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연구의 젊은 미래!
한의학과 컴퓨터 기술. 여러분은 어떤 연관성이 떠오르시나요? 얼핏 보면 너무나 달라 보이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연구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가천대학교 생리학교실의 김창업 교수님이신데요. 호랑과 대만드 팀원들은 교수님을 만나서 인공지능, 머신러닝, 정보과학 등 여러 첨단 기술들이 어떻게 한의학과 접목될 수 있는지 여쭤보고 왔습니다. 한의학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가천대학교 생리학교실 김창업입니다. 저는 동국대학교 한의학과를 2007년에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에서 7년간 석, 박사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했는데, 석사과정은 실험 연구로 시작해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뇌신경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졸업하고는 컴퓨터과학과와 통계학과에서 공부했고, 의료정보학 관련 인증의 제도가 최초로 만들어질 때에도 참가하여 공부를 했습니다. 이후 2016년에 가천대로 와서 현재까지 한의학 및 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의 일주일 일정이 궁금합니다.
A. 우선 학부 수업이 일주일에 3일, 화, 수, 목요일에 있어요. 그리고 수, 목요일에는 대학원생들과 같이 공부하는 수업이 있고, 월요일에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랩 미팅, 저널 클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2주~3주에 한 번씩 공동연구 미팅을 하고, 학교에서 맡은 보직과 관련된 행정 업무도 해야 하고, 학과 회의도 2주에 한 번씩은 있습니다. 그리고 학회나 발표회 등의 일정이 계속해서 생기기도 한답니다. 수시로 대학원생의 연구를 지도하고 같이 연구하고, 논문 쓰는 일에 시간을 할애합니다.
더 넓은 한의학, 더 똑똑한 한의학
Q. 교수님께서 요즘 연구하시는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한의학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가 있는데, 일단 네트워크 약리학 관련 주제의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한약의 복합 성분이 다중 표적에 작용할 때, 그 효과를 예측하는 연구를 다른 실험 연구자분들과 함께 많이 하고 있어요. 또한 병원이나 한국한의학연구원 등에서 모은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거기에 머신 러닝을 적용하거나 데이터의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도 합니다. 최근에는 변증 과정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도 시작했고요, 텍스트 마이닝을 이용하여 고전을 분석하는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Q: 텍스트 마이닝이라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설명해주세요.
A: 텍스트 마이닝은 정말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우리가 글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보통은 사람이 금방 읽고 이해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양이 굉장히 많으면 의미를 이해하는 것조차 버겁게 됩니다. 그래서 문자를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정보를 자동으로 추출해내는 것이 텍스트 마이닝입니다. 확률, 통계적 기법, 머신 러닝 기법 등 다양한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텍스트에 있는 정보를 뽑아내는 거예요. 예를 들면 황제내경의 각 편들이 어떤 체계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관련이 있고, 어떤 단어가 중심적인 개념을 이루고 있고, 중의적인 개념이 어떤 식으로 엮여 있는지 등을 분석해 보면, 기존 연구자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분석 결과로 나올 수도 있어요. 텍스트 마이닝은 한의학에 적용될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께서는 학창 시절부터 연구를 꿈꾸셨나요?
A. 저는 학창 시절에 큰 특징 없는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학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한의학에 대한 열정은 정말 큰 편이었어요. 너무나 한의학을 사랑했고 한문으로 쓰인 동양 철학책들, 『역학 원리의 강화』같은 책을 품고 하늘을 바라보면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학교 수업 이외에도 이것저것 많이 배우러 다녔습니다. 태극권 배우러 중국에 다녀오고 사주도 배우러 다니고... 『우주 변화의 원리』는 독파하지 못했지만 기공도 열심히 하고... 이런 식으로 외부의 고수를 찾아다녔죠. 오히려 학부생 시절에는 연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Q: 컴퓨터를 이용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동기,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원래부터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대신 한의대 재학 시절부터 대상을 시스템 수준에서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서양 의학은 부분을 보지만, 한의학은 전체를 본다.’는 말에 매료되어 있었고, 이것이 한의학의 강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원에 입학해서 신경과학 분야를 공부해보니 여기서도 뇌를 기존의 환원주의적 관점에 국한되지 않고, 신경망 수준에서, 어떻게 우리의 생각이나 경험을 처리하는지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가 결국 수학과 컴퓨터를 주로 이용하는 분야였던 거죠. 이후 조금씩 수학이나 컴퓨터에 관심을 가져왔고,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한 공부인데 결국 저의 전공이 되었습니다. 결국 부분보다 전체를 보고 싶었던 저의 욕심이 연구의 계기였습니다.
