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노인과 조금노인의 불안 -
어수선한 방. 이불이 나와있고, 못 보던 기저귀가 식탁에 놓여있고 밤새 얼굴이 반쪽 되신 엄마는 침대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한다
" 아침부터 어쩐 일들여. 누가 불렀어?"
" 내가.." 남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려. 기름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설사 나는 것 같고만 바쁜 누나들을 부르고 그래?"
"어여 가!"
친정 엄마의 당황하고 낭패스럽고... 공포스러운 얼굴 뒤에 숨겨진 화난 얼굴이 큰소리가 나왔다.
드. 디. 어 내 노후의 집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데 65년이나 걸렸다. 태어나자마자 전염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을 시작으로 물속에서 산속에서 도로에서 아찔아찔 생사 고비를 넘기면서 말이다. 그중 가장 클라이맥스는 아이들 따라나선 수학여행길에 관광버스 바퀴가 비탈길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죽을 뻔한 목숨을 이은 일이다. 한참 일하고 아이들 어릴 때 일이지만 그때 그대로 죽었으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길. 누가 성공이니 실패한 인생이니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는가? 일단 살아서 노후의 집에 도착한 인생은 , 모든 인생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내 노후의 집 문을 열기 전 까지는.. 그렇다 판도라 같은 내 문을 열기 전 까지는.
아직 노후까지는 멀었다 싶었는데 k국은 65년이면 노후의 집에 잠시 들어가 숨을 쉴 수 있었다. 70세쯤으로 생각하여 먼.. 먼 곳에서 일하다가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서둘러 오느라 배도 고프고 종일 씻지 못해 몸도 꿉꿉했다. 그래서 발걸음도 빨리 중간에 요기할 수 있는 간이 휴게소도 패스.. 오로지 냉장고 열을까, 목욕물을 받을까 그냥 침대에 죽은 듯이 잘까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달콤한 휴식을 고민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 바보!
그렇게 속고도 또 속다니. 그러면 그렇지. 내 인생이 언제는 내가 꿈꾼 대로 나타나 준 적이 있었냐.
유년시절엔 아버지의 죽음, 사춘기엔 엄마의 파산,..... 갱년기엔 사표 내고 인생 이막,
이번엔 또 어떤 놈이냐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막 다른 골목이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좋소.
젊은 시절 매혹적이어서 꼭 논문으로 쓰고 싶었으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결국 다른 시로 논문을 썼던 이 시, 이상시인의 시가 뜬금없이 생각나며 단번에 이 시가 이해가 된다.
불안이구나
날마다 채널만 돌리면 치매, 간병, 노후자금,......
그동안의 경험으로 인한 상상가능한 불안도 불안한데
우리에게 닥친 이 불안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놈이라
이게 내 편인지 나를 유리 아래 떨어트려 추락사시킬
적의 편인지 조차 구분이 안된다는 거지.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ㆍ0987654321
0ㆍ987654321
09ㆍ87654321
098ㆍ7654321
0987ㆍ654321
09876ㆍ54321
098765ㆍ4321
0987654ㆍ321
09876543ㆍ21
098765432ㆍ1
0987654321ㆍ
진단(診斷) 0 : 1
26. 10. 1931
이상 책임의사(責任醫師) 이 상 李 箱
[출처] 이상의 시 - 오감도 1호와 4호|작성자 숫자맨
2022, 1988, 1956,
0032656 *, F/65 ,15*, 5*, 120, 503, 36.5 , 404,
2468700, 2 , 1300000, 14 ,
54, D390, D271, N835....
지독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통증의 원인은 이미 알고 있었던 자궁 안의
혹이었다. 나이가 먹어가면 저절로 작아지기도 한다고 그냥 지내보자고 했던
혹이 더 커져서 주변의 다른 부위까지 문제를 일으켜 생긴 통증이었다
떼어내는 것 만이 해결책이라 하여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긴 시간을 병원이란 낯선 공간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는 찻집 공간이 일터인 찻집 주인이다
찻집공간은 안 보이는 마음들이 찻잔이라는 그릇에 담겨 오가는 곳이라
찻물의 온도도 20도 , 85도,..처럼 숫자로 분명하고 정확히 말하는 것은
신비감 상상 여력이 없어
-따뜻하게, 뜨겁게 , 차갑게, 시원하게 , 차맛이 다 빠질 때까지 ,
열탕으로 단번에, 천천히 , 느리게 -
처럼 애매모호한 언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물 멍, 사람 멍, 구름 멍, 찻잔 멍으로 떠나온 현실의 시공간을
잠시 잊으면서..
그러나 병원은 찻잔의 세계가 아니었다.
병원은 저 암호 같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숫자의 세계였다.
20대 때 그렇게 난해해 풀리지 않았던 이상의 0,1 숫자로 이루어진 진단서 시가
비로소 이해된다.
마음과 달리 몸의 세계는
내가 머물고 있는 시공간을 정확히 하나하나 클로즈 업 시켜서 소수점 첫째 짜리
까지 숫자로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0032656 *, F/65 ,15*, 5*, 120, 503, 36.5 , 404,
몸이 있는 곳이 정확한 병원이라는 증거인 환자 번호. 몸의 현실인 키, 몸무게. 병명. 혈압,
체온 내 정체성이 법적으로 아줌마도 아닌 어르신, 시니어라 일컫는 완벽한 노인이 된 것을
내 침대 옆 달아 놓은 명찰 숫자를 보고 알았다
보험사에서 받은 보험금액, 병원비 금액, 입원실 등급은
나이 들수록 내 몸이 치를 경제적인 대가가 생각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무거웠고 병원에서 먹은 밥그릇수는 병원이라는 공간은 찻잔이 아닌
밥그릇으로 움직이는 몸의 공간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다 쓰지 못했지만 질병코드 숫자는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았았던 곧 닥칠 내 몸의 미래를
예고편으로 극적인 부분만 보여주고 사라졌다. 내 몸은 유효기간이 있는 불안한 존재이며
그 유효기간조차 아주 아주 짧은 시간 만이 남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병원에서 마주친 동료 노인들을 보면서 결국
모두 어디 한 곳 장애인이 되어 통증과 지독한 외로움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끝이 나는 인생 여행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설상가상
이미 불치병 선고를 받은 내게
병원입원하라는 의사 진단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불안하다.
내 불안만 으로도 불안해서 엄마의 불안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엄마도 불안한 것이다
불안 ++이다
청춘노인인 내 불안과 조금노인인 친정 엄마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