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찻잔과 술잔

- 영화 헤밍웨이 인 하바나 -

by tea웨이



덥다. 여름의 절정이다.

블루 ,그 블루의 절정에 도달한 카리브해 블루빛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저 블루빛처럼 자기 재능의 끝까지 올라 서서 축배를 든

거장 들의 다음 단계는 무얼까


-축배의 술잔에서 고독한 혼 찻잔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


내 찻잔은

차 한잔씩 정성스럽게 담아 손님과 소통하는 중이다

문을 연지는 17여년......

첨엔 손님이 한명 오던 날도 있었는데 이젠 휴일에는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시는 분도 생길 정도이니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어떤 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 역으로

어떤 식으로든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차실 공간과 메뉴 ,로고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계획을 세웠다

새롭게 변화를 준다는 것은

결정 하나 잘 못하면 돈이 아깝게 날라가 버릴 수도 있고

“ 이전의 것이 더 낳은 데 ......”

바꾼 것이 더 최악의 선택일 수도 있다.

뿐인가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혼자 지는 일이라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쯤은 다른 나라 모방이 아닌 우리 만의 한국적인 디저트,

애프터눈 티세트 있어야하지 않나 ?"

"혼밥이 대세인데 찻잔도 이제 우리 식의 혼 찻잔 혼 다관이

나와야 되지 않나? 왜 작가들은 안 만들지 "라는

시골찻집의 찻잔으로는 과한 고민까지 하는 날엔

머리가 터지고 귀찮아 그냥 편히 지내고 싶은 유혹도 강렬했다

.내 찻잔은 고민 중이었다


그때 스승님의 추천영화 톡이 날라왔다

.-헤밍웨이 인 하바나 -

헤밍웨이 ...

그러지 않아도 오랜 만에 외출해서

생일 맞은 여동생과 밥 먹고 같이 보자고 골라놓은 영화였다

.이곳에서는 독립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어서 시간 맞추기도 힘든데

.톡 받고 몇 시간 후에 바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진정한 이심전심.이럴 때 소름...이라고 하나.


.영화는 블루도 블루의 절정 끝까지 가본 듯한

카리브해 블루빛처럼 자기 재능의 절정까지 도달한 거장 헤밍웨이 의

다음 인생은 어땠을까 ? 이야기였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젊은 신문사 기자가 문학적 멘토인

헤밍웨이에게 진심어린 편지를 쓰고 그 편지가 우여곡절 끝에 헤밍웨이에게 전달되어

헤밍웨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특별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교류하는데 그 기자가

지켜본 헤밍웨이의 만년 이야기로 실화다


영화는 솔직히 좀 아쉬웠다

유명인이 되고 난 뒤의 작가의 무기력을 표현한건지

작가이기 이전에 일상인으로서의 헤밍웨이를 말한 건지

쿠바혁명 당시의 사회참여로 인한 위기를 표현하려 한 건지 구성이 엉성했으며

주연 배우들 연기도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아쉬웠다

.

그러나 스승님이 아무 영화나 추천 하더냐

.늘 최고였고 이번에도 영상과 음악은 좋았다


특히 내 관심인 찻잔 스토리에는

-스승님과 감독님의 의도가 아닌 다른 시각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영화보다 의미가 있었는데 그건 이 영화 속 인물들이 든 술잔들 때문이었다



젊은 기자가 마감에 쫒겨 기사 쓸 때 들었던 커피 머그잔을 빼고는

영화 속 파파 헤밍웨이와 주변인들이 계속 들고 있는 것은 술잔이었다

영화 촬영 사진 속 소품들을 보시라

이 넘쳐나는 술병,술잔들


술잔

자기 안의 문학적 재능이 갈 수 있는 궁극까지 도달한 거장 헤밍웨이도 이후의

길에서 이정표를 찾아 방황했을 것이다

작은 찻집 조차도 변화는 힘든 건데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 거창한 거장의 세계에서는 더 더욱 이전의 영광을 버리긴 힘들었을 것이다


파파헤밍웨이 .

그럴수록 절정시간의 영광을 축하하는 팬들의 환호가 있는 파티장소 대신

. 홀로 동굴에 숨어들어가서 찻잔을 들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

그러면 자살까지 가는 불행은 없지 않았을까



술잔

술잔은 지금 ‘현실의 나’가 맘에 안들어

이전의 잘 나가던 힘있던 나

곧 다가올 성공한 스타의 나를

불러내고 싶을 때 꺼내는 잔이다.

이 맘을 구지 언어로 표현한다면 욕망이다.

