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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Sep 06. 2020

복수면허자 임재은 선생님 - 1부

미국에서 통합의학의 프로듀서를 꿈꾸다.

 한의대를 다니다보면 한 번쯤은 한,양방 복수면허에 대해 생각해보는 학생이 많을겁니다. 그 이유는 한의학에 대한 의문, 제도적 한계에 의한 갈증 등 제각기 다를것입니다. 저 또한 3차 의료기관에서 난치병 환자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를 연구해보고자 한의대에 입학했기에 한의계의 현실에 약간의 답답함을 느껴왔습니다. 자연히 복수면허자들에 대한 궁금증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임재은 선생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2020년 2월 어느날 고속터미널에서 임재은 선생님과 만나 꽤 긴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임재은 선생님의 스토리와 학생때부터 키워온 최종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복수면허자 임재은 선생님의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임재은 선생님 약력     

가천대 한의과대학 2000~2006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공보의 2007~2009

경상북도 영주시 하경 한의원 원장 2010~2011

지역 한의원 파트 타임 진료 2012~현재

대한 상한 금궤 의학회 전신 방제 원리 연구학회 창립 멤버 2005

대한 상한 금궤 의학회 정회원 2005~현재

대한 상한 금궤 의학회 상임 위원회 소속 기획 본부장 2013~2017

대한 상한 금궤 의학회 학술 교육 연구 위원회 총괄 관리자(PD) 2013~2017

한양대 의과대학 2016~2019

한의사 의사 복수 면허자 2020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임재은’이라고 합니다. 가천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한양대 의대에 진학하여 지난 1월에 의사 국시를 치루고 2월에 복수 면허자가 되었습니다.     


Q. 의사 국시가 끝난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A.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 USMLE(미국 의사자격 시험) 공부를 하면서 전공의 지원을 준비 하고 있습니다.    

 

<한의대 재학 시절 이야기>

Q. 선생님의 한의대 재학 시절이 궁금합니다.

A. 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항상 맨 앞줄에서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학생이에요. 한의대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한 시절이었는데, 저는 한의대 교육을 비판하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딴 짓 안하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의대의 한의학 교육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본 1 때 한방 생리학 자유 주제 과제로 <한의학 교육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한의과 대학의 교육 내용’이 곧 ‘한의학’이라고 생각을 해서, 한의대 교육의 문제를 한의학의 문제로 오인 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학문을 계속 공부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예과 시절에는 한의대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수님을 찾아뵈었다가 교수님의 권유로 한의학과 대학원 수업에 참관할 기회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 교육에 대하여 여전히 불만족스러웠어요.

 그랬던 제게 전환점이 생기게 된 계기가 임상 현장에서 경험한 한의학이었습니다. 본 1 올라가던 겨울 방학에 태국 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 한의 진료 현장을 경험하면서 한의학적 치료가 의료 현장에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한의학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두 학번 선배와 예과 2학년 말부터 본과 2학년 여름 때까지 의학사, 의철학, 의료 관리학 등을 공부하면서 의료계 전반에 대한 탐색을 했어요. 의료계의 현황을 알아보고, 앞으로 어떤 걸 공부해야 할지 찾고자 했던 거죠.

 그 때 공부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이 크게 2가지였어요. 첫째, “관점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가져온다.” 둘째, “한의학계는 황무지와 같다. 내가 뭘 하든 개척자가 될 수 있다. 힘들고 수고스럽겠지만, 개척자의 길을 가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다!”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당시부터 남들이 안 하고 있는 것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융합 의료가 있었죠. 저는 동서 의학이 융합된 의료가 환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융합 의료로 가기 위한 선결 조건 중 하나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의대생, 간호대생을 대상으로 한의학을 소개하는 행사를 기획했었어요. C.M.F.(한국 누가회)를 통해서 광고를 했고, 연세대 의과 대학 강의실을 빌려서 진행했는데, 당시에 160명의 의료 계열 학생들이 참여 했었어요. 그 때에 이 행사를 같이 준비했던 2분의 한의사 선생님(당시에는 모두 학생)들이 더 계시는데, 두 분 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가고 계십니다. (한분은 의사학 분야 박사를 수료하고, 현재 옥스퍼드대에서 의료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고 계시고, 한분은 복수 면허자가 되어 현재 서울 아산 병원 재활 의학과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셋이서 큰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을 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동 연구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Q. 선생님은 한의대 시절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A. 제가 대만드 선생님들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한의대에 재학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강의는 어떤 강의였나요? 그리고 가장 가슴을 뛰게 했던 강의는요? 저는 학생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TED 강연 중에 사이먼 사이넥의 “리더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방법 – 골든 서클”이란 강의가 있어요. 어떤 일을 할 때에는 Why(왜), How(어떻게), What(무엇을) 세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What에 집중을 합니다. 즉 하는 일, 대상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거죠. How는 일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고, 조직을 변화시키며, 세상에 혁신과 진보를 가져오는 것은 Why입니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의 이유, 목적이 중요한 것이죠.

