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스트림 #연구소장 #천연물 #기업과 규제의 세계
천연물은 어떻게 의약품으로 개발될까요? 그 과정에 참여한 한의사를 들어보셨나요?
바로 메디스트림의 이두석 연구소장님이신데요. 천연물신약 <레일라정>, 기능성 원료 <HX106> 등의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바이오 벤처, 스타트업에서 근무까지, 규제 과학으로써 한의약의 상용화를 실현하고 계십니다.
한의약 산업의 최전선에 계신 소장님의 이야기를 만나보시죠!
[약력]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분자세포생물학 이학박사
現 ㈜메디스트림 연구소장
前 ㈜헬릭스미스 연구개발센터 천연물팀 팀장
前 ㈜헬릭스미스 천연물사업본부장/연구소장
INTRO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01학번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원장으로 1년 정도 일했어요. 그 이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대학원에 입학해서 이학 박사를 받고, 헬릭스미스(구. 바이로메드)라는 바이오 벤처에서 8년 정도 근무하다가 메디스트림으로 옮겨와서 5년 차 근무하고 있습니다.
Q. 요즘 한의사님의 하루 일과,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맞벌이를 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일주일에 3일은 사무실 본사가 있는 선릉으로 출근해요. 일주일에 이틀은 약침 원외탕전과 연구소가 있는 남양주 퇴계원으로 출근해요. 연구원들과 하는 일들을 확인하고, 원외탕전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공장이 있는 경남 산청, 전북 장수, 남양주 수동에 공장을 관리하러 출장으로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학부시절 - 한의대
Q. 소장님은 학부 때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해야 할 일도 많고 매일매일 빡빡하게 일하고 있는데, 학생 때는 여유를 갖고 살고 싶었어요. 가천대 김창업 교수님이 동기인데 저한테 영향을 많이 줬고, 실질적으로 기초 연구를 하게끔 결심하게 했던 분이에요. 학부 때부터 같이 다녔고 운동도 같이 하고 논쟁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는데, 굉장히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Q. 학부 시절에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으셨나요?
그때는 편하게 일하면서 돈 잘 버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죠. 저는 주변에 있는 선배나 동기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었어요. 친했던 선배님들이 병원을 많이 갔어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인턴·레지던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초 쪽으로 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은 기초로 갔어요. 어떤 한의사가 되겠다는 명확한 꿈은 없었어요. 대단히 계획적이고 목적 지향적이게 학교생활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Q. 기초 연구 필요성을 느끼며 바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셨나요?
사실 학부 때는 기초 연구가 어떤 건지 정확히 잘 몰랐고, 배울 기회도 없었어요. 기초 연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신약을 개발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뭐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부 당시에 유명하신 이학로 원장님의 ‘한의학 순환구조론’ 강의를 들으러 김창업 교수님과 동국대 양인준 교수님과 같이 다녔어요. 해부학적인 내용을 한의학으로 해석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좀 더 원리적인 부분까지 이해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런 종합적인 상황에서 결정했어요. 대학원 진학을 처음부터 목표했다기보다 ‘상황과 조건이 선택하게 만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학 박사 - 서울대 대학원
Q. 임상이 아닌 기초 연구자의 진로를 선택하셨는데, 어떤 이유로 자연과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셨나요?
24년 전이죠. 제가 대학생이었던 2001년에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한 압박들이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전통 의학을 좋아했었고, 한의학의 현대화·과학화에 대한 많은 담론이 오갔어요. 기초 과학을 선택하면 향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것 같았고, 또 단순하게 기초 과학을 전공한다면 한의사라고 과학적인 태클을 거는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기초 과학을 선택한 계기 중 하나였어요. 김창업 교수님이 저보다 먼저 서울대 의대 랩에 들어가서 1년 먼저 수학하고 있었고, 종종 한 번씩 만나면서 자극을 받고 기초 과학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곳을 찾아보며 그 당시 서울대 약대에 계셨던 동국대 김영우 교수님을 뵙고 얘기를 했었는데, 김영우 교수님께서 서울대 생명과학부 자연대에 천연물을 좋아하시는 교수님이 계시다고 추천해 주셔서 찾아뵀어요. 그 교수님이 제 지도교수님이신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님입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김선영 교수님을 찾아뵙고 시험을 쳐서 랩에 들어갔고 대학원 생활을 계속하게 됐습니다.
