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불운도 운이니까
창업을 꿈꾸거나,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스타트업에 재직 또는 재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보통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진입하지 않으려 하거나 다양한 이유로-예를 들면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하려 한다면 국회에 호출될 가능성이 높다- 진입할 수 없는 분야의 pain point를 공략하거나 비교적 음지로 여겨지는 사업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간혹 예외가 있는데, 아마도 APR과 토스(비바리퍼블리카)가 대표적이다.
최근 APR의 김병훈 대표가 아산나눔재단에서 개최한 '2025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데모데이'에서 성공 방정식에 대해 키노트를 발표했다.
https://youtu.be/q_NgaXK0l6c?si=9AfqTG27E1vc3N9h&t=1044
그가 말하는 성공방정식은 아래와 같다.
사업에서 성공하는 방법 (A) = 끝까지 해내기(x) x 성장하기(y) x 운(z)
위 영상을 시청하고 나니 토스의 이승건 대표의 데모데이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승건 대표 또한 "사업은 운이다."라고 비교적 단정적 어조로 정의하고 있다.
https://youtu.be/GZv6NwaEIxU?si=0BJ2YOCZy7sDzK8h&t=135
흥미롭게도 80년대생의 비교적 젊은 두 창업가 모두 사업과 운을 결부시키고 있다.
다만, '운'을 대하는 둣 사람의 태도는 달라 보이는데,
김병훈 대표가 말하는 '운'은 '행운'에 가깝고, 이승건 대표가 말하는 '운'은 '불운'에 가까우며, 김병훈 대표는 사업에 있어서의 '행운'의 범위와 영향력을 작게 말하고, 이승건 대표는 사업에 있어서의 '불운'의 영향력을 크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상투적인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스타트업 업계에서 전설을 쓰고 있는 사람들인데, 둘 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운'을 강조 또는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타트업의 성공과 '운'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듯하다-사실 사람의 인생이 그렇기도 하다-.
- 왜 그들만 유명할까 / 캐스 선스타인 지음 ㅣ 박세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사업이 성공했다는 것과 유명하다는 것이 동일한 말은 아니지만-예를 들면, 고려아연의 대표가 누구인지는 비교적 최근에야 대중들이 알게 되었다.- 적어도 짧은 시간 내에 성공을 원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성공과 유명함은 동일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요즘 시대에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은 필수불가결하다.
APR와 토스 모두 바이럴 마케팅 또는 유저의 입소문에 기대어 매우 빠르게 성장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논리적 비약을 감수하고서라도) 빠르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또는 법인 또는 서비스)은 빠르게 유명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을까?
캐스 선스타인은 그의 책 <페이머스>에서 구약 성경 전도서의 한 구절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게 아니며, 강하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며, 똑똑하다고 빵을 얻는 게 아니며, 지식이 있다고 부유한 게 아니며, 기술이 있다고 은총을 받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 모두에게 시간과 기회가 임함이니라."- 을 인용하며, 유명해지기 위한 비결은 없고, 행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폭포 효과 / 집단 양극화 / 수준
캐스 선스타인은 성공에 있어 운이 매우 주요함을 선언하면서, 그동안 운에 기대어 크게 성공한 사례들을 분석한다.
핵심은 폭포 효과 / 집단 양극화 / 수준(퀄리티)다.
요즘 말로 바꾸어 말하면, "첫 댓글의 중요성" / "빠가 까를 만들고, 까가 빠를 만든다." / "운도 실력이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바이럴 마케팅을 할 때, 사람을 동원하여 선플을 선점하고, 조회수를 높이고,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에 기대어 공동구매를 하고, <대홍수>가 잘 만든 영화인지 망한 영화인지 싸우고, 비틀스의 노래는 비틀스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평행 세계에서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영화 <예스터데이>가 <어바웃 타임>을 뛰어넘는 흥행을 한 케이스가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나는 삶이 우연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삶이 개인의 의지에 좌우된다는 생각을 하고-또는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살았던 것 같은데-특히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강박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상담을 받을 정도였다. 강박은 불운에의 저항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가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의 의지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꺾였다.
우연을 끌어 안는 것이 나에게는 숙제였다.
