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내놓은 그와 마주 앉다
2014년 12월호 매거진 <뮤인>에 게재된 인터뷰 원고입니다. 신형철 평론가와 도산공원에서 만나 인물 사진을 찍고 근처 애슐린 카페에서 나눈 대화 중 일부입니다. 그의 성실함과 집요함을 지금도 응원합니다.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시인 박연준은 시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없는 귀’라는 시구에선 서글픔이 느껴졌고, ‘손목의 리듬’에선 그럼에도 시 쓰기를 놓지 않을 그의 신성한 노동이 그려졌다. 읽히지 않는 글이 어디 시뿐인 세상인가.
얼마 전엔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낭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한국인은 1년 평균 9.2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조사되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소설가가 신간을 내도 5만 부면 대박이고 10만 부가 꿈의 숫자가 된 게 이미 오래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안다. 그중 신형철은 성실하게 평론을 쓰는 사람이다.
신형철이라는 존재는 출판계에서도, 일반 대중에게도 좀 특별하다. 평론책을 사서 읽는다? 문인이나 문학 애호가가 아니라면 그런 행위 자체가 드문 시절이 있었다. 신형철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가 나온 2008년 이후, 상황은 조금 바뀌었다. 평론집을 읽는 게 쿨하고 멋지고, 또 할 만한 일이 되었다. 문인들도 그의 등장을 반겼다.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판결하고, 문단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평론가들의 삶과는 무관했고 그는 ‘까는’ 글이 아니라 ‘낳는’ 글을 썼으니까.
이달 칼럼니스트 레터에서 시인 김소연이 신형철의 새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소개했고 그중 한 단락은 이렇다. “그는 자신이 매혹당한 작품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신사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 결혼식에서 신부가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신랑처럼 그는 글을 쓴다.” 좋은 것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근사한 길이라는 것, 신형철의 글 어느 하나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새 책을 내면 인터뷰하겠다는 2년 전 약속을 지킨 자리니까요.
죄송해요. 어쩔 수 없을 때는 간혹 하지만 신나서, 반갑게, 즐겁게 하지는 못해요. 글을 읽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사전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게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요.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선입견 없이 글을 읽는
것이라 생각해서 인터뷰는 최대한 줄여보려 해요.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내면서 머리말에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이다”라는 로맨틱한 문장을 남기셨어요.
평론이라는 장르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드물잖아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책의 머리말?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내면서 어머니, 친구, 이번엔 결혼할 사람. 이 책을 낼 시점에 아내가 될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로 제겐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의 입에 오를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연인이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평론가님의 인기가 점점 높아진 탓도 있는 거 같습니다.
방송, 팟캐스트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접근하기가 쉬운 책임을 감안해도 이전 책에 비해 팔리는 양과 속도가 어리둥절할 정도예요. ‘빨간 책방’과 같은 프로그램은 워낙 팬덤이 크고, ‘문학 이야기’는 마니악한 방송이라 소수 분들이 열정적으로 청취하는 프로라고 생각했거든요. 책이 나온 지 한 달 됐는데 4쇄, 8천 부 정도 나갔다고 들었어요. 방송의 힘이 큰 것 같아요.
첫 평론집이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도 2만 부는 팔린 걸 보면, 평론가님의 글이 기존의 평론과는 확실히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동료들을 비판하는 게 될 수 있어 조심스럽긴 한데요. 사실, 쉽게 써야지 하고 써본 적은 없어요. 뒤집어 말하면 글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스스로 제어한 적도 없고요. 글의 포인트가 쉽냐, 어렵냐가 아니에요.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을 절실하게 쓰는 글과 애매하게 아는 것을 현학적으로 쓰는 글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확실하게 아는 것을 정확한 문장으로 쓰는 것. 그렇다면 그 글은 절대 어려울 수 없다고 생각해요.
글에 실제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좋습니다. 가령, 이번 책에서 영화 <그래피티>를 말할 때 소유즈가 지구를 향해 착륙하는 장면을 난소를 향해 정자가 돌진하는 장면으로 로 비교하면서 이렇게 쓰셨어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남편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기도하고 응원할 뿐이다. 부디 성공하기를, 기필코 태어나기를.”