 한의대에 필요한 강의는 Why입니다. 자신이 한의학을 하는 이유,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강의가 한의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교육을 받고 성장해서 의료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스스로 역할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Why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돕는 강의인거죠.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저는 한의대에서 이런 교육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한의대 시절에 즐겁고 재미있던 부분도 많았지만, 아쉬운 부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육과 학습에 관해서는요.          


<골든 서클>의 개념도입니다.


<한의사 시절>

Q. 한의대 졸업 후 한의사로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공보의 6개월 차쯤에 일일 환자가 50명을 넘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아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에 해왔던 한의학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엔 죽어 있는 지식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교육학 책부터 다시 봤습니다. 그리고 공부법에 대한 책들, 사법고시, 행정고시 합격 수기도 많이 봤어요. 공부를 공부한 거죠. 그러면서 한의학 교육의 방향 설정과 사람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같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나 같은 실패자가 나오지 않게 할까?’라는 고민을 했죠. 저는 스스로가 한의과 대학 교육의 실패자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졸업 1년차부터 지금까지 학습과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졸업 이후에 임상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본초, 방제 공부에 집중 했어요. 구체적으론 상한론과 금궤요략에 수록된 처방을 공부하면서 가감, 합방 없이 처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제 임상에서 활용했습니다. 이 처방들이 가장 우수해서가 아니라, 고방이 처방의 시작점이라면 그것부터 공부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각 질환 별로, 처방 별로, 본초 별로 자세하게 그리고 활용하기 쉽게 지침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방 처방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들을 투자했고,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질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내과와 정신 건강 의학 관련 질환들을 주로 보았습니다. 공황 장애, 불안 장애, 비만, 알레르기 비염, 기능성 소화 불량, 염증성 장질환 등의 환자들을 진료 했었죠.

 동시에 대한 상한 금궤 의학회 이사진으로 활동하면서 학회 내에서 한의사 교육 시스템, 학생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 볼 기회가 주어져서 한의학 교육에 대하여 생각해왔던 방안들을 접목해 볼 수 있었어요. 핵심은 발표와 글쓰기 위주의 교육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학생 5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면 각자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진료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진료 과정을 PPT 등을 이용해서 발표하게 합니다. 그러고 난 이후에 수업에 참여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고, 최종 진단명과 처방을 정합니다. 발표 학생은 추후에 정해진 처방을 복용해보고, 이후에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다시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발표와 피드백 이후에 자기 자신을 탐구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쓰게 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가족, 친구들에 대한 발표를 똑같이 했습니다. 글도 쓰게 하구요. 이렇게 임상 진료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했더니,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변하더군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제가 미국 의과대학 내에 한의학 교과 과정을 개설하고 체계를 세운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실제 교육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Q. 한의사로 활동할 시에 느끼신 보람과 난관들이 궁금합니다.

A. 보람을 느낀 점은 학회에서 교육을 담당하면서 제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성장했다는 점이예요. 발표 수업을 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성찰하게 하는 교육을 하다 보니 학생들이 좋은 성과들을 냈습니다.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죠.

 난관은 이러한 교육 방식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낯설어 했다는 점이예요. 특히 학생보다는 한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어려워하셨죠. 특히 자기 몸이나 정신 문제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을 엄청 어렵게 받아들이셨죠. 아무래도 의료인이다 보니 당신들께서 환자라고 생각하고, 발표하기에는 부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하기 까지 대략 2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래도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런 교육 방식을 어떤 점 때문에 계속 추진하신 거죠?

A. 저는 개인적인 문제를 남에게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분들이 자기 틀을 깨고 발전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이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서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세상 사람들이 겪는 건강 문제가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환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 나은 진료를 제공해주는 역량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진료 능력 자체 뿐 만 아니라, 공감 능력, 상담 능력 등도 함께 기를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환자들이 하지 못하는 말들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도 있지요. ‘내가 만약 환자라면 어떤 점에서 감동을 받을 것인가?’ ‘질병과 관련되어 있는 은밀하고 중요한 삶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낼까?’와 같은 고민으로 이어지면서 그동안 보았던 환자가 그 환자가 아니게 됩니다. 환자 본연의 모습을 좀 더 알려고 노력하게 되죠.

 저는 의료의 범위는 의료인의 신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한의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니 다뤄야 하는 범위가 더 넓죠. 환자에게 질병과 관련된 삶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줘야 해요. 환자의 사회적 문제까지 고려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양방이 놓치는 방법이기도 하고,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 의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엔 많은 문제들이 관여합니다. 한의사는 어디까지를 케어해야할까요?

 앞으로 정량적인 수치들은 인공 지능(AI)이 관리 조정해 주는 시대가 올 겁니다. 그러나 환자의 삶의 문제를 공감하고 지지해 주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것들을 패턴화해서 빅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면 차원이 다른 인간 중심의 의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시작점을 저는 한의사들과 학생들의 데이터라고 생각했어요. 의료인이면서 인간이며, 환자이기도 한 한의사 선생님들과 한의대 학생들을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를 통해서 가치 있는 데이터를 쌓게 되면 그리고 이것을 공유할 수 있다면 환자 치료에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Q. 제가 듣기에도 낯선 방식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진료할 때도 그런 방식들을 반영하시나요?