나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금세 겸손해진 나 자신이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이후로 강박 증상은 거의 사라졌으니,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수능 언어영역 시간에 분명히 완독하고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한 번 더 무의미하게 지문을 정독하는 경험은 다신 하고 싶지 않다-.
의지의 밖
'운'이라는 것은 내가 나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 밖의 무언가이다.
그것이 행운이든 불운이든 차이는 없다.
사람은 대부분 이러한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줄여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고, 그러한 전략이 지금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럴 마케팅을 예로 들자면, '알고리즘' 분석이야말로 '운'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어쩌다 대박이 터진 릴스를 분석하고, 어떠한 알고리즘이 작동하였는지 찾아내고, 도출된 결과를 새로운 릴스에 적용해서 대박이 터졌다면, 이는 '실력'이 '운'을 이긴 것이고, '질서'가 '무질서'를 이긴 것-어쩌면 그랬다는 착각-이다.
대단한 사업적 성공을 거둔 요인 중 하나가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사업의 주체는 '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축소시키고자 할 것이다.
행운보다 불운에 집중하는 사람-나는 이러한 문구를 부정적 의미로 쓰지 않는다. 낙관보단 비관이 미래의 발생 가능한 문제를 대비하는 데에는 더 낫다.-은 '불운'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즉, 개인의 의지로 불운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대비한다. 사실 개념적으로 '불운'은 인간의 의지 밖의 일일테니 개인의 의지로 피할 방도는 없을 것이다.
두 케이스 모두 개인의 '능력'으로 '우연'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결이다.
그리고 내가 보거나 읽은 창업자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사업을 한다.
사업은,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인간의 의지가 우연에 대응 또는 대항하면서 발생하는 불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사업이 운'이라는 명제는 견고하게 지지하면서.
<페이머스> 발췌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문장들이다.
야망이나 꿈이 성공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 또한 회복 탄력성도 성공에 기여한다. … 물론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다. … 그런데 문제는 특정 요인이 명성과 관련 있다고 해도, 그리고 애매모호한 발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연관성이 상당히 약하다는 데 있다. … 실제로 야심차고 의지가 강하고 유연하고 능력이 출중한 많은 이들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종속 변수 선택에 주의하자.
다시 말해 성공과 명성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우연히 발생한, 그리고 쉽게 다르게 드러날 수 있었던 일련의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안에 대해 그처럼 강한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런 경우라면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서 열풍이나 유행을 순식간에 확산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놀랍게도 쉽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서는 많은 사람이 특정 인물이나 제품을 좋아하고 숭배한다는 인식을 퍼뜨림으로써 하루, 또는 한 시간 만에 그 인물이나 제품의 인기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 기존과는 다른 사람이 음악과 미술, 기념물, 또는 책으로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29절은 이렇게 말한다. "가진 자는 얻어서 더 넉넉해지지만 없는 자는 뺏겨서 더 가난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사례는 한 사람의 초기 선택이 정보 폭포를 만들어내면서 다른 모두가 똑같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이다.
제품과 인물의 경우 양극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인기나 명성을 높이려면 집단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단 양극화는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특정 온라인 그룹에 가입한 사람들은 어떤 인물이나 제품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우리는 이런 집단 양극화 현상을 의식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과잉의 길은 지혜의 궁전으로 이어진다. 신중함은 무능함의 구애를 받는 부유하고 못생긴 늙은 하녀다. 욕망하되 행동하지 않는 자는 역병을 낳는다.”
우연의 결과로 수준이 높다고 인정받은 작품은 사람들의 취향과 가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래서 그 작품이 차지한 유리한 지위는 더 굳건해진다. 그것은 그 작품이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작품이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객이 <스타워즈>를 보려고 계속 몰려들도록 만든 거대한 원동력은 ”개인 간 교류“였다.
폭포 효과에 관한 전형적인 설명이라 하겠다.
(버락 오바마 왈)“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운이 좋아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겁니다. 물론 능력도 있었겠죠. 그래도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행운이 따랐던 겁니다.” … “그런데 일부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저를 보세요. 저도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그것도 많은 행운이 따랐기에 가능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