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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Oct 02. 2022

패션 에디터에서 한의사로, 최혜미 한의사

에디터 경험을 기반으로 여성 질환에 대해 말하다

'회사 밖으로 나온 한의사들' 프로젝트 인터뷰! 대만드가 서울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한의사로 이직하신 최혜미 원장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패션 에디터로 글을 쓰던 능력을 활용하여 여성 질환과 관련된 책을 저술하신 원장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최혜미 원장님 약력

-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前 <W Korea> 매거진 패션에디터
- 現 달과궁한의원 대표원장
- <서른다섯, 내 몸부터 챙깁시다> (2019, 푸른숲) 저자
- 브런치 <달과궁 프로젝트> 연재 (https://brunch.co.kr/@moonpalace)



Q. 안녕하세요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글도 쓰고 진료도 하는 한의사 최혜미입니다. 요즘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달과궁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원장님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A. 일주일 중 월, 화, 수, 토요일은 진료를 합니다. 진료는 7시나 9시에 끝나지만 보통 진료 이후에도 밤 11~ 12시까지 한약을 처방하고 복약 안내서를 씁니다. 진료가 없는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컨텐츠 작업이나 인터뷰와 같이 다른 일정들을 소화하고 주말에는 보통 아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의류학과 전공


Q.  전공인 의류학과를 선택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원래 옷을 좋아했어요. 바느질도 잘했고 그림을 그리거나 예쁘게 입고 입히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한테 미래의 웨딩드레스를 그려 주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서는 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공부를 덜 하는 전공 위주로 찾아봤어요(웃음). 마침 의류학과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생이 진로를 선택하는 근거라는 게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인 지식이나 고정관념뿐이잖아요. 저도 의류학과는 뚝딱뚝딱 옷 만들고 멋있는 패션쇼 보러 다니는 건 줄 알았어요. 학교에 따라 실제로 디자인 작업 자체에 집중하는 관련 학과도 있는데 서울대 의류학과는 꽤 학구적인 분위기여서 공부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많았어요. 그래도 정말 재미있었고 지금도 의류학과를 가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Q. 패션 에디터에서 한의사로 이직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또한 여러 직업 중에서 한의사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A. “나한테 이 직업이 지속 가능할까? 나이가 들어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하는 건 너무 좋은데 이 자리에서 끝까지 가면 결국 현장에서 떠나 관리, 감독하는 업무로 넘어가더라고요. 경력이 쌓이면 에디터를 통솔하는 헤드가 되어서 하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또 패션계는 항상 젊고 예리한 감각들이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감각이 떨어지면 뒤처지는 세계입니다. 꾸준히, 열심히만 한다고 이 일을 계속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꾸준히 나이가 들어도 잘 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에 대해 오래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한의사를 선택했습니다.

 직업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과는 연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청 찐하게 사랑했고 완전히 빠져들어서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이 친구랑 결혼은 못 할 것 같은 거예요(웃음). 이런 의미에서 직업을 가진다, 혹은 어른이 되어서 일을 가지고 산다는 의미는 생활과 완전히 밀착된 결혼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순간 엄청 열렬히 사랑하는 감정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녹아들어서 함께 오래 살 수 있을까, 직업을 택할 때는 그런 고민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직업은 내 생활의 일부를 완전히 내어줘야 하기에 너무 사랑해도 힘들고 잘 맞는다는 감각이 필요해요. 사람을 만날 때처럼 직업에도 너무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택하기 오히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Q. 한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한의사는 ‘나이가 들어도 지속 가능할뿐더러 오히려 더 무르익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료란 것이 사람이라는 대상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판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직업 안에서 성실하게 나이 든다면 그것만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길러지겠지요. 나이가 들었다고 가치를 폄하받지 않는 직업이에요. 일의 성격으로 보아도 진료와 처방은 80대가 되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은퇴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건 매우 큰 장점입니다.

 또한 다른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핵심 역량이라는 점’이 강점입니다. 한의사로서 쌓은 실력은 한 번에 날려버리는 성격의 재산이 아니에요. 어디 가서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이 망해도 나라는 자산이 남아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기 실력을 쌓기 위해 공부해야겠죠.

