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드릴 책은 일본의 「한약제제를 통한 통증치료」라는 책입니다. 사실 이미 많이 접해보셨을 책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의학의 현주소를 가장 간결하고 인상 깊게 소개해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한의학과에 진학한 후 헤매는 새내기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한의학의 전통 관념들과 현대 의학과의 괴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흔히 한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양, 오행 등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전통 사회에서 이런 관념들이 이용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짧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변적 관념들로부터 탈피해야 할 당위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변적 관념으로부터 탈피하여 한약을 이해하기 위한 움직임들 또한 소개합니다. 전통적 관념들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의 현주소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여기서 현주소라 함은 전 세계에서의 동향을 말합니다.(포커스는 일본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한약을 보험에서 제외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3주 만에 92만 의사의 반대 서명이 모였다는 이야기는 꽤 인상 깊었습니다. 이외에도 엑스 제제의 개발을 기반으로 일본의 한의약 시장이 성장한 일, 미국 FDA가 쯔무라 제약의 대건중탕을 일반의약품으로 인정한 일과 그 사유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국의 한의사로서 해외의 한의학 성공 사례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그들의 성공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이 성공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한의대 학생들이 꼭 알았으면 합니다.
한약은 복합제제이기 때문에 양약처럼 성분으로 접근할 수 없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이제 지겨운 클리셰입니다. 지겨운 클리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 뒤에 항상 따라붙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책에 다 나와 있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하면 된다.”입니다. 저에게는 이유가 결여된 명령문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용기가 없어서 삼켰던 질문들이 있습니다. “성분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지? 정말 안 될까?", "과학적 상식으로 한의학을 이해할 수 없을까?”, “책에 나온 대로 해도 환자를 호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납득하겠는데, 책에 나온 대로만 할 것이라면 그걸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전이 없다면 그게 학문일까?” 등등. 이 책에는 제가 삼킨 질문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이 나와 있습니다. 물론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함이 있었습니다.
최근 저의 고민거리는 “한의학의 외연은 확장될 수 있을까?”였습니다. 한 선배와의 만남에서 이미 속 시원하게 해결되었던 고민이지만, 사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떠올리기 힘들었습니다. 이 고민의 출발점은 수십 년간 한국의 한약 제형은 첩약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료법이라는 것은 축적된 경험에서 유래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과학지식으로부터 개발되기도 합니다. 인체에 대한 지식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첩약을 사용하고 있으니 의아했던 것입니다.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타겟’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최근 연구들로부터 한약의 구성과 비율이 유의미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 특정한 조합이 해결하고자 하는 타겟을 짚어낼 수 있다면 타겟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은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타겟을 발견하거나 설정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한의학의 외연은 충분히 넓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긁지 않은 복권을 살 자본력이 부족한 것이 아쉬운 현실입니다.(여담으로 외연이 넓어진다는 것은 내포가 확고해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 타겟을 구체적으로 ♥♥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에서 지어진 책이기 때문에 다분히 일본 특유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일본식 영어 문법처럼 대상을 나누고, 분류하고, 간소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방식에 있어 저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한약의 타겟은 ♥♥이다.’라고 제창한 것은 분명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의 미래에 관심이 많다면, 그리고 본문의 ♥♥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세요!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한의학이 어디까지 걸어왔나, 검토해볼 좋은 기회입니다.
Writer : 미어캣
이사이 히데야 저, 정창운 조희근 역.
한약제제를 통한 통증치료.
수퍼노바.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