Q. 당시에 자료가 별로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연구실에 어떻게 컨택하셨나요?
그 당시에는 영어를 너무 못해서 외국 논문은 전혀 읽지 못했고, 지도 교수님께서 쓴 잡지 기사를 보고 교수님 홈페이지를 찾아서 메일을 썼어요. 잘 모르지만 누구보다 열정이 있다고 메일을 보내서 면담하고, 지도 교수님께서 지원해 보라고 하셨어요.
서울대 생명과학부 대학원은 입학시험이 있어서 떨어지면 입학이 안 돼요. 전공 시험을 쳐야 하는데 생물학적 지식이 너무 없어서, 당시에 부원장 진료 보면서도 중간중간에 계속 생물학을 공부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에 갔어요. 생물학, 면역학 강의들을 들으면서 국시보다 열심히 공부했었던 것 같아요.
Q. 실험실에 들어가서는 주로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원래 바이러스학 실험실이라 김선영 지도 교수님께서 에이즈 연구를 하셨고, 국내 최초로 에이즈 관련된 논문도 많이 출판하셨어요. 지도 교수님의 지도 교수님이 역전사 효소를 발견한 데이비드 볼티모어라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예요. 랩에 들어갔을 때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바이러스 전공인 선배도 계셨는데, 저는 에이즈를 연구하지는 않았어요. 바이러스를 응용하다 보니 유전자 치료제 관련된 연구 분야도 주요 연구 주제였어요.
교수님께서 특이하게 천연물을 좋아하셔서 천연물신약을 연구하고 계셨어요. 입학했었을 때 천연물신약 레일라정의 임상 2상이 끝나 있었어요. 생명과학부 출신 실험실 선배님들도 천연물 연구를 하고 있던 것이 신선했어요. 들어갈 때는 프로젝트가 설정되지 않았지만, 많이 배우면서 저 나름의 프로젝트를 만들었죠. 석박 통합 학위 과정이 총 7년 정도 걸렸는데,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기억력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3년 차 정도 됐을 때부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많이 흔들렸어요. 프로젝트가 망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은 HX106이라는 프로젝트로 끝까지 가게 됐죠.
대학원 입학할 시기에 임상 2상이 끝난 게 신기하네요!
정말 신기했어요. 2008년에 대학원에 갔고, 임상 2상 끝난 게 2007년 말 정도였어요. 2007년에 합격 통보를 받고 얘기를 들었는데, 가톨릭대학교 병원에서 임상 2상을 했었대요. 당시에도 천연물 소재로 연구하니까 의대 교수님들이 약간 무시하는 경향들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지도 교수님께서 당시 레일라정(PG201)으로 당시 매우 좋은 저널에 논문을 써낸 거예요. 그래서 그 논문으로 편견을 잠재우셨다는 얘기를 해 주셨어요. 또, 임상 결과가 굉장히 잘 나와서 더 놀랐다는 얘기도 하셔서 재미있었죠.
Q. 생명과학 대학원 학위 과정에서 한의학 관련 연구를 했었나요?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제 학위 논문이 아마도 한자와 한의학적인 내용이 적혀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논문일 거예요. 한의학적인 의의는 아무래도 인트로 부분에 가까워요. 제 연구 내용 자체가 한의학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어요. 실험은 약의 효과를 테스트하고 기전을 보는 기존에 알려진 연구 방법을 따라가는 형태고, 실질적으로 한의학적인 연구는 전 과정에 걸쳐서 인사이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쉽지는 않아요.
