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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짐덩이

-노후의 불안-

by tea웨이

몸이 이상해지면 병원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 찻집에 간다

연말이었다. 딸은 직장일에 결혼에 임신에 인생 최고 바쁜 한 해였다. 모처럼 얻는 휴가를 위해

큰맘 먹고 가장 핫하다는 스키장 근처 유명 펜션에 오래전부터 예약해 놓았다.

숙소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도 일하다 들어왔다고 했다. 모처럼 배속 태아와 남편과 오롯이 자기 가족만의 여유를 즐기고 느긋하게 늦잠을 즐기려는 중인데...


" 병원이라고? 알았어. 나 멀리 왔는데 좀 시간이 걸리겠네요"


모처럼의 휴식을 깨버린 내 병원행에 약간 까칠한 딸의 목소리.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보다 우선 서운한 감정... 이 앞서는 건.. 뭘까.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지? 누가 따라간다고 할까 봐? 난 지 무슨 일 있으면 한밤중 새벽 안 가리고 1초라도 빨리 갈려고 이 시골에서 택시 불러 타고 달려간 적도 있는데..

해마다 딸의 휴가에 초대되어 따라다닌 건 나였다. 내 마음을 울리는 공간을 만나면 꼭 그 자리에 딸을 데리 고재 방문했었다. 어떤 공간은 내 경제적 수준에 넘치는 공간이어서 부담이긴 했다. 그럴 때 도

" 내가 딸에게 주는 유산은 돈보다 경험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세뇌시키면서.

딸이 돈을 벌자 오히려 내가 되돌려 받은 게 저 경험 선물이다. 딸도 특별한 공간을 만나면 , 아니면 가고 싶은 특별한 맛집 공간에는 나를 동행했다. 그래서 내 인생 최고의 샷인 크루즈와 지중해 풍경도 남길 수 있었다.. 새삼 어린애처럼 그게 내가 아니고 뱃속의 아이와 사위인 것에 질투가 나 심통을 부리는 것이다..

늙은 사람이 지혜롭고 배려심 깊고 개뿔.. 모두 다 거짓이다

늙은 사람도 질투하고 자기가 중심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친정엄마가 내 결혼식 이후에 내내 섭섭해하고 눈물 훔쳤던 것이

가장 없는 가정에 내 월급봉투가 사라져 당장에 닥친 경제적 궁핍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매달 월급의 얼마를 친정에 꼬박꼬박 보탰던 것으로 내 할 일 다 했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이제 서야 깨닫는다.


내 말을 귀 닮아 듣고 내 도움이 필요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의미를 주던 딸은

이제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것. 오히려 엄마가 되어 엄마 역할을 하려고 하는 딸에게서

갑자기 쫄아들고 한없이 작아져서 젊은이들이 말하는 연금충, no人, 틀딱충, 할머니미... 가

된 느낌.

상실감이라 하는 감정이 이런 것이리라.

이전의 애벌레 같은 딸은 사라졌다. 벌써 딸은 껍데기 벗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나르는데

나는 그 껍질을 들고... 절대 돌아올 수 없는 내 기억 속에만 살아있는 애벌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애벌레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애벌레에게 영향력을 끼쳤던 젊고 힘있었던 젊은 나를 못 놓는 것이다.




자기 여동생에게서 엄마의 병원 입원 소식을 전달받은 아들도 늘 바쁜 사람이다.

아들 딸은 늘 바쁘다. 회사 건물 이전으로 바빴던 아들도 모처럼 쉬고 있다가 당장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아들 차로 이곳에 오려면 네 시간. 시동 걸고 출발하려던 아들을 말렸다.

가까이 있는 한 명이면 된다고...


아들은 바로 통장으로 송금을 했다.

병원에 실려온 누군가의 몸이 누군가의 휴가를 망치고 또 누군가의 통장의 잔고를 털게 한다면 그래서 평온한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면 그게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야말로 몸으로 만들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잠시 바람 쐬러 병원 밖으로 나와봐라. 응급실과 노인진료센터 앞 벤치에서 몸을 나눈 가족들이 자신들이 뺄 수 있는 간호시간과 자신들의 통장에서 얼마까지 참여할 수 있는지 상의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가끔씩 언성 높이는 쌈도 하는데

"짐덩어리를 왜 내가..." " 짐이 너무 많아서"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늙은 몸은 누군가에게 짐이다.

아침 뉴스에 우크라이나 11살 소년 이야기가 나왔다. 러시아 공습을 피해

홀로 1200km를 걸어서 친척집이 있는 슬로바키아까지 왔다는 이야기.

손목에 엄마가 써 준 친척집 주소를 이정표 삼아 문신처럼 새기고. 그 먼 길을.. 영상에 나온 두려움과 피로에 지친 얼굴이 안타까웠다. 다행히 친척에게 무사히 인도되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아들을 혼자 피난시킬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아들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그 아이 엄마는 자신의 늙은 엄마를 보살펴야 할 형편이라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엄마가. 폭탄 떨어지는 피난처에서 아들과 늙은 엄마 사이에서 얼마나 고뇌했을지.. 가슴에 후욱하고 뜨거운 것이 지나가고 눈물이 났다

그 할머니는 또 자신이 가족의 짐덩어리가 된 것에 얼마나 가슴이 메었을까.... 차마 죽지는 못하고.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자신을, 자식들 짐덩어리라 생각하는 친정어머님 생각이 난다

늘 빨리 죽어야 한다고 역설적인 언어를 쓰신다. 한 때는 내 든든한 백그라운드였고 만만해서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려도 다 받아주고 격려해 주던 엄마, 그 엄마도 이제 내 인생에서 잃었다. 다시는 못 만난다. 관절 때문에 고통스러운 몸은 나보다 더 늙고 마음은 아이 같은 엄마가 있을 뿐이다.


자식은 이미 우리 품에서 떠나 다른 곳에 둥지를 틀고.

부모는 보살펴야 할 약자로 돌아와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약자가 되어 가고 있는 중...


짐ᆢ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짐덩이가 되는 미래만 남은 노후 불안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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