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다는 것
나쁜 양육 방식은 너무 엄하기만 한 것도, 너무 받아주기만 하는 것도 아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게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대충 상상해 보았을 때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는 했었다. 아직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도 없는 데다 '가치관'이라는 것이 흐물흐물한 액체 상태로 흔들리고 있는 어리고 약한 친구들에게 부모란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단 하나의 판단 기준일 텐데, 그 기준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건 눈앞의 온 세상이 초단위로 모습을 바꾸는 것과 같은 일일 테니까.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해도, 어제는 티비였던 것이 오늘은 연어초밥으로 바뀐다면 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
딱히 양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실 아는 바도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알 필요가 없을 예정이다. 단지 연애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에서도 일관성이라는 개념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반성해야겠지만 나는 종종 이랬다 저랬다 한다)
나는 일관성이 없는 관계를 좋아했었다. (고 생각한다) 말인즉슨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 행동과 말에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예측할 수 없고 맥락이 좀 희미한 관계를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이렇게도 설명 가능하다. 언제 어떤 싸움이 일어날지 모르고, 내 기분이 언제 어떻게 곤두박질칠지 모르고, 도대체 왜 그런지 맥락을 모르겠는 관계. 긴장감 넘치지만 불안하기 그지없는. 뭐 지금이야 그러한 관계가 주는 불안이 영혼을 좀먹는다는 것을 알지만 예전에는 몰랐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는 깔끔한 성격이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깨끗하고 잘 정돈된 성향을 가졌다. 집에는 먼지가 없어야 하고 침대 커버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빨아야 하며, 모든 물건이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캐리어를 정리해야 하고(대체 누가 그런 식으로 살지), 내가 찾지 못한 내 머리카락을 이십 개쯤 찾아내며, 일할 때도 적확하게, 심지어 싸울 때도 말을 정돈해서 한다. (나는 무엇과 만나고 있는가)
어쨌든 그런데, 언젠가 한번 그냥 떠오르길래 물어본 적이 있다.
"있지. 혹시 내가 나락으로 떨어져서 진흙탕을 굴러다니게 된다고 해도, 나랑 함께 있어줄 거야?"
인생에 언제나 좋은 시절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근데 다 끝나면 씻어야 돼."
라고 덧붙이면서.
일관성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관계에서 그것은 나를 안심하게 하고, 내 불완전한 변덕스러움이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도록 최소한의 방향을 잡아줄 테니까. 인생이 진흙탕을 실컷 구른다고 해도 결국 끝나고 난 후에는 깨끗하게 세탁된 침대 시트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불안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