Q. 대학원 진학 당시 산업계로 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학위 과정을 하면서 어떻게 진로를 구체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원에 처음 들어갈 때는 다들 비슷할 것 같아요. 기초 과학을 하면 교수가 된다는 게 일종의 공식 같은 거잖아요. 옛날에 한의대 졸업하고도 기초 과학을 선택하는 분들은 교수가 되겠다고 거의 다 목표로 했었어요. 지금은 공식이 많이 깨졌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죠.
지도 교수님께서 ‘바이로메드(헬릭스미스로 변경 전의 사명)’라는 바이오 벤처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서울대 1호 바이오 벤처였어요. 천연물 회사로 ‘헬릭서’라는 회사가 있었고, 나중에 바이로메드에 흡수됐습니다. 회사에서 실험하다 보니 회사원분들과도 계속 일하게 되고, 제 프로젝트 주제도 상용화되는 제품과 연관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로가 응용과학이 됐어요. 그리고 제가 졸업할 때쯤 아이가 태어났어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서 바로 회사로 들어갔죠. 바이오 벤처에서 상용화 관련된 것들을 제대로 배우고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Q. 한의대 대학원과 타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연구 잘하시는 교수님들과 좋은 실험 장비, 과제도 많아요. 근데 제가 대학원 지원할 때만 해도 찾아본 선에서는 좋은 논문이 나오는 랩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괜찮은 연구와 교육이 저에게 중요했어요. 기초 과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가 생명과학부 쪽으로 들어갔죠. 면역학과 분자 세포 생물학에 궁금증이 많았거든요. 근데 같이 있었던 실험실 분들은 서울대 대학원 수업들이 엉망이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베이스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저는 재미있었어요. 수업 듣는 것도 너무 재밌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처음에 영어를 너무 몰라서 영어로 논문 읽는 정도까지는 따라왔는데, 당시에 연구실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대학원 들어가자마자 지도 교수님과 함께하는 논문 강좌 수업에서 NCS(Nature, Cell, Science) 같은 저널을 읽는데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선배님들한테 물어보면서 새벽 2-3시까지 남아서 같이 스터디하고 수업 들었어요. 당시에는 챗지피티도 없고, 구글은 있었지만 번역이 엉망이어서 찾아가며 공부했죠. 랩 아니면 기숙사, 서울대 안에서만 있으니까 모든 시간을 연구에 다 투입했던 것 같아요. 좋은 세미나도 많이 열려요. 노벨상 수상자들, 우리나라에 유명하신 분들이 와서 세미나를 했기 때문에, 세미나만 들어도 많은 도움이 됐죠.
Q. 대학원 다니실 때 한의계와 계속 네트워킹하셨나요?
대학원생 때는 네트워킹을 거의 안 하고, 김창업 교수님과 아는 후배들과 스터디하는 정도만 했었어요. 오히려 회사에 들어가서 네트워킹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회사에 있으면서 한국한의약진흥원 연구 과제를 하게 되고, 한국한의학연구원과도 과제를 하며 네트워킹이 이어졌었어요. Wet lab이어서 온종일 실험하고 시간을 쏟아 넣어야 결과가 나오니까, 실험만 해도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Q. 한의대 6년에 석박 통합 7년이면 그 시간이 길었을 것 같아요.
군대에 가야 하고 기초 과학을 안 했다면 병원에 갈 생각이어서, 인턴·레지던트 4년 + 군대 3년 갔다 오면 어차피 7년 정도는 걸려요.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고 박사 학위가 있으면 훨씬 이득 아닐까 대충 계산했었어요. 물론 그게 7년이 걸릴 줄은 몰랐었고요. (웃음) 그리고 당시에는 돈 생각이 별로 없었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질러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계산을 하면 행동을 못 하게 되니까.
