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때의 공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2015년 7월호 매거진 <뮤인>에 게재된 인터뷰 원고입니다. 교정 전 원고이고요. 오래전 대화였지만 지금도 유효한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와의 대화를 이곳에 남깁니다.
책은 삶의 어떤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가령, 이런 순간들. 1980년대였나?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에는 책을 빌려주는 1톤 트럭이 오곤 했다. 독서광이었던 엄마와 만화광이었던 언니들의 심부름을 도맡았으니, 트럭이 오는 날엔 잽싸게 달려 나갔다. 엄마는 장길산 시리즈의 팬이었고, 조숙했던 언니들은 <장미의 이름>에 열광했었다. 중학교 때는 교실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풍이 불어 닥쳤다. 개미처럼 생각하고, 개미처럼 말하는 게 유행이었다. (1993년에 출간된 <개미> 한국어판은 1년 만에 70만 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엔 책 좀 읽는다는 친구들이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은둔형 괴짜 소설가 책을 끼고 다녔다. 대학교 때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학보사 선배는 말문이 막힐라치면 이 말을 던지고 유유히 떠났다. “네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알아?”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잡지사에서 애서가의 서재 인터뷰를 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생각했다. 화가 고낙범의 그림이 표지로 도배된 <프로이트 전집>이 없으면, 애서가가 아닌 거다. 최근에 만난 한 편집인은 19권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매그레 시리즈>를 두고 자조 섞인 어투로 말했다. “책을 이렇게 만들어도 안 사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사는 건가?” 돌이켜 본, 이 모든 기억들은 불가능하다. ‘열린책들’이 없었다면. 그래서, 고맙다. 1986년, 러시아문학 전문출판사로 시작한 열린책들은 내년에 30주년을 맞는다.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를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다. 핑계를 댔다. 내년이 30주년이 아닌가. 간곡한 메일을 보냈다. “한 명의 편집인의 일생이 어떻게 이렇게 넓고 깊어질 수 있는지, 멀리서 지켜보며 궁금해했습니다.” 몇 년 전, 그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냈을 때 출판일을 하는 그의 아들과 함께 ‘부자지간’을 주제로 간단한 인터뷰를 한 적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개관한 후, 스쳐 지나가듯 몇 번 보았지만 마주 앉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올해 초, 이슬기 작가의 전시 간담회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심드렁하게 반응했던 몇몇 기자들 덕에 화가 좀 났었는데, 그는 고요했다. 문득 그는 왜 미술관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60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보통 어떤 선택을 할까. 은행 대출 이자를 끼고 강남땅에 150억짜리 건물을 산다면 수익이 엄청날 텐데,라는 생각도 얄팍하지 않은 세상에 산다.
홍지웅 대표는 경기도 파주에 미술관을 지었다. 주체 못 할 만큼 많아진 컬렉션을 보관할 용도로 개인 미술관을 짓는 사람들과도 다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텅 비어진 채로, 한국 작가들을 분기별로 초대한다. 전시할 때마다 또, 돈을 쓴다. 아마, 오랜 시간 꿈꾸었을 테다. 출판인으로 성실히 살았던 지난 시절에 대한 보상. 그의 선택이 아주 많이 근사하다.
“인터뷰를 한다고는 했는데, 그러고 나선 후회를 좀 했어요.” 인생 성공담처럼 들릴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과거 말고, 현재와 미래 이야기만 하자고 했다. “어이쿠. 미래요? 어쩌나. 이제 일을 조금씩 줄여보려 하거든요”라 말했는데 웬걸. 그는 여전히, 온전히 집중되어 있었다. 책을 만드는 일, 책을 둘러싼 일들. 말은 이어지고, 이어졌지만 지면 관계상 줄이고, 줄일 수밖에 없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임명을 앞두고, 출판계가 긴장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엔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출판계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중 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시더라고요. 에이, 그거야 출판계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하는 게 맞고. 출판인으로서만 이야기하자면, 그런 건 있어요. 우리나라가 출판의 종주국이다,라는 걸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는 거죠. 흔히 구텐베르크 이야기를 하잖아요. 인쇄술의 발견으로 지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건데, 공인된 직지심체요절만 하더라도 구텐베르크보다 80년이 앞섰는데 왜 이걸 활용하지 못하냐는 거죠. 이게 별 것 아닌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또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거의 4백 년의 역사를 기록을 한다? 이런 기록 문화가 어디 있나요. 물론, 지배 계층의 통치사를 정리한 것이지만. 18세기 말을 평등과 근대의 개념이 생겼다고 본다면 그 이전, 고전 시대의 문학이라는 건 대개 영웅 서사시나 왕의 통치사, 지배 계층의 문학이거든요. 그걸 감안하면, 조선왕조실록은 대단한 기록물이죠. 왕실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 그렇게까지 체계적으로 비주얼 화해서 기록된 것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그걸 제대로 활용할 ‘브레인’ 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거 같아요. 간혹 문화부 쪽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해요. 직지심체요절이 만들어진 옛날 방식을 재현해 보면 어떨까요? 당대 최고의 서예가가 쓴 서체로 만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지금의 최고 서예가가 누구냐? 잘 선정을 해서 한글꼴을 아주 스탠더드 하게 쓰게 해서 옛날 방식으로 활자를 만들고, 지금 최고의 장인이 만드는 한지를 써서 제본을 하고. 한국의 대표 시 100선을 주제로 잡아도 되고, 대표 시인의 시집을 한 권만 만들어도 좋겠고요. 국가 정상들이 오면 선물하면서 최초의 인쇄술 이야기도 하면, 얼마나 폼나요. 그거 돈이 얼마나 들겠어요?
