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걱정
낮술 약속이 있었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분들과 만나 서촌에서 여유롭게 낮술을 마시기로 했던 거였는데, 집에서 멀지 않았던 데다 앉아서 술을 홀짝이며 랜덤 토크를 하다가 약간 취하면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올 것 같아(즉, 걸을 일이 없을 거라고 판단) 조금 높은 굽의 샌들을 신고 집을 나섰다.
단 한 번이라도 인생이 예측한 대로 흘러간 적이 있었던가. 만나기로 했던 분 중 한 분은 미국에서 일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참이었고, 이미 전날 술독에 한번 빠졌다 나오는 바람에 우리는 간단히 맥주 한 잔씩을 마시고 난 후 서촌 거리로 나섰다. 심지어 날씨마저 걷기 좋아, 우리는 서촌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사이에 두고 범우주적인 주제의 대화를 하다가 삼청동을 지나 인사동까지 걸었다.
정말이지 전혀 그렇게까지 잔뜩 걸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걷다 보니 거리는 어두워져 있었고 그에게 전화가 걸려와 나는 그 뜻밖의 여정에 대하여 간단하게 브리핑을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물었다.
“자기 오늘 낮에 뭐 신고 나갔더라? 높은 거 신고 나가지 않았니? 괜찮아?”
나는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의 온도와 질문의 행간에서 가벼운 걱정과 사려 깊음을 읽었다. 그러니까 왜 불편한 신발을 신었냐는 타박도 아니고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낄 만큼의 우려도 아닌. 그리고 문득, 집을 나서기 전 신발을 신는 나를 지켜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은 실제로 신음하고 있었으나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내 선택이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기분 상할 일 없이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신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잔소리 대신 아주 가벼운 걱정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