 이건 한의사만의 장점은 아니고 자영업의 장점이긴 한데… 회사에 다니고 월급을 받는 것과 달리 제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다만 역효과인지 너무 열심히 하게 되긴 하네요. 저는 한의사가 되면 야근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야근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학부 시절


Q. 두 번째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부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나요? 그리고 학창 시절에 기억에 남는 활동 혹은 고충이 있으셨나요?

A. 저는 오히려 스무 살 첫 대학생 때보다 한의대생일 때 더 대학생답게 보냈습니다. 성인이 되고 처음 대학에 갔을 때 약간 늦은 사춘기가 왔어요. 제 고향이 부산인데 처음 서울에 올라와 대학에 가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거든요. 뭐랄까 서울 애들이 너무 서울 애들이고… 지금 말로 제가 초 I 성형의 내향형 인간인데 서울말 쓰는 애들이 둘러싸고 부산 사투리 해보라고 하도 시켜서 제가 진짜 사투리를 빨리 고쳤어요, 주목받기 싫어서(웃음). 아무튼 학교에서 잘 못 섞이고 오히려 학교 바깥 활동이나 대학생 기자, 인턴 등 외부 활동을 더 많이 했어요.

 동국대에 다시 들어갔을 때 저희 학번에 늦은 나이에 한의대에 다시 온 분들의 비중이 좀 높았어요. 그리고 뭔가 다들 성격이 자기들끼리 뭉치기보다는 현역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분위기였어요. 저도 새터에서 처음 만난 동기 동생들이랑 여행도 많이 다니고, 동아리도 성실하게 하고, 학교 행사나 엠티도 열심히 가고 그랬어요. 그리고 제가 본과 1학년 때 결혼했는데, 그 연령대 친구들에게 결혼이 흔치 않은 이벤트잖아요. 고맙게도 저희 동기들이 진짜 많이 와줬는데 선생님 결혼하면 제자들 와서 축하해주듯이 결혼식 분위기가 진짜 좋았어요(웃음). 당시 동기들이 깜짝 이벤트로 카드 섹션 동영상을 찍어서 결혼식장에서 틀어주었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영상은 제 일생의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웃음).



Q. 외부에서 보고 느꼈던 한의계의 모습(혹은 장단점)은 어땠나요? 그리고 한의계 내부에서 느끼고 계신 모습은 어떠한가요?

A. 사실 한의대에 오기 전에는 한의계를 잘 몰랐어요. ‘외부에서 보고 느낀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돼요. 안 좋은 인식보다 더욱 안타까운 게 무관심이잖아요. 한의학과 관련된 접점이나 경험이 많이 없었어요. 패션계에서 일할 때도 다이어트나 미용 시술을 제외하고는 접할 일이 없어서 인식 자체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현실을 자각한 후에는 한의사로서 무엇보다 외부에 이 분야를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의사로 오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정성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분야를 알리는 것도 못지않게 정말 중요합니다. 이 치료가 효과가 없어서 안 오는 게 아니라 어떤 치료를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오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한의사로서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이런 부분을 알리기 위해서예요.



패션 에디터


Q. 에디터로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A. 패션 에디터는 주로 현재의 트렌드를 읽고 분석하거나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모든 일을 합니다. 사실 패션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일은 다 해요. 주로 유행을 분석하는 글을 쓰거나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화보를 찍지만 그 세계 안에 있는 사람도 만나고 제품도 기획하고 파티도 주최하죠. 저는 일할 때 만화책이나 여행안내서를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영화도 찍었어요. 에디터는 전천후로 그 모든 일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을 하는 직업입니다.



Q. 에디터로서의 경험(이력)이 현재 한의사를 하면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나요?

A. 패션 에디터와 한의사는 전혀 다른 분야지만, 일할 때 요구되는 역량은 꽤 겹쳐요. 다시 돌아가도 에디터를 거쳐서 한의사가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도움이 된 경험이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건 사람을 대하는 맷집을 얻었다는 겁니다. 패션 에디터도 ‘기자’의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 만나는 게 곧 일이거든요. 더구나 그쪽 분야에 흔히들 말하는 ‘센캐(센 캐릭터)’들이 진짜 많아요. 자기주장 강하고 취향 예민한 분들께 둘러싸여서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저야 뭐 그분들이 정말 다정하고 좋은 분들인 걸 알지만(웃음) 어쨌든 그런 세계에서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한의사도 서비스직이고, 서비스직의 숙명은 누가 고객으로 올지 전혀 모른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저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센 분이 와도 별로 두렵지는 않아요. 아무리 세도 그분들보다 세진 않거든요(웃음).