출판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3대 요구 조건 중 하나가 ‘출판진흥기금 5천억 원 조성’인데, 가능한 일인가요?
그것도 10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인데 그냥 돈 내놔라, 할 수는 없잖아요. 당위와 아이디어가 있어야 되는 일이죠. 1년 예산 중에 문화 산업에 쓰는 돈이 꽤 되는데, 그중 출판 산업에 쓰는 돈이 2백 억 정도예요. 산업적인 규모를 영화와 비교하자면, 출판이 두 배정도 되는데 그에 비해 지원은 터무니없죠. 작년에 영화 관객이 1억 5천만 명 들었다고 하는데, 한 편 값을 7천 원으로 잡으면 1조 천억 원 정도 되는 거잖아요? 출판은 서점에서 팔리는 금액만 기본적으로 2조 5천억 원 정도 보고 있어요. 예전에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 하던 시절에, 영화진흥기금을 4천억 만들어줬어요. 요즘에 성공한 영화들도 어느 정도 그 혜택을 받은 면이 있겠죠. 정부에서 천 억씩 2년간 줬고, 나머지 2천억은 영화 볼 때 거두는 기금으로 만들었어요. 우리도 예를 들어, 책 값이 5천 원이라 하면 거기서 1%가 2백 원이잖아요. 정가를 4천8백 원으로 하고 2백 원을 기금으로 한다, 나중에 그걸 각 출판사가 진흥기금으로 내면 되거든요. 이런 걸 할 때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당위를 만들어가야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두고, 영국의 건축 사진가 네이선 월록이 한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위대한 건축은 위대한 클라이언트로부터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콤비가 더욱 자주 모방될 수 있기를.” 건축물은 어떤 장소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 순간, 건축주의 것이 아니에요. 책도 그렇거든요. 우리가 기획하고 만들지만, 발행되는 순간 공공의 것이에요. 잠시 일정 기간 소유할 수 있을 뿐이지, 개인의 집 또한 개인의 것이 아니에요. 아파트를 사서 평생을 산다고 해도 3,40년을 쓰잖아요. 보통 콘크리트 건물이 백 년을 가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건축물을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되죠. 아무리 개발 논리가 우세했다고 해도 한국의 아파트 건축은 유래가 없는 일이에요. 미술관을 지으려면 제대로 짓자,는 생각이 있었고. 특히 이런 공공건물, 미술관은 더 그렇잖아요. 오늘도 건축과 학생들 두 팀이 왔어요. 방문하는 친구들이 나도 이런 건물을 디자인하고 싶다, 좋은 건축가가 되고 싶다, 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7년의 건축 기록을 담은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를 보면, 알바로 시자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데요. 미술관을 사용하면서, 전시를 하면서 더욱 느껴요. 정말 거장이시구나.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이곳은 정말 전시할 예술가들을 배려한 공간이구나. 공간 전체가 순백색이라 곡선, 직선, 벽면이 있어도 공간 구분이 안 느껴져요. 넓은 공간에 작품 한 점을 걸면, 공간이 압축되어 보이기 때문에 작품이 아주 도드라지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누이동생의 집을 스위스에 설계하면서 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다 드러내려 하지만 대가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말이 알바로 시자에게도 딱 적용될 수 있는 거죠.
여러 번 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간적으로는 어떤 분이신가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겸손, 예의가 있으신 분이고 아주 검소해요. 항상 입는 바바리코트도 꽤 오래된 것이고, 금테 안경을 끼잖아요. 한쪽 테가 부러졌는데 테이프로 감아서 계속 쓰시더라고요.
