 자료에 대해 질책을 들은 것 때문도 아니었다. 해당 보고서 수정 때문에 갑작스러운 야근이 생긴 것 때문도 아니었고, 그 때문에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골프 레슨이 날아가서도 아니었다. 늦은 저녁, 사무실에서 지친 몸을 끌고 나왔을 때 예보에 없던 폭우가 내려 새로 맞춘 정장이 다 젖어서도 아니었고 젖은 양말의 불쾌한 찌걱거림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도저히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비를 피해 들어간 이름 없는 바(bar)에서 예상보다 큰 지출이 발생해서도 아니었고, 그곳에서 대화가 잘 통했던 여성의 연락처를 얻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악천후로 인해 밤에 일반 택시가 도저히 잡히지 않아 카카오 블랙을 호출해서도 아니었고, 단지 택시에서 내릴 때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마침 보도블록의 요철에 부딪혀 액정에 금이 갔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휴대폰의 깨진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그나마 작동하던 액정이 완전히 나가버렸을 때, 종훈은 그것을 불행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종훈은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느 때보다 출근길이 한산하다고 느꼈다. 비 온 뒤 갠 하늘이 유난히도 맑았다. ‘휴가철이라 다 놀러 갔나 보네.’ 그러고 보니 냉방칸도 조금 더 쾌적했던 것 같았고 발 디딜 공간도 좀 더 넓었던 것 같았다. 빌딩 안으로 들어간 종훈은 평소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을 올라갔다. 출근 시간대에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혼자 탄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불안감이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종훈은 괜히 고장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8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자 종훈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온갖 변명을 생각하며 사무실 방향으로 재빠르게 온몸을 돌렸다. 불 꺼진 사무실이 고요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창립기념일 휴무’


종훈은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액정은 오늘 고치면 될 터였다.


-fin-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