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 포카라를 가기 전 말했다.
"너는 포카라를 참 좋아할 거야."
길고 긴 8시간, 9시간 걸리는 버스 여정을 거쳐 포카라였다. 며칠간 카트만두에서 갈 곳을 잃은 나는 포카라로 와야만 했다. 다시 찾은 카트만두는 첫 번째와는 제법 달랐지만, 카트만두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여러 곳에서 바쁘게 일어나는 낯선 지역이었고, 사람들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그래서 며칠 있다가 포카라행을 선택한 거다.
포카라는 길에서도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공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며칠간은 앱을 통해 예약한 숙소에서 지내다가 분위기가 밝아 보이는 호주 친구를 사귀게 되고, 우연적으로 자주 마주쳐 그 친구가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숙소를 소개받았다. 그곳이 구룽 하숙집이다. 이곳이 우리 여정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 인연이 만들어진 곳. 이렇게나 독특한 사람들이 어떻게 길을 걸어 이곳에 모여 있는지, 구룽 하숙집은 그리도 신비했다.
푸닛, 인도 요기
네팔은 철학자들로 가득하다. 히말라야를 품은 포카라는 본인의 믿고 있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푸닛을 만났다.
푸닛(처음에는 푸니인 줄 알았는데, 인도 발음으로 푸니 끝에 ㅅ, ㄷ, ㅌ 와 같은 소리를 붙여야 한다 했다)은 같은 층에 사는 하숙집 옆집 친구이다. 나와 장이 머물고 있던 곳은 알고 보니 장기투숙자들이 주로 찾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네팔의 민족 중 하나인) 구룽 가족이 운영하는 하숙집이었다.
푸닛 말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친구, 아이반은 카자흐스탄에서 인도, 네팔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몇 년을 왔다 갔다 했고, 그에게 인도는 또 다른 집이라 했다. 보통내기의 친구들이 아닌 게 느껴지는 비범함이었다. 아이반은 눈에 보이는 피부의 많은 곳에 타투가 있다. 그런 타투만큼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푸닛은 나에게 본인 소개할 때, 자메이카에서 왔다고 했고 나는 그의 살짝 보이는 미소로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탐지했다. 하지만 그는 자메이카 아프리카 계열이라고 해도 믿어질 듯한 외모를 지녔다. 드레드록 머리와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의 태도. 이후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장난을 종종 했다.
푸닛은 남인도 방갈로 출신이다. 지금은 여행자의 길이어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갈 거라고 한다. 그의 본업은 요가 선생님으로 십몇 년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다. 인도 배낭여행자를 쉽게 볼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여정으로 가득 차 있고, 이는 항상 쉽지만 않은 길인 듯했다.
그는 축구 선수, 골키퍼로서의 열정과 삶이 있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무릎 사고를 당한 후 선수로서의 삶은 끝맺었지만, 이후 그는 요가로 삶의 여정을 채워나갔다. 이제 여기서 그는 트래블러 여행자의 삶을 시작한다 했다.
그는 질문을 자주 하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평소에 그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듯한 질문들이다. 가령, 남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한 사람들은 일본인들과 가깝다고 칭하는가? 주변에 너처럼 사는 한국인에 대해 한국인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내 나이 정도면 보통 결혼하지 않았는가.
가령, 언제는 내가 “young generation, like me”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라고 칭하자 그는
“너는 너를 스스로 젊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니?
우리는 structure야, 이제 막 사회에 기둥이 되는 존재들. 우리는 이제 젊은 세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달라.
그리고 우리는 여행을 함으로써, 그 사회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는 전통과 역사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한국에 전통적인 ritual, 의식이 어떠한가에 대해 물어봤지만, 나 또한 아는 것이 그다지 없다는 것.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무속 굿, 판소리동영상을 함께 보았다. 이후, 우리의 전통성과 그 root, 뿌리는 무엇인가. 중요한 질문거리를 그는 나에게 던졌다.
그에게 있어서 깊이 있는 기초는 가르침의 전부였다. 항상 기초부터, 뿌리부터 근원을 알고 있어야 깊이가 있는 법. 그에게 breath workshop, singing bowl, 다양한 테라피들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어떤 것을 배우든 본질을 배우는 것. 깊이 있게 배울 것.”
푸닛은 나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이리도 선생이다. 선뜻 그가 수행하는 시간을 공유했다. 그의 기본에 충실한 가르침에 나는 이후부터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고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삶의 진실을 배웠다. 또는 그의 호기심 어린 질문을 통해 나 자신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세상의 흐름과 생각지도 못했던 제3국의 입장. 그가 자연스럽게도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인간관계를 맺을 때의 태도를 배웠다. 그는 어느 사람들에게도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그의 생각했던 것들과 어우러지며 융합된다.
이주 동안 포카라에서 쉬며 푸닛을 알아갔다. 어디를 가든 함께했다, 마치 어린 시절 친구처럼. 그리고 우리는 안나푸르나 서킷 트래킹을 함께 떠나게 되었다. ABC 트래킹을 할 당시에는 주로 장과 나뿐이었지만, 새로운 친구와 떠나는 여정 또한 남다르다. 이반은 며칠 있다가 그의 친구들과 떠난다 했고, 만남을 기약했다.
트래킹의 가장 큰 묘미는 찌꺼기로 가득 찬 나의 생각덩이를 싹 정리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트래킹은 명상과도 같다. 이미 ABC트래킹에서 나의 신체는 조금 단련이 되었다. 그럼에도 가는 길의 여정은 호흡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추워지기 시작해서인지, 꽤나 추위에 떠는 시간이 많았다. (걸을 때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이미 경험을 했었음에도 짐과 가파른 고도는 여전히 침착함을 요구한다.
푸닛은 나와 장과의 속도로는 전혀 따라잡기 어려운 빠른 발걸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주로 우리는 중간 지점에서 쉬어갈 곳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장이 함께 보내었다. 걷는 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명상에 빠져 있는 듯했다.
발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한 호흡 들이쉬고, 내쉰다.
너무 힘겹게 가파픈 곳을 가고 있을 때였다. 두 명의 네팔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에 하나가 나에게 쉴 새 없이 에너지를 나누어주었다. 나는 숨을 가파르게 쉬느라 정신도 없을 때였는데 말이다.
“천천히, 천천히”
Slowly, and slowly
“그러다 보면 너의 다리는 알아서 가고 있을 것이고, 호흡에 집중하면 돼. 몸의 무게에 집중하지 말고 호흡에 집중해 봐.”
많은 친구들이 격려를 하고, 천천히 가라 조언한다.
무엇을 그리도 서두르는가.
산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던져준다. 삶도 마찬가지이니, 그저 너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이듯, 자연스레 호흡을 하면 우리는 근심, 걱정, 성취해야 하는 무언가를 내려놓고 ‘현재’가 된다.
어느덧, 나는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추웠고,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도 저녁이 되면 행복하게 잠에 들었는데 말이다. 왜인지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기만 하고, 정작 나의 어느 누구도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듯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photo by Jean Batany(@jeanbat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