규제 과학과 한약의 상용화
Q. 기초 연구부터 인허가까지 한약 제품 연구 개발 순서가 어떻게 되나요?
과학에는 기초 과학(academic science)이 있고, 규제 과학(regulatory science)이 있어요.
기초 과학은 과학적인 내용을 탐색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고, 방법적으로도 유연해요. 논리적인 맥락만 잘 연결되고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실험 방법을 쓰면, 어떤 내용을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인정해 줘요.
근데 규제 과학은 딱딱합니다. 규제라는 일종의 법과 규정에 맞춰 실험하고 결과를 내야 해요. 가령 ‘독성 시험은 GLP(Good Laboratory Practice, 비임상시험관리규정) 기관에서만 해야 한다. 임상은 GCP(Good Clinical Practice, 임상시험관리기준)를 지켜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어요. 결국은 한국 식약처나 미국 FDA 같은 규제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규제가 굉장히 중요해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방법도 딱딱하죠. 규제 과학이 회사가 하는 영역이고, 기초 과학은 과학자들이 가설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영역이에요.
소재 발굴: 정식적인 신약 개발 단계에서, 기초 과학에서처럼 소재를 발굴합니다.
전임상 연구: 동물 실험이나 전임상 실험에서 효과를 발견하고 비전을 설명하는 정도까지 오면, GLP 독성이나 CMC(Chemistry, Manufacturing and Controls)라고 화학적으로 생산 공정, 품질 관리법에 관여합니다. 성분을 찾고 분석법을 만들어내고 일관성 있는 결과가 나오도록 컨트롤하는 연구를 해요. CMC가 회사에서 필수적인 역량이라서, 회사에서 CMC 연구를 많이 해요.
임상 연구: 임상 연구에는 1상, 2상, 3상이 있어요. 옛날에 천연물은 임상 1상을 면제해 줬는데, 요즘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임상 연구 자료들까지 모두 모이면 허가 자료가 됩니다.
품목 허가: 모두 통과되면 인허가를 받고 제품으로 출시되는데, 지금까지 한의계를 위해서 신약으로 나온 건 없어요. 옛날에 만들어졌던 천연물신약은 의사들이 쓰고 있고,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상업화되기까지 기업의 스케일업(scale-up)이 꼭 필요한 과정이네요.
규제 과학 자체가 스케일업이에요.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특허까지가 아이디어인데, 특허만 만들어서는 상용화가 불가능해서 고려할 것들이 많아요. 아이디어를 스케일업 해 줄 수 있는 회사가 있어야 하고, 그게 회사가 하는 과학입니다. 규제 과학으로 또 연결되고요.
상용화에는 CMC 파트가 정말 중요한데,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품질 관리(QC, quality control)가 안 되면 인허가를 받을 수 없어요. CMC 파트는 분석법을 만들고, 유효 성분을 찾아내고, 제품의 규격으로 분석하고, 평가 자료를 만들어서 식약처에 제출하는 역할이에요. CMC는 결국 품질 관리와 독성, 안정성이죠. 지금의 탕약이나 조제 한약은 CMC 부분이 약해서, 메디스트림에서 조제 한약에도 품질 관리를 하고 싶어요. 분자 세포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회사에서는 CMC 파트도 담당했어요. 하다 보니 맡게 됐는데,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Q. 한약재를 이용한 산업화 연구 중 천연물의약품 골관절염 치료제 레일라정(PG201) 개발에 참여하신 경험이 궁금합니다.
개발 당시에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실험들을 몇 개 했었어요. 헬릭스미스에 들어간 이후 제약사들과 레일라정 특허 소송을 4년간 했어요. 매출이 잘 나오면 제약사들이 특허를 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을 해요. 11개 제약사가 무효화 소송을 걸어서, 제가 많이 담당해서 4년간 싸웠지만 졌어요. 특허 방어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레일라를 더 많이 연구했어요. 레일라 개발을 실험실 선배님이 담당해서,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어떤 데이터가 나와야 할지, 연구 방법론을 많이 배웠습니다. 인허가적인 부분은 특허 방어하면서 오히려 더 많이 보게 됐어요.