이 욕망의 세계에서는 크고 힘있고 빠르고 화려한 것이 승자이다

늘 현재의 나보다 한껏 부풀려 지고 포장된 나 이어서

술잔이 오버해서 취하면 자기 내면에 숨어있던 최고의 권력자 코스프레를 하게 한다

권력자 코스프레는 복종할 추종자가 필요하므로 수평이 아닌 수직적인 관계

갑과 을을 만들고

권력자는 자기보다 과장해서 과시해야하고 추종자는 자기보다 쪼그라들어서

복종해야 하니까 이중적인 위선의 세계를 만든다

.


찻잔

찻잔은 술잔과 달리 나를 ,진짜 내 모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절절할 때 들게 되는 잔이다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면 깨달음 ,禪 의 세계

명상이라는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세계이기에

화려한 파티 공간보다는 혼자 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찻잔은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이기 때문에 서열이 없는 수평적관계이다

. 특별한 어느 멋진 하루 화려한 파티가 아닌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고

은둔 무명의 세계다

.


술잔은 찻잔보다 현실에서 화려하고 매혹적이어서 힘이 세다

.찻잔이 술잔과 마주치면 찻잔이 늘 깨진다

.내겐 아버지의 술잔이 그랬다

초등학교 졸업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추억이 짧다

딸들만 넘쳐나던 집에 첨으로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

깊은 밤중에 자던 딸들을 다 깨워 흥분해서 소식 전하던 아버지.

늘 밥 시간도 잊고 동네술집에서 막걸리 술잔에 빠진 아버지

아버지 모셔오는 심부름은 늘 내 차지였다

이미 만취한 아버지와 실랑이 끝에 아버지 손의 술잔을 뺏고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딸로 태어난 것도 왠지 죄인인 것처럼 느껴진데다 딸에게 찻잔까지

차려진 근사한 식탁을 제공하는 동화속의 아버지는 내 인생에는 없겠구나

로망의 홍차 찻잔이 내 안에서 산산히 깨지던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언니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이 지역 부촌 동네의 집

.당당한 양말 공장 사장 모습의 아버지 다

술잔 보다는 아마 다방에서 찻잔도 잡으셨겠지

나일론에서 면으로 바뀌는 시대 흐름을 못 읽어 실패했던 아버지

아버지가 술잔에 빠진 건 절정시절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런 건 아닐까

아버지도 찻잔을 들었으면 .....

다른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술잔을 든 아버지는 간암으로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 가장 잃은 집의 딸은 가장된 엄마와 동급의 가장이 되어 필사적으로

살아야했다

여유없이 ....찻잔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


술잔의 시대였다

내 인생도 계속 술잔에 깨져서 상처 입었다

술잔 안 든 남자는 왕따 당했으며 인맥에서 제외되어 승진도 하기 힘들었다

술상무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집들이 온 남편회사 동료들은 술잔을 들고 밤새 고스톱을 쳐

담날 내 출근길을 힘들게 했다

느끼했던 교감 샘은 회식자리에서

"어 이선생님은 넘버 77 줘?..까짓것 인심쓴다 .자 한잔 잘 따라봐 ”

궁녀들을 거느린 황제 코스프레를 해서 괴롭혔다

마음 속으론 욕과 잔인한 말을 잔뜩 품고

“ 아 영광이지요 ,ㅎㅎㅎㅎ”

술자리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꽉 막힌 여자가

안되기 위해 얼마나 기를 썼던가...


조르바 , 시저, 알렉산더 ...힘 있는 남자에 밀려

찻잔을 억압하는 술잔의 시대는 참 오래오래 갔다

마들렌과 홍차 찻잔든 프랑스 작가 는 밀려났다



그러다 만화책 속에서 고독한 미싞가라는 아저씨를 만났다

야망보다는 일상을 그냥 살아내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음미하는

신인류 아저씨! 단번에 푹 빠졌다

나만 그러한지 알았더니 딸도

...다른 분들도 좋아하나보다

인기드라마가 된 걸로 보아

..

그런가 하면

요즘 존경하고 배움을 청하는 내 스승님들이 찻잔 든 남자들이다

해운대 행다법의 숨은 고수선생님

지리산 산중턱의 젊은 청차 샘

구증구포 고민해가며 지리산 야생암차 만드시는 고차수 샘

.

카페에 앉아있는 남자가 점점 늘어난다

오래동안 독주했던 술잔은 쇠락해가고

찻잔이 기지개 펴는 시대가 된 것같다

.

미투 운동도 술잔의 부당함에 참다 못한

찻잔들이 깨어나는 것은 아닐까

.......


파파 헤밍웨이에게는 모히또 술잔 대신

골동찻잔에 귀한 지리산 야생암차 한잔




젊은 아버지에게는 지리산 청차스승님의

작디 작은 청차찻잔에 맑은 아리산 오룡 한잔


진심으로 우려드린다.


세상은

술잔에서 찻잔으로 바뀌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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