 하나의 완결된 콘텐츠를 만들어서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도 기자 일하면서 단련된 능력입니다. 개원하고 지금까지 한약을 처방받는 환자들에게 각자의 상태, 진단, 처방, 복용법 등의 내용을 포함한 복약 안내서라는 것을 작성해서 드리고 있거든요. 한 사람당 A4 2~3장 분량인데 처음에는 한두 개여서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12개까지도 쓰고 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춰서 쓰는 게 쉽지는 않지만 기자로 일하면서 글 쓰는 근력을 키웠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죠. 브런치에도 꾸준히 글을 쌓아가고 있고 그를 통해 책도 낼 수 있었던 건 다 그 시절의 훈련 덕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세련된 것을 판단하는 감각을 체득한 경험을 들 수 있겠지요. ‘패션계’라는 곳은 특히 미적 감각을 높게 평가하는 세계입니다. 에디터 일을 하면서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작품 같은 명품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고 예술에 가까운 물건들의 가치를 배웠지요. 패션에디터로 일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명품을 그저 허영이나 과시로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한의학은 일견 그런 것들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업을 하면서 이런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장점으로 쓰일 때가 많아요. 브랜딩이나 디자인, 패키지의 중요성은 한의원이나 한약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거든요.  

 그리고 덤으로 마감이 있는 직업을 가진 환자를 정말 빠르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지요(웃음). 진단을 내릴 때 환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생활 패턴을 파악하는 데서 오는 정보가 많은데 마감이 있는 직업을 가져보니 스트레스도 심하고 생활이 불규칙해서 몸이 상하기 쉽더라고요. 저처럼 다른 직업을 경험해보았다는 건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보았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어요. 꼭 패션계가 아니라도요.



Q. 혹시 미적 감각이나 센스를 배우는 꿀팁이 있을까요?

A. 일단 삶에서 그와 같은 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야말로 처음 패션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몰랐어요. 패션 씬에서 서울대 나온 사회초년생 따위 우물 안 애송이에 불과했고 차라리 어릴 때부터 명품을 직접 만져보고 경험했던, 미학적 감각이 있는 친구들이 훨씬 잘나갔어요. 그만큼 많이 경험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전시도 보고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요. 그리고 돈 들여 멀리 가지 않아도 백화점 명품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해보세요. 에르메스 스카프의 색감이 얼마나 정교하고 조화로운지도 직접 눈으로 보고 프라다가 나일론을 얼마나 예술적으로 활용하는지도 가서 만져보세요. 저는 그게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는 것만큼 미적 감각을 기르는 데 유용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돈을 벌면 꼭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물건을 경험해 보세요. 카드지갑이나 열쇠고리처럼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요즘에는 ‘명품’이란 단어에 여러 가지 오해가 묻어있지만, 진짜 명품은 이름있고 비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미학적인 가치와 장인의 노동이 배어있는 ‘작품’으로 소비하는 겁니다.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말도 있지만 잘 만들어진 좋은 물건은 그 자체로 굉장한 힘이 있어요. 과시나 허영심이 아니라 잘 만든 물건이 지니고 있는 물성의 힘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해요. 좋은 물건 한 가지를 소유하고 오래 손때를 묻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경험을 꼭 해보세요. 눈으로만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 될 거예요.


부인과 진료


‘요즘 여자 건강백서, 달과궁 프로젝트’를 ‘브런치’로 시작하시고, 책을 발간하셨습니다.

