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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돈이 됩니까? 돈이 됩니다

노인은 짐이 아닙니다

by tea웨이

어느 곳이나 요양원, 요양병원은 고요하다.

왜 고요할까?

늙고 아픈 몸과 싸울 마음이 다 시들어 버려서.

왜?

더 이상 길이 없는 막힌 길이라는 생각에.


미움도 욕도 화도 싸움도 아직 그래도 남은 희망이 있어야 그 희망의 길을 방해하는 것들과 싸울 에너지가 생겨서 밉고 욕도 화도.... 더 이상 길이 없는 막힌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 있던 생기도 사라진다

자주 거시던 엄마 전화가 횟수도 말수도 줄더니

"전화받아줘서 고맙다"라는 기본 문장에

"거기도 비 오냐?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변종하시는 것이 전부다


나 역시

어둡고 불안하고 희망이 없는, 길도 안 보이는 갑갑한 안개길. 아무리 열심히 달려 도착해도 끝은 희망이라는 이정표가 없는 막힌 길. 막힌 길을 왜 구태여 달리나?

존엄과 희망이라고는 단 한 줄기도 없는 일상에 잊을만하면 오는 통증과 굳음.. 그나마 나 스스로 내가 내 길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안락사는 희망으로 느껴졌다. 프랑스 미국 우리나라 영화를 열심히 봤다. 안락사 현장에 작가를 대동하고 가서 자신의 죽는 이야기를 기록해 달라고 하신 분도 계셨다. 그 작가의 기록을 적은 책도 읽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마지막 풍경의 아우라가 아니었다. 너무 삭막하고 건조했다.

조금 더 따뜻한... 맑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는 풍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엄마 따라 요양병원에 온 손녀가 다리를 찢어가며 춤을 추었다. 손녀의 엄마인 내 딸은 거의 할머니

손에서 커서 외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끔찍하다. 할머니가 정말 환해지시며 웃으신다. 응접실에 늘 무표정으로 앉아 계셨던 할머니들도 웃으신다. 모처럼 긴장되었던 내 어깨와 몸도 천천히 펴지며 오랜만에 느긋하게

앉아 본다. 저절로... 오랫동안 아픈 몸에게 눈치 보여 잠자고 있었던 상상이란 마음이 잠자다 일어난다




나는 어린 시절 학교가 싫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땡땡이치고 탈출해서 도망갈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겨우 한다는 짓이 몸은 그대로 둔 채 마음만 잠시 몸을 이탈해 다른 공간에 가서 살았다.

몸은, 착하고 어른들 말 잘 듣는 단정한 머리 쫑쫑 양갈래로 딴 여고생으로 위장했으며 우량권장도서만 읽고 읽어 가급적 있어 보이는 지적인 말과 단정한 말로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러나 진짜 내 안에는 늘 껌을 일부러 불량스럽게 질겅질겅 씹어대며 발까지 떨고 불량만화책, 야하디 야한 청춘로맨스소설, 무협지에 열광하고 가끔 담배까지 물고 욕도 맘대로 시원하게 배설하고 학교 수업은 출석일수만 맞추고 대부분의 시간을 삼남 극장 코리아 극장... 컴컴한 공간에서 야한 스커트 입고 죽치고 있다가 젊은 지도부 남 샘들에게 귀 잡혀서 치욕적으로 끌려 오는 그래서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언니들. 그 불량언니들이 내 안에 가득 숨어서 기회만 되면 현실로 기어 나와 나를 파멸시키려는 충동질을 했다. 위태위태했으나 다행히 안 들키고 무사히 청춘을 넘어왔다.

내 가슴속에서만 숨어서 잠자고 있던 이 껌 좀 씹던 언니들 참고 참다가 알고 보니 미국으로 이민 갔었나 보다. 역시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아니 미국으로... 껌 좀 씹던 언니들을 미국 영화 속에서 만났다. 이름도 델마와 루이스로 바뀌었다.

이 언니들 껌만 씹는 게 아니라 총도 쏘고 절벽을 나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더 멋진 언니들이 되었다.. 한동안 내 마음에서 나타났다가 어느 날부터 바람같이 사라져서 궁금했던 참이었다. 델마와 루이스가 코로나에 걸려서 죽었다는 선전지도 돌았다.


-내 몸이 짐이 되어 나중에 자식 고생시킬까 봐.. 해준 것도 없는데.. 걱정이에요-

단짝 단골 사우나 할머니들이 속삭인다

-에고 내가 오래 살아 니들 돈 축낸다-

친정어머니 모시고 온 딸들의 속삭임.


-우리 세대가 노인부양의 짐을 지어야 한다니 머 우리 같은 젊은이 한 명당 노인 몇 명이라고 말이 안 돼!

왜 우리 세대가 희생되어야 하는데 -

요가반 젊은 친구들.


지겹도록 듣고 들은 노인이야기가 오늘도 사우나에서 떠돈다.


노인이 돈이 안 되다니요? 아니요 , 돈이 됩니다.

정말 자세히 알아나 봤어요?

일단 어린 시절 껌 씹는 불량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서서 내 길이 진짜 막힌 길인지

차근차근 알아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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