그 당시 레일라가 이렇게 임팩트를 줄지 몰랐어요. 2012년 한참 천연물신약으로 한의사협회에서도 문제를 많이 제기했는데*, 이렇게도 이슈가 되는구나 싶었죠. 저도 순진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08년 제 주변 사람들한테 10년 있으면 천연물신약이 뜨고, 한약을 이용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나중에 글로벌까지 간다는 기대감을 설파하기도 했었어요. 결론적으로 한의계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슈들이 있었고, 역풍을 맞음으로써 천연물신약 시장의 붐이 한 번 꺼졌죠. 지금도 꺼진 게 많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요. 지도 교수님께서 지식경제부에 가셔서 천연물 의학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5대 산업 중 하나로 만드셨어요. 그때 천연물신약 사업단이 만들어졌고, 글로벌하게 임상도 했어요. 그런 것들을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몸담은 분야가 커지는 것을 느끼고 희망을 품었는데, 2015년에 갑자기 박살 났죠**. 천연물신약 하던 곳도 많이 해체됐어요. 개발돼서 나온 제품들도 있지만, 옛날만큼 영향력이 있거나 주목받지 못해서 지금은 애매한 상황이에요.
* 한약 처방을 양방 천연물신약으로… 한의계 2012년부터 강력 대응
** 2015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사업 추진실태’ 감사를 통해 천연물신약 허가 심사 과정 문제 제기
Q. 건강기능식품 기억력 개선제 HX106을 연구 개발하실 때 레일라정에 참여하신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네. HX106은 기능성 원료인데, 건강기능식품을 어떻게 개발하는지도 몰랐었어요. 당시 회사에서 개별 인정형 건강기능식품부터 접근하여 상용화하고 연구비를 마련해서 의약품까지 진출한다는 전략이 있었어요. 그래서 건강기능식품을 먼저 만들자고 했었죠. 건강기능식품의 조건으로 식품 소재를 써야 해서, 식품용 소재로 구성해서 테스트하다가 얻어걸렸어요. 인체적용 시험도 잘 나와서 계속 추진한 경우인데 운이 좋았죠. 회사에 입사해서 다른 소재도 도전했었는데, 많이 실패했었어요. 첫 타가 운이 좋아서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막상 해보니 실패를 많이 해서 좌절감이 아주 컸었죠.
Q. HX106의 구성이 천마, 단삼, 용안육, 맥문동입니다. 이 조합을 어떻게 생각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건강기능식품이기 때문에 일단 식품 소재여야 해요. 당시 병원에 계신 선배님들한테 기억력 개선에 좋은 처방이 있냐고 묻고 조언도 많이 받아서 그중에 골랐어요. 특히나 독성이 없고 최대한 안전하고 많이 먹어도 문제가 없는 것들로 고르는 와중에도, 약리 활성은 강한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단삼이 좋은 연구 결과도 많고, 중국에서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래서 단삼을 넣고, 약재비에 따라 가감해서 만들었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Q. 지금까지 규제 과학을 하시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때 이렇게 했었더라면? 아니면 차라리 시작하지 말고 다른 걸 했었더라면 하는 기회비용과 시간이 생각나요. 이전 회사에서 많은 프로젝트들을 실패했었어요. 어떻게 보면 대학원에 들어간 20대 때부터 청춘을 다 보낸 회사인데, 회사가 안 좋아지다 보니 팀이 분해되면서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안타까운 것들이 많았어요. 성공해야 할 때 성공하지 못하면 그 뒤에 여파들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해요. 팀원들이 퇴사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과정이 너무 괴롭거든요.
