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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의 부천자생한방병원과 자생 수련의 교육, 그리고 자생척추관절연구소 이야기는 재밌게 읽으셨나요? 2편에서는 임상진료지침 제작, 그리고 임상 연구자로의 진로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한의 임상 진료 지침
Q. 임상진료지침을 만드는 건 정말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침을 만드시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임상진료지침을 만들면서, 저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리하고 싶었어요. (웃음) 근데 한의계 내에 방대한 양의 자료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오히려 너무 자료가 많다면 정말 행복하게 진료지침을 만들 것 같아요. 임상진료지침 제작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면 짜잔! 하고 내 마음에 드는 지침이 나오는 거잖아요.
진료지침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가 없다는 게 문제에요. 경항통 한의임상진료지침을 만들 때 얘기인데요. 목 부위 통증에 침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쓰는 치료법이 뭐에요? 약침과 한약이죠. 그런데 약침이나 한약으로 된 RCT 논문이 한국에 한 편도 없더라고요. 진료지침은 주로 RCT를 기반으로 만드는데, 이런 논문이 없으니까 경항통에 약침을 권고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문제가 생겨요.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한의사들은 “아니, 약침이 얼마나 효과적인데 왜 권고 등급이 낮지?”라고 의아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논문이 없어서, 연구자들이 마음대로 권고할 수 없어요. 이런 이유로 실제 진료와 임상진료지침에 괴리가 생겨요. 정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치료법인데, 논문이 없어서 권고등급과 근거 수준을 마음대로 적을 수 없다는 것이 PI로서 가장 부담스럽죠.
만약 관련 논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약과 약침의 권고 등급을 낮게 냈는데 이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이나 보장성 강화가 어려워지면, 한의계 내에서 엄청난 비난이 올 게 뻔하잖아요. 가이드라인을 따라 진료지침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것을 어떻게 현명하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어요. 실제로 처음에 지침을 개발할 당시 진료지침은 중국 논문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어요. 한국에는 약침이나 한약 관련 RCT 논문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진료지침에 중국 약침 제품 이름을 적기도 참 애매해요. 논문에서 사용한 약침 중 한국에는 없는 것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진료지침 개발 과정 중 부족한 RCT를 복지부 과제로 지원해 주고 있고, 한국에서도 여러 연구자들이 약침과 한약에 대한 임상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Q. 한의대생으로서 임상진료지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공부에 이용하면 좋을까요?
위에 언급한 이유로, 한의대생들이 임상진료지침을 받아들일 때는 진료지침 개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권고 등급 A’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해당 치료법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 관련된 연구가 많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권고등급이 가장 높은 치료가 가장 효과가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치료 효과와 근거의 양은 다른 문제니까요.
만약 약침이나 한약을 사용한 한국 RCT 논문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면 한의대 학생들이 임상진료지침을 공부에 이용하기도 더 좋았을 거예요. 예를 들어, 경항통에 약침을 써서 효과가 좋았던 한국 논문이 많았다면, 진료지침의 참고문헌에 기록된 논문을 읽어보며 어떤 약침을 어떻게 썼을 때 효과가 좋은지 배울 수 있겠죠. 또, 임상에서 실제로 진료지침이 활발히 활용될 수 있고요.
추가로 지금 상황에서 진료지침을 공부에 활용하자면, 진료지침의 앞부분에 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걸 학생들이 이용하면 좋을 것 같네요.
Q. 그렇다면 진료 지침의 가장 큰 의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큰 의의는, 기존 치료법 관련 연구를 정리하며 어떤 분야의 연구에 무엇이 부족한지 명확히 알게 된다는 것이에요. ‘침 연구는 많은데 한약 관련 연구는 많이 없네?’, ‘안면마비, 근골격계 질환, 교통사고 등은 한의계에서 많이 보는 질환임에도 약침과 한약 연구가 많이 없네?’처럼요. 그러면 해당 부분에 국가나 한의계의 재정을 들여서 근거를 마련해야겠다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진료지침 사업을 할 때, 항상 ‘임상 연구비’를 줘요. 진료지침 개발은 사무적인 일이어서 사실 임상 연구비가 필요 없거든요. 그런데도 임상 연구비를 같이 주는 것은, 연구가 가장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보완하는 연구를 하라는 의미예요. 그래서 진료지침 제작은 보통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3~5년 뒤에 업데이트해요. 많은 연구자들이 첫 진료지침을 통해 밝혀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연구를 하면, 다시 만들 때는 새로 진행된 연구를 바탕으로 약침이나 한약에 대한 권고 등급을 높일 수 있겠죠. 이런 점에서 진료 지침 사업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 연구소에서 진료지침 사업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건, 약침에 대해서 RCT 연구를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었다는 것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식약처의 IND 관련 문제로 인해 한의계 내에서 약침에 대해 연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식약처와의 조율을 통해 약침술 전략을 새롭게 만들어냈어요. 그 전략으로 현재 저희 연구소는 한의계 약침 임상 연구를 굉장히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임상 연구자의 진로
