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흔 청춘노인, 여든 보통노인, 아흔 조금노인-
96세 곧 100세가 되시는 친정엄마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로망은 너무도 단순하다
저녁밥 잘 먹고,평온히 잠들 듯 세상을 떠나는 것.가장 소박해보여도 위대한 바람이다.
마지막날 그날도 여느 날처럼 혼자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나와 아파트 경로당까지 걷는다. 건물들 사이를 걸어서 도착한 경로당에 가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민화투를 친다. 늘 하던 대로 딸이 모아준 동전들을 여기저기 나눠준다. 오늘은 패가 좋다. 똥광에 비광 초약... 에고 형님.. 대박이여. 형님. 이번에 총무 된 정 oo가 서울에서 새로 이사 온 분 아들이 사 왔다고 닭튀김을 나누어 준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 아니 냉동된 것 데워먹다가 금방 튀겨온 것이라 바삭바삭 맛있다. 문득 둘러보니 내가 젤 나이가 많다.
썩을 것... 맨 첨 아파트 분양받을 때부터 같이 어울리던 8동 양반이 생각난다. 어찌나 억센지 며느리를 쫓아냈다고 소문이 나기도 한 분. 암으로 떠났다. 본인이 빨치산이었다고 나에게만 살짝 말했는데.. 활달하고 남자 같아 이 경로당을 쥐락펴락했다. 그때 그 그늘로 참 편하게 지냈는데... 이 형님이 나의 오른팔이었다면 또 늘 내 꼬붕처럼 나를 돌 봐주었던 3동 동생은 나의 든든한 왼팔이었다. 며느리가 가출하여 아들식구하고 사는데 항상 돈이 부족해서 내 생활지도사로 선정하여 푼돈이라도 벌게 해 주었다. 반찬, 청소, 병원진료 필요할 때마다 입의 혀처럼 잘 도와주었다. 그런데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다 끌끌... 내게 그렇게 잘했는데, 나 역시 자매처럼 먹을 것만 생기면 같이 나누어 먹곤 했는데... 나를 잘 알아보지도 못한다. 참. 자식도 취직하고 이제 잘 풀리나 했더니 팔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곳도 이제 젊은 사람들로 사람이 바꾸어져 나도 눈치가 보인다. 내 왼팔 오른팔이 사라져 나도 모르게 기가 죽는다.
오래 앉아있기 힘들어 자주 눕고 싶지만 이제 그런 노인들은 양로원으로 가라는 분위기여서 참고 견딘다. 힘들어 집에서 쉴까 해보지만 혼자 우두커니 텅 빈 집에 누워있는 것은 더 싫다. 자식들에게 힘들다고 좀 불평을 쏟아내면 화가 나서 새벽에 횡설수설 전화라도 하면.. 지들끼리 수군수군 치매 어쩌고 한다. 말해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자기네 시어머니처럼 노인유치원 가시라고 또 잔소리하겠지. 멀쩡한 나에게 치매노인 인 척해서 요양등급 따자고.... 내게 딴 길이 없으니 이곳이 내 유일한 놀이터다. 날마다 출근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머니의 귀가. 혼자 저녁을 드신다. 주로 갈비탕 집에서 사다 놓은 가지각색의 냉동된 갈비탕. 육식 그중에서도 갈비탕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서 자식들은 갈비탕 맛집을 방문할 때마다 갈비탕을 포장해 온다. 엄마 냉장고에는 가지각색의 갈비탕이 냉동되어 있다. 간단히 저녁을 드시고 티브이 연속극 보다가 그대로 주무시는 것. 날마다 들여다보는 같은 단지에 사는 아들의 문안인사를 아침에 못 받았으면 저녁에 받고 잠자리에 들어서 잘 주무신다.
그렇게 잘 주무시고 안 일어나는 것. 엄마의 간절한 마지막 꿈이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그저 저 녁밥 잘 먹고 자는 듯이 죽는
K국의 정식 노인 입문 나이는 65살이다.
그러나 65세는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 그래서 요즘은 70세로 올리자고 한다,
아니면 칠십은 청춘노인, 팔십은 보통노인, 구십은 조금 노인이라고 3단계로 나누어서 부른단다.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내 식대로라면 칠십은 청춘노인, 팔십은 중년노인 구십은 진짜노인..
당연히 청춘노인인 나의 로망과 진짜노인인 엄마의 로망은 다르다.
청춘 노인이 진짜노인을 보살피는 노노케어라는 이상한 단어도 만드는 시대이다.
엄마 아파트를 들어서자 익숙한 엄마의 향냄새 외에 낯선 냄새, 처음 보는 종이기저귀들
밤새 설사 하셨다 했다. 직감적으로 엄마도 나도 알아챘다. 이 방에서 자는 듯이 죽는 로망은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신 안락한 방과 편한 침대, 손주며느리가 혼수로 해 온 그 보들보들한 이불의 촉감은 굿바이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가슴이 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