Q. 책을 출판하시게 된 계기와 자세한 출판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사람들은 한의학을 잘 몰라요. 한의계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걸 외부에 알리기만 해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생각보다 인지도 자체가 없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한의원에 관심이 없는 층이 젊은 여성이지요. 제가 주로 보는 여성 질환을 겪는 분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실력이 뛰어나서 쓴 것이 아니라 사실 이 정도는 어떤 한의사라도 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한의학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펼치지는 못했고 가능하면 한의학적 지식이나 호감이 없어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쓰고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진짜 한의학의 내용으로도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처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그 글이 브런치의 초기 프로젝트였던 ‘위클리 매거진’에 선정되면서 적극적으로 노출이 되었어요. 다음 포털 메인에도 걸리고 하루에 조회수가 수천 회를 기록하기도 했으니까요. 이후에 스무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왔고, 그중 한 곳과 출간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의학에 관심이 없는 젊은 여성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풀어쓴 책이라니! 저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Q. 부인과 질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부인과를 주 진료과목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일단 제가 여자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예요. 스스로 여성 질환을 많이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 나이에 겪을 수 있는 부인과 질환은 거의 다 겪어봤거든요. 자궁근종으로 수술도 했고, 임신이 안 돼서 난임 관련 진료도 받아봤고, 월경통, 월경과다, 월경전증후군, 질염, 뭐 안 겪어본 게 없어요. 그런데도 저는 제가 건강하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제 몸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죠. 뭐가 문제인지 몰랐던 어린 시절의 저를 위해서, 지금의 나를 위해서, 미래의 저를 위해서 공부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에게 오는 환자들은 모두 어느 시점의 제 모습이에요. 그래서 그분들을 대할 때 안타깝고 기꺼운 마음으로 치료하게 돼요. 제가 치료를 통해 좋아졌고 그분들도 저처럼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지겹지 않아요. 실제로 호전되는 환자들이 많으면 진료가 정말 재미있어요. 한의학 공부를 덕질에 비유하자면 부인과가 저의 최애라고 할 수 있겠죠. 최애에 대한 애정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계속 이 분야를 파겠지만 최애는 움직이는 것이니 앞으로는 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겠죠.



Q. 앞으로 여성 질환 치료에 있어서 한의학의 전망에 대한 원장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A. 개인적으로는 여성질환, 정신과 질환, 피부질환에서 특히 한의학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이 분야들의 공통점은 서양 의학에서 진단은 매우 발달해 있지만 치료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한의사 선생님이 ‘서양의학의 한계가 의학의 한계는 아니다’라는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말이 여성 질환의 치료에서 정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여성질환에 대해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 방법은 서양의학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분되어 있어요. 일본은 의사들이 한약을 처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데 가장 한약을 많이 처방하는 과가 부인과라고 해요. 그만큼 여성 질환에 한약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뜻이겠죠. 진단은 촘촘한데 그에 맞춘 치료가 부족한 한계를 한의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환자를 진료할 때 원장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A. 초진 상담이 가장 중요합니다. 첫 상담은 치료라는 집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와 같거든요. 초진 상담을 성실하게 하면 진단에 활용할 근거가 풍부해지고 치료 계획을 정확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또 치료 도중에 반응이 여의찮아도 따라오는 환자들의 흔들림이 줄어요.

 또한 앞서 말한 복약 안내서를 활용합니다. 복약 안내서는 실제로 환자한테 말하듯이 편지처럼 써요. 당신이 여기 왜 왔는지, 어떤 증상을 주로 호소하는지, 어떤 것이 문제라고 판단했는지,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무엇인지, 진단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또 이렇게 치료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다거나, 치료를 해도 100% 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거나 하는 말도 가감 없이 설명합니다. 앞으로 진행할 치료의 순서와 그에 따라 증상이 어떻게 좋아질 것인지도 알려줍니다. 그러면 환자들은 따라옵니다.

 사실 이름은 복약안내서지만 실제로는 ‘환자 교육 자료’와도 같습니다. 자기 몸에 대해 잘 몰라서 인지하지 못한 문제나 관리하지 못한 질환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정보들을 알려주는 과정이거든요. 초진 상담을 복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환자와 만나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저와 나눴던 대화는 진료실을 나서자마자 휘발되고 100% 남아있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복약안내서를 주고받으면서 환자가 스스로 ‘내가 무슨 치료를 받고 있었더라, 뭘 지켜보라고 했더라’하는 나름의 계획을 갖게 되면 치료는 오히려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과정이에요.

