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건릉
가을엔 소망이와 융건릉에 갔었다.
19년도엔 결혼식을 마친 후였고,
20년도엔 소망이 뱃속에 선호가 있었고,
21년도엔 통통한 볼살이 귀여운 선호와 함께 갔다.
올해는 아쉽게도 타이밍을 놓쳤다. 융건릉에 갈때면 항상 청학동 칡냉면에 들러 장이 얼얼할 정도의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먹었는데, 올해는 청학동 칡냉면이 생각나지 않았다. 진미평양냉면을 먹어본 이후, 이제는 함흥냉면과는 섭섭하지 않은 작별을 했는지도 모른다.
대신 올해는 선호와 소망이와 서울대공원에 갔다. 단풍의 끝자락엔 화려한 붉은색과 허전한 나뭇가지가 교차했다. 나무도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비도 쏟아졌다.
“어-흥”, “어-흥” 우리가 울릴정도로 울던 호랑이를 보며 선호는 신이나서 한참을 놀았다. 추운 날씨에 엄마 품에 안겨 곤히 잠든 선호를 보며 지난 3년동안 융건릉에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삶에 대한 태도가 간명하게 드러난다.
“즐거움은 길게, 고단함은 짧게”
고생 끝에 낙이온다고 배워왔건만, 고생이 끝나고 나면, 아이는 성인이 되서 독립을 할 것이고, 나와 소망이는 조금은 얇아진 다리로 산책을 하며 노후를 대비할 것이다.
고생과 낙을 분리하려고 하면, 낙은 너무 늦게 찾아오게 된다. 아무리 육아의 고단함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고단함이 끝이나면-과연 끝이 있는 고단함일까- 살아온 날에 비해 살아갈 날이 너무 짧아 처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고생과 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 모른다. 보통 직업인으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육아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나와 소망이 또한 그렇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소망이와 함께 퇴근을 하면, 선호는 할머니와 엘레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엄마(아빠)를 맞이해준다.
까르르 웃음 소리와 함께 2시간의 육아와 집안일이 시작된다. 고단하지만 즐거운 시간이다. 분리되지 않는 고단함과 즐거움이 끈끈한 접착제가 되어 나와 소망이와 선호도 더 단단하게 이어진다.
선호의 끈끈한 코딱지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