한의학과 4차 산업 혁명
Q: 한의학은 의학에 비해서 특수한 경우도 많고, 표준화나 과학화가 덜 되어 있는 편인데, 이런 경우에도 4차 기술산업 혁명이 도움이 될까요?
A: 오히려 한의학과 관련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최근까지 의학의 주요 패러다임은 EBM, 즉 근거 중심 의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존의 근거중심 의학이 평균 환자를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점차 많은 비판을 받고 있어요. 데이터를 모아서 평균을 낼 때, 개개인의 특수한 차이는 무시된다는 거죠. 이러한 한계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요즘은 유전체 의학의 발전 등에 힘입어 맞춤의학, 정밀의학 등의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맞춤의학이야말로 사실 한의학의 특징이잖아요. 그동안 한의학에서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치료하면 주관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결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량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정량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 지금 인공지능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고 통칭되는 패러다임은 굉장히 한의학적이고, 한의학과 사실 찰떡궁합입니다. 하지만 물론 이것이 한의학의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서양 의학이 획일화되어 있을 때는 맞춤의학이나 예방의학적 측면을 본다는 것이 한의학만의 장점이었잖아요. 이제 맞춤의학적 가치를 서양 의학이 추구하게 되면 우리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비교우위조차 없어지게 될 수도 있죠. 굉장히 반가우면서도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의학에도 여러 세부 분야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인공지능, 머신 러닝, 정보의학은 그중에서 어떤 분야에 가장 많이 필요하고 또 도움이 될까요?
A: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한약으로 예를 들어 볼게요. 그간 한약의 작용기전을 연구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한약에 포함된 성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약리학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인삼이 어떤 효과를 낸다면, 특정한 몇 개의 유효성분이 그 원인이므로 그 성분만을 효율적으로 섭취하면 되지, 다른 성분까지 섭취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거든요 (off target effect). 그런데 한의학은 복합성분 한약을 통째로, 게다가 여러 개의 약재를 섞어서 이용하죠. 기존의 전통적인 약리학적 패러다임과 잘 맞지 않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관점에서 발달한 약리학적 연구방법론들은 한약의 특수한 측면을 연구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죠. 그런데 2006, 7년 무렵부터 서구의 연구자들 사이에 새로운 인식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눈부신 제약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신약개발 실패율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은 그간의 패러다임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실상 질병의 원인은 단일 유전자나 단백질이 아닌데 그동안 단일 타겟에 고도로 선택적인 성분의 개발을 목표로 해왔던 것(one gene, one drug, one disease 패러다임)이 문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렇게 패러다임이 바뀌니까, 그동안 알 수 없는 많은 성분을 한꺼번에 복용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생각됐던 한약이 갑자기 복합성분-다중표적 약리학을 경험적으로 구현한 미래적 컨텐츠가 되어버렸습니다. 복합성분의 다중표적에 대한 작용을 연구하는 네트워크 약리학(network pharmacology)의 빠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런 접근에 기반하여 실제 신약개발까지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어요. 이론적인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는 거죠. 그런 상황이니,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해오고 있는 한약이 더욱 미래적인 연구가치가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약 복합성분의 다중표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선 다양한 실험기법과 함께 인공지능(머신 러닝), 및 정보의학적 기술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Q. 앞으로 연구할 만한 한의학의 블루오션은 무엇일까요?