 다만 복약안내서 때문에 제 한의원에는 하루에 감당할 수 있는 한약 환자 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복약안내서를 더 빠르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가능한 상담 환자 수를 늘릴 수 있겠죠(웃음).



Q. 인생 그래프를 그린다면? Up(가장 뿌듯) &Down(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극복 방법)

A. 저의 인생 그래프는 계속 상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정점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씩 끊임없이 올라가는 주식 같은 느낌(웃음)? 제가 ‘이만하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앞으로 계속 정점을 갱신하면서 발전하는 게 목표이기도 하고요. 반대로 크게 좌절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후회를 별로 안 하는 성격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후회할 시간에 앞으로 치고 나가자는 쪽이라 어떤 일이든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힘들긴 했지만 지나고 보니 괜찮은 경험이고 거쳐야 할 과정이었겠지’ 하고 말아요. 그래서 그런지 업 다운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지는 않더라고요(웃음).

 한편으로는 제 인생 그래프가 동그라미 모양 같기도 합니다. 인생이 프로젝트라, 시작해서 동그라미를 하나 완성하면 마무리해서 보내고, 또 새로운 동그라미를 시작하는 거죠. 몰두해서 동그라미를 완성하면 과거로 또 굴려 보내고… 완성된 동그라미를 쌓아나가는 느낌? 지금 생각해보니 첫 직장에서 마감하는 방식으로 일을 배워서 그 습관이 남아있는 것 같네요(웃음).

새로운 동그라미를 만들어가는 원장님을 응원합니다!


Q. 어떤 분들에게 한의사라는 직업을 추천하시나요?

A. 일단 ‘성실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아요.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와 별개로 혼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 성실하게 반복적인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 사람이요. 생각보다 반복되는 루틴한 업무가 많은데 그걸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특히 한의사는 어느 정도 문과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 맞을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상태를 마치 맥락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어낼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의사의 진료가 수학이라면 한의사의 진료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해요. 이 맥락을 잘 구축할수록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고요.



Q.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한의학은 멋진 학문이에요. 아직 정량화나 정형화되지 않아 한계는 있지만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한의사로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공부하면서 좌절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아요. 미리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면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좋은 직업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의사는 좋은 직업이 될 가능성이 여러모로 높습니다. 그러니 미리 가능성을 닫지 말고 더 큰 꿈을 꾸시기를 바라요.



Q. 앞으로의 목표, 되고 싶은 한의사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A. 한의사로서 환자를 잘 보고 싶어요. 저에게 오는 환자가 웃으면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 생활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거든요. 나아가서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방향성과 가치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 글을 쓰거나 목소리를 내는 일을 힘들어도 계속해나가는 것이겠지요.

 한편으로는 함께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비전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더욱 저 스스로가 어떤 의미로든 성공해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공부도 재미없는데 희망도 없고 ‘저렇게 되고 싶다’는 사람도 없으면 슬프잖아요. 가능하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서 한의사가 멋진 직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희망적인 지표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 무던히 노력해야겠지요.

 좁게는 결혼이나 출산을 이유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여자 한의사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의지도 있지만 여러 외적인 요인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은 안타까우니까요. ‘여자 한의사가 지속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주 3일 근무와 같은 단편적인 생각부터, 여자가 잘할 수 있는 진료는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도 계속해요. 이러한 지표를 만들어서 일할 수 있는 장도 제공하고, 방향성도 공유해서 같이 나누고 싶어요. 근데 아직은 제 코가 석 자네요(웃음).



Q. 앞으로 원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저는 세상을 바꾸진 못할 것 같은데요(웃음). 사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욕심이 없어요. 대신 한 사람의 인생은 바꿀 수도 있겠지요. 제가 1대多(다)에는 약한데 1 대 1에는 좀 자신 있거든요. 한 사람의 지독하게 아픈 곳을 치유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집념을 가지고 파고드는 편입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세상을 조금씩 바꾸다 보면 이 세상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지 모르지요.


 한의학을 알리는 과정 속에 에디터 경력을 적절히 발휘하시는 원장님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여성 질환 치료에 있어 한의학의 지평이 넓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장님의 앞날을 대만드가 응원하겠습니다~


Interviewer. 코알라, 고슴도치, 비버

Writer & Editor.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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