그래서 메디스트림으로 옮겨오면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안 벌어지게 잘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전 회사는 연구 위주였어요. 연구만 하다 보면 비효율적인 과정이 많아져서 연구비를 많이 쓰게 돼요.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연구 기관과의 관계를 위해서 일을 하거나 연구비를 소진하다 보면 집중력이 분산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 것들을 다 쳐내고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메디스트림이 연구비가 풍족한 회사는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더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아끼고 아껴서 필요한 실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처음 맡았던 HX106 프로젝트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임상에서 성공한 결과를 받았을 때도 좋았고, 제품화를 지켜보는 것도 좋았어요. 그다음 프로젝트들을 망해서 괴롭긴 했으나, 과정 하나하나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았어요. 인허가를 받으며 식약처도 찾아가고 미팅도 많이 했어요. 단순히 연구원으로서 랩에서 실험만 하는 게 아니라, 제품화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자료를 보고 배웠어요. 그리고 생산하는 공장에서 현장을 직접 보면서 진행 방식과 고려해야 할 점을 배웠어요.
당시에는 좀 더 기초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데, 특허 소송하느라 특허청이 있는 대전을 많이 오갔어요. 그리고 거래 업체가 요구하는 실험과 공급해야 하는 원료가 있었는데,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실험도 해야 했어요. 또, 인허가에 필요한 안정성 실험 등도 했는데, 규제 관련 연구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아요. 정해진 틀대로 일정에 맞춰서 하는데, 실수하면 손실이 크니까요. 그런 수많은 것들을 챙기는 게 당시에는 재미가 없었어요. 뭔가 아카데믹하고 창의적인 것을 하고 싶은데, 시키는 대로 공장 가서 생산품을 확인하고, 안정성 데이터도 봐야 하고, 할 줄도 모르는 CMC를 맡아서 자료를 만들고, 문서 작업하는 것들이 당시에는 재미가 없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게 그래도 저를 키운 8할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천연물신약 분야가 다시 부흥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한의사와 의사의 이권에서 해결돼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봐요. 한의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의사가 천연물 처방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천연물신약 입장에서는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이 더 커지고 국가의 지원이 열려야 해요. 지금은 애매한 관계에 있죠. 천연물신약을 부정적으로 보는 한의사들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제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국가에서도 천연물신약을 띄우려니까, 의사와 첨예한 이권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과제비를 주자니 아직까지 대단한 성과물이 없다고 판단되는 부분도 있어요. 결국은 산업이 발전하려면 나라가 도와줘야 하고, 기초도 튼튼해야 하고, 기업이 잘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 해요. 삼박자가 잘 맞아야지 선순환 구조가 되는데, 지금은 고리가 끊어져 있는 상태니까요. 시장 주체가 애매하고,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사도 의사와 한의사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국가도 지원해 줄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명분이 약간 사라진 상황이라서 조금은 애매한 것 같아요.
글로벌도 뚫어야 할 부분이 많죠. 미국은 제도가 더 빡빡하고, 규제를 뚫어내려면 훨씬 더 많은 자본으로 연구해야 해요. 미국은 케미컬이 의약품의 기반이어서 천연물에 익숙하지 않은 나라예요. 천연물 자체가 의약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교체돼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도 보테니컬 드럭(botanical drug)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이미 4개의 의약품이 나와 있습니다.
천연물신약 개발 과정에 한의사가 기여하는 부분이 많으면 좋겠어요.
