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뜨는 비즈니스 ⑦>
냉장고가 필요 없는 시대의 마트
‘허마셴셩(盒马鲜生)’
마트는 일상에 필요한 수많은 제품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그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유통 혁신을 이끌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한 마트는 바로 ‘허마셴셩(盒马鲜生)’인데요. 중국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알리바바가 만든 대형마트이고, 유통의 혁명을 이뤘다고 하는 만큼 고객들로 북적여야 할 것 같은데, 직접 가보면 의외로 한산합니다. 대신 직원들이 분주하게 스마트폰을 보며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바로 고객들이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한 대로 직원들이 대신 장을 봐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담긴 장바구니는 천장에 달린 레일을 타고 배송센터로 옮겨지고, 30분 이내로 배송됩니다. 마치 물류센터와 마트를 결합한 듯한 신유통 매장, 허마셴셩은 어떻게 이런 유통의 혁신을 이뤄낸 걸까요?
신(新)유통, 오프라인 매장의 개념을 바꾸다
허마셴셩 유통 혁신의 중심은 ‘신(新)유통’입니다. 2016년부터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신유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온·오프라인과 물류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유통의 흐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혀왔습니다.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전통적 유통의 가치사슬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인 것이죠. 이후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성장한 IT 기업인 알리바바는 허마셴셩을 인수하며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 진출합니다. 또한 ‘3km내 30분 배송’을 가능할 수 있도록 자동화 물류를 융합시켰습니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허마셴셩은 신유통의 대표적 모델이 되었습니다.
초고속 배송으로 이점을 얻는 것은 고객뿐만이 아닙니다. 온라인을 통해 수집된 고객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매장에 배치하는 제품의 수량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자 역시 물류비와 보관비를 절약할 수 있어 경제적 이점을 얻을 수 있죠.
허마셴셩의 신유통 전략은 고객이 마트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던 기존 마트와 다릅니다. 마트를 한 번 방문한 고객이라면 다시 방문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믿고 주문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라고 봐도 무방하죠. 실제로 마트에 방문한 고객들은 매장 곳곳에서 이들이 주는 신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신뢰 확보, 허마셴셩이 기존 마트 시장에서 발견한 가능성
그렇다면 허마셴셩이 생기기 전 중국의 마트 시장은 어땠을까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베이징에서 신선 식품이나 해산물 요리를 먹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식품의 비위생적인 관리에 대한 뉴스 보도도 많았기 때문에 신선식품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죠.
이러한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허마셴셩은 정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우선 허마셴셩 매장의 중앙에는 킹크랩, 랍스터 등 다양한 해산물이 가득한 진열용 수족관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신선도를 직접 확인하고 고를 수 있는 것은 물론, 원하는 요리로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조리를 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또한 매장에 비치된 채소나 과일에 대한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앱을 통해 QR코드를 스캔하면 생산지는 물론, 언제 입고됐는지, 어떤 과정으로 유통됐는지, 어떻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지 정보가 나오는 것인데요. 물건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고 그에 대한 설명 등은 모바일로 볼 수 있는 온 오프의 진정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객들의 장바구니를 직접 담는 직원들의 모습 또한 고객의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창고에서 제품을 담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대신해 직접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믿고 주문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죠. 이렇게 담긴 장바구니가 직접 머리 위의 레일로 지나가 이동하는 모습은 주문 후 쇼핑, 배송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줍니다.
허마셴셩에 익숙해진 고객들, 기존 마트들의 타격 없는 반격
허마셴셩은 이런 고객 경험이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시장 초기부터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습니다. 100위안어치의 상품을 구매하면 50위안 정도의 쿠폰을 주는 프로모션을 반 년 동안 지속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다른 마트를 갈 이유가 없어졌고, 허마셴셩은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2020년 기준 전국에 207개의 매장이 있고, 전년 대비 온라인 주문율은 220% 증가했습니다.
이때 기존 마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처음에는 속수무책이었다가, 이내는 심각성을 깨닫고 허마셴셩을 따라 30분 배송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이미 허마셴셩에 익숙해져 있었고, 허마셴셩은 이미 막대한 고객들의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를 더욱 정교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미 허마셴셩에 익숙해진 소비자를 끌어오기엔 늦었던 것이죠.
하지만 아직도 마트의 반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유통 대기업이었던 ‘용휘마트’는 ‘차우지우종’이라는 신 유통마트를 내세웠습니다. ‘우리는 30분 배송 외에도 매장에서의 디지털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외치며 미니앱을 통한 셀프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푸드코트를 강화했습니다. 허마셴셩과는 상반되게 고객을 매장으로 불러들이겠다는 전략이었죠. 하지만 이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유통의 본질도, 현재 고객이 원하는 마트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 전략이기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죠. 허마셴셩이 내건 ‘편리함을 위한’ 오프라인 매장, ‘편리함을 위한’ 모바일 매장, 그리고 ‘편리함을 위한’ 배송 시스템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문 후 30분 내로 배송 받을 수 있는가? 집을 고르는 기준이 된 ‘허(盒)세권’
집을 고르는 기준이 된 ‘허(盒)세권’, 허마셴셩이 일으킨 유통 혁신은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은 물론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도 집을 구할 때 역과 가까우면 ‘역세권’, 맥도날드가 가까우면 ‘맥세권’ 등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가 가까이 있으면 프리미엄이 붙어 집값이 올라가죠.
중국에서는 허취팡(盒區房), 즉 ‘허세권’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허세권은 허마셴셩의 3km 내에 위치해 있어, 앱으로 쇼핑을 마친 후 30분 내로 배송받을 수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허마셴셩이 입점하면 주변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최근에는 ‘결혼은 후이타이랑(만화 속의 이상형 남자 캐릭터)과 하고 집을 사려면 허취팡에 사라(嫁人就嫁灰太狼,买房要买盒区房)’는 말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고 하네요.
허마셴셩 앞으로의 과제, 그리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지금까지 허마셴셩은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이나 무인 배달 기술의 상용화에 따른 리스크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실제로 허마셴셩의 배달 기사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면서 일 년 평균 1만 2천 건의 배송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봉은 6만 위안, 한국 돈으로는 천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하죠. 때문에 앞으로 인건비가 올라간다면, 그리고 무인 배달 서비스가 대중화된다면 그 변화에 따라 허마셴셩 또한 큰 변동이 생길 것 같습니다.
허마셴셩은 우리에게 온 오프라인의 적절한 융합, 그리고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의 시스템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허마셴셩의 30분 내 배송은 단순한 배송 시간의 단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배송이 오는 국내 서비스와 달리 30분 내 배송은 고객이 바로 당장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를 통해 일상 속 시간에 대한 비용을 감소해 줍니다. 내일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받을 수 있는 만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서비스를 연결해 주어 끊임없는 확장성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허마셴셩의 고객들이 필요로 할 만한 청소, 세탁, 네일아트, 헤어 등의 서비스를 추가적으로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현재 ‘빠른’ 배송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통업계가 바라봐야 할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빠른 배송을 가능케 하는 기술과 더불어 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 기술이 변화시키고 있는 고객들의 삶까지 모두 통합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