요즘 출판계에선 e북이 화두인데, 열린책들이 또 히트를 쳤어요. ‘열린책들 세계문학’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을 때, 전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었죠. 스마트폰 시대에 퍼블리싱을 가장 잘하는 출판사가 아이러니하게도 종이책을 예쁘게 만드는 전통적 출판사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북잼’이라는 곳에서 제안이 와서 진행했고. 물론, 폰트를 다듬고 편안하게 읽힐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은 있지만 중요한 건 콘텐츠예요. 종이로 가공을 하건, e북으로 가공을 하건 콘텐츠가 엉성한데 잘 된다? 그건 있을 수 없어요. 베르나르가 나오면 무조건 1위를 한다, 100세 노인(<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1위를 했다, 하는데 책이 안 팔렸으면 그게 1위를 하나요? 이건 좀 낡은 이야기지만, 다른 인터뷰에서 나왔던 거면 빼도 좋아요.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에서 언급했던 이야기인데, 독창적인 것, 새로운 것을 예술품이라 정의한다면 저는 책도 예술품이라 믿는 사람이에요. 단, 그림은 한 점이고, 조각은 열 점도 만들 수 있고, 책은 좀 더 에디션이 많은 거죠. 천 권, 이천 권? 베스트셀러 빼곤 대부분의 책들은 거기서 끝나잖아요.
예술품 같은 책, 이라고 해서 생각났는데, 작년에 드디어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을 완간했다고 들었습니다. 5년이 걸려서 어떻게 나오긴 했는데, 사실 몇 억 손해 봤죠. 그래도 우리가 판단해서 괜찮은 책이다, 하면 해보는 거죠. 타이밍과 의지, 마케팅과 홍보 전략, 이 모두가 잘 맞물려야 해요. 볼라뇨의 경우 그런 게 잘 안 맞았어요. 일정한 기간을 두고 끊임없이 알려야 하는데 역자들이 꼬이는 바람에 제때 탁탁 탁탁, 안 됐어요. 세계 문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가고, 더 알렸어야 하는데 못했어요. 아쉽죠. 생존 작가도 아니고, 작품집을 완간한 경우라 다시 주목받는 건 거의 힘들다고 봐야죠.
열린책들 하면 일명, 전작주의. 한 작가의 전체 책을 출판한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번역가가 되었든 저자가 되었든 괜찮다고 판단이 되면 끝까지 같이 가는 것이 너무나 빤한 생각이에요. 기발한 생각도 아니고. 한 권을 내보고 안 팔리면 안 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이 사람은 정말 괜찮은 소설가라 생각하면 안 팔려도 끝까지 내요. 확고한 믿음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성공한 케이스도 많았어요. 폴 오스터도 처음엔 안 팔렸어요. 지속적으로 내다보니 마니아층이 생겼다, 스터디 그룹이 생겼다, 하면서 7,8권쯤 쌓이니 반응이 왔었고.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처음 낸 게 1989년인데, 그땐 초판도 못 팔았어요. 한 달에 80권에서 100권, 1년에 천 권. 이윤기 씨가 번역도 기가 막히게 잘했고, 한 세기에 몇 권 나올까 싶은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 생각했죠.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그렇고, 저자를 알아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향수>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기막힙니까. 흔적도 없고, 누군가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향수’를 소재로 한 것. 모든 인류를 한 방에 제압하는 향수를 개발한다? 잘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으니 가능한 건데 지금 이 세계에 대입하자면 뭐가 있을까요? 종교? 기독교? 절대적인 지식? <향수>는 실은 인간 사회에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온 절대적인 것에 대한 패러디예요. 아무튼, <향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계속 쥐스킨트의 작품이 나왔어요. 3년 뒤엔 <좀머 씨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1위를 하니까 1996년도 그 해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쥐스킨트 작품이 4개 올라갔어요. <향수>와 <콘트라베이스>도 함께. 정말 이렇게 좋은 소설을 안 본다고? 이런 확신이 있으면 가는 거죠. 독자가 이기나, 내가 나가떨어지나, 한번 해보자.
‘열린책들은 책값이 터무니없이 싸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일종의 판매 전략이신가요?