A. 저는 초진을 1시간 봅니다. 공보의 때 사람을 많이 보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진료하는 것에 대해 후회가 많았거든요. 평생 그런 식으로 진료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의료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했어요. 예를 들면 환자가 오면 대개는 수면 시간, 수면의 질을 물어보고 끝나잖아요? 하지만 만약 고 1 환자가 오면 공부 스트레스, 부모의 큰 기대, 또래 집단 내의 갈등 등이 수면 문제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요소들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묻고, 대답을 듣고자 노력 했습니다. 필요할 경우에는 좀 더 은밀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도 듣기 위해서 노력 했어요. 가령 성인 남녀 환자들을 진료할 때에는 필요할 경우, 부부 관계를 비롯한 성문제에 대해서도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자 분들의 삶에 그러한 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런 측면까지 파악하고 상담한 환자가 치료 성적도 더 좋았고, 환자 의료인 관계를 깊게 쌓을 수 있었어요.     


<의대에 지원하여 합격하기까지>

Q. 의대에 지원하는 것을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한의대 재학 때부터 통합 의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원래는 공보의를 마치고 의대에 진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보의 시절에 한의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고, 임상 진료의 즐거움을 새롭게 알게 되었죠. 그래서 개원의 생활을 한동안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원을 하고보니, 임상 진료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제가 하는 임상 진료를 1차 의료 기관 뿐 만 아니라, 3차 의료 기관에서도 하고 싶었고, 한국 뿐 만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더 나아가 임상 연구도 하고 싶었고, 한의학 교육학이라는 분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3차 의료 기관에서의 한의학 진료나 연구, 한의학 교육학 세우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즉 국내 대형 병원에서 한의학 진료를 하면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치 있는 임상과 연구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는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할 것 같았어요. 공보의를 같이한 의과 친구가 국내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수련을 받고, 현재는 미국 유명 병원 소화기 내과에서 조교수로 근무 중이거든요. 미국이 열려있는 나라라는 걸 이 친구를 통해 알았죠. 그리고 임상 연구 책임자는 MD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MD가 되서 미국에 건너가 임상 연구를 주관하는 책임자가 되어서 임상도 하고,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하자고 생각했지요. 

 이와 더불어서 저는 북한,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의료에 관심이 많았어요. 매년 동남아 의료봉사를 2주씩 가다 보니 ‘이렇게 해봐야 이 지역사회를 바꿀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차례 봉사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의 의료인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학 교육학을 공부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어서 해당 지역을 돕는 일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를 다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했지요. 결국 내린 결론이 ‘미국에서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밟고, 미국 대학 병원에 자리를 잡으면 두 가지 일들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3차 병원급에서도 한의학 치료를 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Q. 임상의뿐만 아니라 임상 연구 책임자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군요! 계획을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A. 제가 미국에서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밟고 나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양방 의사들 중에서는 한의학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일 거예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저만의 강력한 Selling point(특장점)가 되겠죠?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미국에서 내과 전공의 수련을 받고, 세부 분과에서는 소화기 내과 그리고 세부 전공으로는 염증성 장 질환(IBD)을 할 계획입니다. 미국에서 유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질환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환자 수가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약이 부작용이 적지 않고, 재발도 잘 되는 난치성 질환이라 양방에서도 핫한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해요. 저는 한의학이 염증성 장 질환(IBD) 치료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염증성 장 질환(IBD)의 한의학적 치료에 대해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이후에는 임상 연구 분야를 확대하여 실력 있는 한국의 한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임상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즉 임상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진료를 구현하는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인 한의사 선생님이 담당하고, 저는 대학 병원 안에서 해당 질환 군 환자들을 모으고, 진단 치료 과정을 설계하고, 예후 평가 방법을 기획하고, 해당 성과를 논문으로 작성함과 동시에 해당 분야 전문가인 양방 의사들과의 연계 협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비유를 하자면 다른 한의사 선생님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배우들이고, 저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 내지는 제작진이 되는 겁니다. 현재 한의학계에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많습니다. 다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무대가 없어서 그 빛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영화는 배우를 통해 알려지게 되고 보통 배우들이 각광을 받습니다만, 최근에 여러 감독들이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처럼 감독이 되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의료인들이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저는 감독 내지는 제작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무리 기라성 같은 배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무대, 각본, 감독, 환경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염증성 장 질환(IBD) 그리고 소화기 내과 분야에서는 배우도 하고 감독도 하겠지만, 결핵, 난임, 화상, 천식, 비염 등 다른 분야에서는 감독 내지는 제작진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 대학 병원에서 한의학에 대한 연구 성과가 나오게 된다면 우리나라 양방 의료계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로 한의학을 바라볼 것이라고 봐요. (전체의 시각을 바꾸는 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요.) 이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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