네. 제가 뭘 알겠습니까만 그렇게 썼죠.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논증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삶의 어떤 부분에서 사례가 딱 찾아질 때가 가장 좋아요. 슬라보에 지젝은 어려운 이론이 대중문화 텍스트와 연결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 이론이 성공한 거라 말한 적 있어요. 고매한 철학자의 이론이 B급 영화와 맞물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보통 평론이 이론의 영역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를 낳는다든가, 연애의 시시콜콜한 순간으로 넘어가는 접속의 순간이 떠오를 때면 아, 이 글이 이해받을 수 있겠다 싶어요.
평론 중에 한자어나 개념어를 가장 덜 쓰는 글이 아닌 가 싶어요.
평론글은 글쓰기에서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어 있어요. 그래서 주로 시도하는 게 어휘의 층위인데, 저의 경우는 문장이에요. 같은 이야기라 해도 더 심플하고 평이하면서도 임팩트가 강한 문장이 있다, 문장을 찾아 바꿔 쓰는 거죠. 이런 예는 쑥스럽지만, 가령 아까 말씀하신 문장의 첫 버전은 “그녀를 정확하게 사랑하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다” 이런 거였어요. 나의 진심을 담은 그냥 고백이니까. 근데 이게 찜찜함이 남아요. 그러다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이다”가 떠올랐어요. 살아질 것이다, 수동형이 포인트죠. 편집자가 봤다면 당장 고칠 문장인데 그냥 이거다, 싶은 거예요. 평이한 단어 속에서 더 정확한 문장을 찾으려 노력하는데 그게 아마 독자들에게는 어렵지 않으면서 이 사람 뭔가 문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모든 글에 이 정도로 신경을 쓰시지는 않죠?
아니에요. 신경을 써야죠, 써요. 저는 평론을 쓰는 것이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평론은 실용적인 글이지만 동시에 미학적인 글이 되어야 하고, 창작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요.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제가 느끼는 감정은 열등감도, 우월감도 아니고요. 동료애예요. 평론가가 창작자와 날을 세워야 한다, 그걸 평론가의 진정성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가 평론가로서 하고 싶은 일은 평론이라는 장르를 통해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거든요. 통찰을 담고 있으면서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글. 그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제 글쓰기예요. 문학을 스포츠 경기와 비유하자면 전 심판으로 뛰는 게 아니고, 다른 종목의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이죠. 달리기 선수가 수영 선수에게 잘하네, 못하네 할 수 없잖아요. 각자 잘하는 거죠. 단, 문인들과 함께 가야죠. 그들의 작품으로 제 글이 만들어지는 운명을 수락한 것이기에 같이 가지만, 저의 길을 가는 거죠.
<씨네 21>에 연재할 때부터 글을 보긴 했지만, 어쩌면 영화 평론도 이렇게 잘 쓰나 싶었어요. 그러다 위안이 된 건 “한 편의 영화를 대여섯 번 보고, 열 줄로 이루어진 단락 열네 개를 쓰고 나면 한 달이 지나갔다”는 말이었어요. 이 책은 그렇게 느끼시라고 쓴 거예요. 전 천재가 아니라 많이 보는 수밖에 없어요. 작품을 얼마나 들여다봤느냐가 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평론이라는 장르예요. 천재성이라는 면이 소설보다 시가 더 작용한다면, 평론은 타고 남보다 노력이 훨씬 중요한 파트예요. 그 노력이라는 게 열심히 들여다보는 거고요. 누구라도 영화를 대여섯 번 본다면 많이 보일 거고, 사실 제 글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글 쓰는 사람들, 글을 쓰지 않더라도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단단한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는 시점이 되면 정신이 공허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좀 다르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이번 책은 영화에 대해 쓴 것이지만 제가 문학 평론을 하면서도 항상 생각하는 주제이기도 해요. 삶은 있지만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 생각하는 순간들이 올 때 가장 유용한 매체가 있다면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멋진 음악이나 예술품 앞에서는 와, 압도되는 순간이 있지만 조근조근, 차근차근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건 소설이죠. 인생은 이럴 수도 있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이런 거고, 네가 마시는 커피 한 잔도 오늘의 커피가 어제의 커피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늘 책을 통해 경험하는 사람들은 삶의 무의미함에 부딪혔을 때 충격은 덜하지 않을까. 삶의 의미라는 문제에 대해 제일 친절하게, 잘 상담해 주는 장르가 문학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문학이 제일 위대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2013년 여름부터 1년 남짓 ‘문학 동네 채널 1-문학 이야기’를 맡아 팟캐스트를 진행하셨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건 2회 방송에서 장편과 단편을 나누는 평론가님만의 구분법이었어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죠. 인생에서 한 번 드러나고 나면 되돌아갈 수 없게 되는 순간이요. 멋을 부려 어디서는 삶이 진실에 베이는 순간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그 순간을 노력한 작가들일수록 쓱, 베고 지나가거든요. 처음엔 무슨 일이 있었나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쓱 배어 있는. 그걸 떠들썩하게 보여주지 않아서 단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이게 끝이야?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그 비참한 상황 이후에 어떻게 생존하느냐, 그걸 보여주면 그런 이야기가 장편이 되겠죠. 쉬운 응답이 있을 수 있고 무응답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장편이란 잊을 수 없는 응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정답은 아니지만 제가 갖고 있는 장편과 단편의 구분법이죠. 사실, 이게 도식적인 구분이긴 해요. 비평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붙이고, 짝을 붙이고, 배치하는 작업이고 그렇게 그려진 지도를 보여주 는 게 평론의 역할이라. 도식화가 작품의 섬세함을 훼손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어 항상 조심해야죠.