책을 낼 때 큰 바탕을 깔고 있는 원칙 같은 게 있어요. 독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인데 어떤 독자가 살 것인가, 하는 타겟층으로서의 독자가 아니에요. 열명이 됐든, 천명이 됐든 그걸 사 볼 독자죠. 정가를 매길 때도, 이 책을 볼 독자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이 얼마일까를 생각하죠. 똑같은 소설이라도 우리는 다른 출판사보다 항상 쌌어요. 보통 가격을 매길 때 출판사 입장에서는, 로열티 얼마, 번역비 얼마, 홍보비가 얼마 들어갔는지를 생각하죠. 제작비가 2천 원 들어갔으니, 일곱 배를 해서 만 사 천 원. 전 그런 거 잘 몰라요. 독자가 이런 정보, 이 정도의 재미를 얻기 위해선 얼마 정도 투자해야 적당할까, 그거를 생각해요. <돈키호테>도 두께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거든요? 한 번 팔고 끝날 게 아니고 계속 팔릴 것이라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출판사마다 전략이 다 다르죠.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낼 때, 제작비가 4,5억 들었는데 처음엔 반도 못 건졌지만, 버전을 달리하는 소프트 커버로 만들면서 많이 벌었어요. 나중에는 언젠가 다 집계 내보고 해서 이런 과정을 기록한 책도 하나 쓰려고 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 3부작에 ‘지웅’이라는 이름을 등장시킬 정도로, 유대 관계가 돈독하신데요. 작가와의 만남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1996년도에 런던에서 세 명의 작가가 ‘문학의 밤’ 행사를 한 적 있었어요. 움베르토 에코, <악마의 시>를 쓴 살만 루시디, 그리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어떻게 진행하는지 호기심도 들고, 에코가 우리 작가이기도 해서 갔었어요. 천 명 넘게 들어가는 앨버트 홀에서 하는데 무슨 콘서트 보듯이 낭독회를 즐기더라고요. 특별히 하는 것도 없고,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작가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게 다예요. 20분씩 두 명이 낭독, 20분 쉬고, 또 남은 한 명이 낭독. 인터미션에 많이 돌아들 가겠지, 했는데 커피 한 잔 하고 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요. 작가에 대한 예의, 글에 대한 존중, 뭐 이런 문화가 참 부럽더라고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그런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책과 미술, 디자인, 건축. 대표님이 그간 사랑해 온 것들이 조화롭게 모여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좀 더 사람들이 모이길 바라는데,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내년엔 열린책들 30주년인데, 우선 그간 저희가 해온 책 디자인이며,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한 것들을 어떻게 좀 재미있게 보여줄까,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고낙범 씨와 함께 한 프로이트 전집, 국내 화가 20인과 함께 한 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총서, 알렉산드로 멘디니, 카림 라시드와 한 작업들. 알바로 시자의 건축도 그중 하나고요.
예술서 전문 자회사인 ‘미메시스’의 책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건축, 그래픽노블, 예술 세 가지 분야를 다루는데, 특히 예술 쪽에선 예술가들의 육성을 기록한다는 점이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소설이나 시집을 내면 꼭 뒤에 해설이 있는데, 다른 나라도 그럴까요? 해설은 독자의 다양한 독법, 다양한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나침반이 있으면 다른 생각을 덜 하게 되듯. 미술 도록 앞 뒤에 붙는 소위, 미술 비평을 봐도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대중과 괴리된 글이 많고. 물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평론보다 더 중요한 건 예술가들의 생각인 것 같아요. 피카소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는지. 물론, 그런 책만 내겠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작가의 좋은 생각을 담은 책이 있다면, 미메시스에선 그걸 우선순위로 둔다는 거죠. 아이 웨이웨이의 대담집을 좋게 봤다고 이야기하셨지만, 건축 책도 가능하면 본인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방식이죠. 프랑크 게리가 산전수전을 겪었던 이야기를 담은 <게리>라는 책 보면, 아주 소설처럼 재미있어요.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인 사회라서 그런지, 이런 질문에 다들 코웃음을 치는데요. 언제 행복을 느끼시나요? 신간이 대게 금요일에 나오거든요? 주말이 신간을 보는 시간이에요.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잖아요. 어떤 때는 가슴 뭉클할 때도 있어요. 심지어는 최근에도 그래요. 얼마 전에 <부모와 다른 아이>를 읽다가 아, 내가 출판을 하고 있구나!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아이, 부모와 다른 온갖 아이들이 나오는데, 정말 대단한 책이에요.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를 가진 부모만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정상인 보통 사람들이 봐야 해요.
나보고 일 중독자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사실, 책 보는 것, 디자인 생각 하는 것, 내 일이기도 하지만 또 취미이기도 하거든요. 전 <장미의 이름>를 네 번 탐독했어요. 새로운 버전을 만들 때마다 또 읽는데, 또 그렇게 재미있어요. 와, 이거 정말 번역이 기가 막히다 하면서.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는데,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남은 것은 영락한 이름뿐. 이런 식의 표현 있잖아요. 곱씹을수록 그렇게 기막힐 수가 없어요. 지금도 그런 거 볼 때마다 와, 이거 에코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그런 게 최고의 낙이죠. 그리고 뮤지엄에 사람들 많이 와서 좋아하면 기분 좋고. 딱히 뭐, 다른 건 없어요.
글 김만나
문화인류학, 건축도시디자인을 공부한 뒤 아트와 건축, 디자인 분야를 취재하며 글을 쓰고 있다. <JJ 매거진>, <헤리티지 뮤인>, 월간 <디자인>에서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디자인프레스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매거진 <find>를 론칭했다. 인스타그램 @mannakim_revie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