Q. 선생님의 첫 임상 연구 경험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임상 연구자라는 진로를 선택하게 되셨나요?
레지던트 2년 차 때 환자분들께 연구 동의서를 받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어요. 동의서만 받은 거니까 사실 연구를 했던 건 아니죠. 그런데 신준식 회장님께서 그 경험을 보시고는 제가 연구를 했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웃음) 저는 당시 일산에서 진료하고 있었고 연구에는 전혀 베이스가 없었는데, 회장님께서 강남으로 와서 연구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전혀 뜻하지 않게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죠. (웃음)
Q. 임상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혹은 경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상 연구는 종합예술 같아서, 임상 연구자는 방송국 PD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논문을 많이 본다고 해서 임상 연구를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방송 촬영에는 대본도 필요하지만 조명 감독, 음향 감독과의 협업, 배우들과의 협업도 필요한 것처럼, 임상 연구에도 환자, CRC*, CRA**, 간호사와의 협업이 필요해요. 또, 병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므로 연구조직 외의 병원 행정팀과 간호 조직, 의료조직의 업무도 잘 조율해야 하죠. 어디서 문제점이 발생할지 판단하고, 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PD 같은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임상 연구를 잘해요.
또, 임상 질문(Clinical Question)을 잘 만들 줄 알아야 해요. 어느 정도 이상 공부를 하게 되면, 무엇이 한의계 내에서 중요한 임상 질문인지 감별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한의계의 역할로 예시를 들어드릴게요. 이제 몇 년 안에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거든요. 일본의 사례를 보면,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않고 재택 치료를 받아요. 건강하지 않은 70세 이상의 노인이 되면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될 수 있어요. 환자가 침, 추나 등 치료를 받기 위해 무조건 병원에 자주 와야 하는 구조인 한의계는 긴장해야 해요. 자택 치료나 관리의 측면에서 우리는 어떤 연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임상 질문을 잘 발굴하며, 연구 베이스를 만들어 두었다가 후에 실전에 적용해야겠죠. 이러한 것들이 임상 연구자에게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CRC: Clinical Research Coordinator, 임상연구코디네이터
**CRA: Clinical Research Associate, 임상시험 모니터링 요원
Q. 임상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으신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연구의 원동력’을 계속해서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임상 연구에 있어 화가 좀 많아요. (웃음) 식약처 제도상, 약침이나 첩약 RCT 연구가 어렵잖아요. 식약처의 제약이 있으니 IRB의 승인 또한 받지 못하게 되고, 연구 허가를 얻기가 어렵죠. 한의계 연구에 있어서 왜 이렇게 장애물이 많은지에 대해 화가 생기고, 그 화가 저를 연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연구를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화를 못 참아서 연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Q. 임상 연구를 하고 싶은 학생들은 학부 시절에 어떤 경험을 해보면 좋을까요?
임상 질문을 계속 고민해 보세요. 당장 연구는 할 수 없더라도, 임상 질문은 계속해볼 수 있거든요. ‘왜 한의계는 이런 게 없지, 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나 연구는 없을까’하고 고민할 수 있잖아요.
한의학의 미래
Q. 한의계의 미래를 위해 한의대생, 한의사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앞서 얘기한 ‘학(學)’에 관한 이야기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역설적이지만, 저는 한의계를 위해서는 한의사들이 오히려 한의학을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약사나 의사들도 다양한 파트에서 일하고 있듯, 다양한 파트로 나가야만 더 많은 기회가 생겨요.