천연물신약에 많은 한의사가 기여했어요. 신바로도 자생에서 한 거고, 레일라정·모티리톤정에도 한의사가 개입해서 소재가 나왔어요. 당시에는 천연물신약 학회가 자주 열려서, 학회에 참가하면 다들 한의사에게 조언을 얻으려 했어요. 신약 개발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리스크가 크고, 임상에 실패하면 너무나도 큰 손해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믿고 기댈 만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많이 사용한 비방이나 처방이 있으면 훨씬 더 쉽게 갈 수 있으니까요. 레일라도 비슷했어요. 처음에 레일라 처방(당귀, 모과, 방풍, 속단, 오가피, 우슬, 위령선, 육계, 진교, 천궁, 천마, 홍화 구성)을 연구 개발할 때, 한의원에서 한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진짜 효과가 있었는지 설문 조사를 했어요. 거기에서 확신이 생겨서 바로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Q. 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한의약 산업 활성화 방안과, 그 과정에서 한의사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한의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산업이 발전하려면 결국은 기업이 커야 하고 새로운 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해요. 물론 제가 메디스트림이라는 회사에 있으니까 이렇게 의견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인프라를 공급해 줄 제대로 된 기업이 나오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산업 기반이 다져집니다. 스케일업 해 줄 회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상용화될 수 없고, 상용화가 되더라도 단순하고 낮은 수준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고도화시켜 줄 회사들이 있어야 해요. 산업화되려면 결국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고요.
근데 한의계를 위해서만 산업을 할 회사가 생겨나는 게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 시장이 그렇게 작지 않은데도 시장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메디스트림 정희범 대표님처럼 한의사가 직접 뛰어들어서 산업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의사가 회사를 운영하지 않는다면 자본적인 논리로는 말이 안 돼요. 이미 증명돼 있는 다른 시장에 에너지와 자본을 들이면 되는데, 한의약 산업은 지금으로써는 증명된 게 없어요. 법적, 시장 창출, 재투자, 개발 리스크가 크죠. 이걸 다 짊어져야 하는데, 한의사가 열정을 가지고 시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처음 시작할 고리를 못 만들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장을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다른 데서 먼저 찾아와서 인프라를 깔아주지 않을 것 같아요. 한의사가 소비자도 되고, 공급자도 되고, 연구자도 되고. 산업계의 프레임이 한 번 정도는 바뀌어야 해요. 우리 시장이 작지 않으니까 시장이 한번 창출되고 돌아가면 외부에서도 들어올 기회가 생길 거예요. 기업을 운영한다면 재투자로 업계와 시장이 커지는 걸 목표로 해요. 그런 기업들이 나타나면 한의약 산업을 키워낼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신약 개발은 결국 이 애매한 제도가 다툼이 있어서라도 정리가 돼야 해요. 제도가 해결돼서 한의사가 천연물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면 좋겠어요. 의약품 시장이 생겨나고 사용 권한이 생겨서 한의원 업장에 매출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그 뒷 단계가 이루어질 거예요.
이 과정의 끝이 학교라고 생각해요. 천연물신약 같은 의약품으로 회사가 돈을 벌면 연구비를 재투자해서 신약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될 거고, 학교의 역량 있는 교수님들이 소재 발굴 연구를 더욱 활발히 할 거예요. 기초 연구에서 산업화로 연결되는 브리지가 만들어질 거고요. 회사가 시장을 창출하고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해서 학계를 돌리고, 아이디어가 고부가가치 산업이 돼서 스케일업 되게끔 연결하는 역할을 기대합니다.
Q. 한약의 상용화가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한의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한의계에 유통되고 있는 제품과 동등한 천연물 의약품이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다면 행복하게 눈 감을 것 같아요. 제 커리어에서 그게 이루어진다면, 메디스트림이 쯔무라 정도 되는 제약사가 되겠죠. 전 세계에 내놔도 품질, 효과 어떤 측면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우수한 약을 공급할 수 있다면 굉장히 보람찰 것 같습니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방향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희범 대표님도 마찬가지고요. 회사 입사 처음부터 계속 얘기하고 있었던 것들이고, 단계별로 밟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의원에서도 쓸 수 있는, 그게 어떤 식으로 만들어질지 아직까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목표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1편]에서는 소장님의 대학원 생활, 한의약 산업에서 기업의 역할, 규제 과학과 한약의 상용화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2편]에서는 바이오벤처와 스타트업에서의 근무 경험, 연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소장님의 메시지가 이어집니다!
Interviewer. 용
Writer & Editor.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