A. 어떤 한 분야를 콕 집기보다는, 한의학을 사랑하는 한의사가 분석적이고 정량적인 기법에 대해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연구한다면 구체적인 주제가 무엇이 되든 블루오션일 것 같습니다. 정량적이고 분석적인 연구의 힘이 앞으로 굉장히 중요해질 겁니다. 빅데이터 때문이죠. 너무나 많은 데이터가 나오고 있으며, 그 데이터가 갖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뽑아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한의학의 많은 부분에 이런 기술들이 굉장히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 주제를 한의학을 바탕으로 하되 연구 방법은 정량적 방법으로 가져간다면 블루오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한의대생이 머신 러닝 등을 공부하고 싶다면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A. 만약 인공지능, 머신 러닝을 직접 하고 싶다면 조언할 것이 명확합니다. 기본적인 코딩(프로그래밍)과 수학을 우선 공부하시면 됩니다. 수학에서는 확률/통계를 해야 하는데, 기초 확률/통계 수준을 넘어서 어느 정도의 수리 통계학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쉽진 않습니다. 수리 통계학을 하려면 적분도 잘해야 하구요. 그런데 수학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선형 대수학입니다. 행렬을 이리저리 이용하는 선형대수학이 핵심이에요. 이런 공부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직 뇌가 말랑말랑하고 업무의 압박이 적은 학창 시절에 해두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졸업해서 만약 여러분이 관련된 일을 하려면 다른 일과 병행하게 될 텐데, 양쪽을 동시에 하는 게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초적인 부분들을 학생 때 해두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새로운 미래를 꿈꾸다.
Q. 교수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가장 좋았던 순간은 제 첫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게재되었을 때였어요. 가장 안 좋았던 순간도 바로 말할 수 있어요. 이 논문이 승인이 안 되고 계속 떨어질 때였답니다. 제가 첫 논문을 쓰기 시작한 게 대학원 6년 차일 때였어요. 저는 박사학위 주제를 도전적으로 잡은 편이었고, 네트워크 분석 쪽으로 주제를 정했는데 잘 안되니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내가 완전히 틀렸나?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허풍쟁이였나 보다. 망한 것 같다.’ 이런 불안감이 박사학위가 끝날 무렵까지 지속되니 너무 힘들었죠. 그래서 결국 논문이 승인됐을 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고, 나는 박사로서 연구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확인해서 제일 기뻤습니다.
Q. 한의대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일단은 정말 가슴 설레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한의대에 올 정도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실제로 하는 용기는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럼 진작에 한의대를 못 오는 거죠. 어렸을 때 게임이 좋아도, 게임만 하면 망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인내력을 가진 성숙한 학생들이 한의대에 많이 입학해요. 그러다 보니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대학 졸업 이후에 보다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관성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한의대를 다니면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은지, 그걸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이건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너무 늦기 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향후 전망 등을 고려해서 본인의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고, 열심히 해서 졸업할 때 즈음에는 재밌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Q. 교수님의 연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아직은 한의학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분석방법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저 역시도 개인의 역량과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공부한 학생들이 많이 퍼져 나가서 그중에 누군가는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일 것이고, 그러면 아직까지 숨어있는 한의학의 보물 같은 지혜들이 제대로 드러나리라 믿습니다. 오래된 철학자들의 마음에 대한 답 없던 논쟁들이 뇌과학의 발달로 하나, 둘 풀리고 있습니다. 정량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해나간다면, 그 결과에 따라 잘못된 이론은 폐기하고 그다음 단계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도 그렇게 분석적이고 정량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하지 않을까요? 제가 못하더라도 저와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해주리라 기대합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날 분을 추천해주신다면?
A. 이상훈 박사님, 채윤병 교수님, 정원모 박사님, 이향숙 교수님, 나선삼 박사님을 추천해드립니다. 여러 측면에서 신선한 관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교수님의 신선한 시각과 멋진 비전을 들으면서, 한의학은 아직도 발전하는 중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인터뷰로 함께해주신 김창업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Interviewer : 나무늘보, 호랑, 코카스파니엘, 수달, 펭귄, 쿼카
Writer & Editor : 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