예를 들어, 한의계가 어려워진 것은 의료 광고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최근 뉴스에서 어떤 한약이나 한방 치료법이 좋다는 내용을 본 적이 거의 없으실 거예요. 대부분 양방 쪽 얘기가 나오죠. 최근에는 옛날보다도 한의학 연구들이 공중파로 나가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는데, 각 주요 방송사마다 의학 전문 기자가 있기 때문이에요. 사회가 고도화되어 의학만 다루는 의학 전문 기자가 생겼고, 대부분은 의사 출신이에요. 그 사람들은 한의학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없고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한의학 관련 기사를 써주지 않죠. 한의사가 SBS, KBS, 연합신문 같은 언론사의 의학 전문 기자가 되면 한의계에서 이슈가 되는 첩약 건강보험도 다룰 수 있고, 좋은 한의학 논문이 나오면 찾아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을 거예요.
식약처의 제도나 규제 분야에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많은 한의사 출신 공무원이 부족하다보니 한의계가 연구를 진행하는 데도 난관이 있죠.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같은 곳들도 마찬가지예요. 제도나 미디어 등의 분야로 한의사들이 진출해야 한의계가 커질 수 있어요.
대만드 공통 질문
Q. 선생님의 장기/ 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단기 목표는 지금처럼 첩약 건강보험 시범 사업이나 초음파 같은 한의계의 중요한 사업들이 잘 안착할 수 있게끔 연구 파트에서 back data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장기 목표는 한의계가 국민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여건과 상황을 조성하고, 이 일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연구 분야에서는 이윤재 자생척추관절연구소 부소장님을, 병원장님 중에서는 대전 자생한방병원의 김창연 병원장님을 추천해 드려요. 이윤재 부소장님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차병원을 거쳐 이곳에 계시는데, 지금도 자생척추관절연구소 내 대부분의 연구를 하고 계셔요. 또 김창연 병원장님은 제가 병원장으로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병원장의 역할 같은 것에 대해 잘 말씀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시작 전, 레지던트 선생님과 함께 부천자생 한방병원을 탐방할 기회를 가졌습니다ㅎㅎ 대만드 동물들이 눈으로 담아온 부천자생의 구석구석을 소개합니다~
부천자생의 로비입니다! 밝은 톤으로 깔끔한 느낌이라, 들어오자마자 매우 깨끗하고 쾌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로비 옆에는 이렇게 약국도 있었어요. 갑자기 튀어나온 꽁치도 같이 찍혔네요!
빈 진료실이에요. 척추관절 전문 병원임이 확실히 보이는 척추뼈 구조물들과 추나베드가 있었어요. 침구과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몸의 불균형을 확인해 주시고, 자생 루틴 추나를 해주셨어요. 조금씩 들리는 뼈 소리가 무서웠지만, 받고 나니 목 부위가 굉장히 시원했답니다! 자생에서는 과에 상관없이 수련의 모두가 루틴 추나를 배운다고 해요.
가장 높은 층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구경을 시켜주셨는데요,
운동치료실의 사진입니다! 거울에 여러 운동기구들까지 있어서, 저는 보자마자 헬스장이 떠올랐어요. 이렇게 본격적인 운동치료까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어요.
다음으로는 한방요법실을 보여주셨는데요, 다니던 한의원과 비슷한 모습이 보여 반가웠어요. 베드나 시설이 다 새 것 느낌이 물씬 나며 깨끗해서 저도 누워서 치료받고 싶었네요ㅜㅜ
마지막으로는 의국을 보여주셨어요. 저희가 들어갔을 때도 여러 선생님들께서 모여 앉아 공부하고 계셨고, 사진처럼 혼자 초음파 공부를 하고 있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화이트보드에 모두의 MBTI도 쓰여 있는 등 선생님들께서 서로 많이 친하신 게 물씬 느껴지는 따뜻한 의국이였어요ㅎㅎ
병원을 탐방하도록 허락해 주신 하인혁 한의사님, 그리고 안내해 주신 레지던트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병원장'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무섭고 차가운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이와는 전혀 다르게 밝은 얼굴로 맞아주시고, 인터뷰 질문들에 진심을 담아 대답해주신 하인혁 한의사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의사님의 말씀대로, 학(學)에 집중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ㅎㅎ 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한의계의 더 큰 가능성을 열어가는 한의사님의 여정을 대만드가 항상 응원합니다!
Interviewer. 사막여우, 낙타, 꽁치, 뱁새
Writer & Editor. 사막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