평론가님의 팟캐스트도 그랬지만, 전반적으로 문학 쪽이 인기가 좋네요. 책을 읽는 건 점점 싫어하는데, 듣는 것은 왜 좋아하는 걸까요? 스마트폰이라는 매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지적 욕구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둘이 타협을 이룬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방송으로라도 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고, 종이책이 더 친숙한 사람이긴 하지만 가령 운전할 때와 같이 책을 읽지 못하는 상태에선 결핍감을 느껴요. 운전하면서 김영하 선생님의 ‘책 읽어주는 남자’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지만 외국에는 오디오북이라는 코너가 따로 있어요. 제레미 아이언스가 읽어주는 ‘더 리더’, 책을 읽는 남자라든지 콜린 퍼스가 ‘제인 에어’를 읽어준다든지.
문학 말고 다른 책들은 읽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국민 만화라는 ‘미생’은 보셨나요?
만화고, 장르 문학이고 편견은 없는데 시간적 한계 때문에 못 봐요. 한 달에 읽어야 할 책이 소설 네 권, 시집 네 권, 비평가니까 인문학 서적도 읽어야 하고. 일주일로 치면 읽어야 할 책이 세 권인데 그 와중에 강의하고 사람도 만나다 보면 다른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요. 평론가라는 직업의 애로 사항 중 하나가 옛날 책을 못 읽는 거예요. 요즘 세계문학 다시 잘 나오잖아요. 엉터리 번역 책이 좋은 번역으로 나온 것 너무 읽고 싶은데 못 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고전 위주로 강의 커리큘럼을 짜기도 하면서 해갈을 해요.
읽을 책은 어떻게 선정하나요? 소설가 한강이 새 책을 내면 당연히 읽겠지만, 발굴의 측면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고 좀 읽어보는 거죠.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읽으면 느낌이 와요. 전 영화보다는 책이 훨씬 판단이 빠르고요. 이름도 모르는 저자인데 느낌이 심상치 않다, 문장이 남다르다 하면 눈여겨보죠. 비평하는 사람들에겐 그때가 무척 흥분돼요. 내가 뭔가 발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럴 리 없겠지만 글을 쓸 때, 혹시 행복감을 느끼시나요?
아아, 쓸 때는 괴롭죠. 제일 행복할 때는 글을 쓰려고 준비할 때예요. 어? 이 작품 되게 좋다,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건축물이 지어지듯 아이디어가 차곡차곡 쌓이잖아요. 쌓아나갈 때가 제일 행복해요. 왜냐면, 그때만 해도 이건 아주 대단한 걸작이거든요. 쓰기 시작하면 내가 설계한 건축물이 충분한 게 아니구나, 쓸수록 능
력에 회의감도 들고. 그러다 또 한 편을 쓰고 나면 약간의 대견함도 생기면서 이만하면 좀 괜찮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아주 가끔 들 때가 있는데 몇 년 지나면 또 부끄럽고.
올해 조선대학교 문창과에 취임한 첫 해입니다. 나희덕 시인과 이승우 소설가가 교수로 계시고 평론가님이 합류하면서 ‘문학 트로이카’ 체제를 갖추었다고요. 분야별로 한 명씩 생긴 거죠. 최근에 드라마 전공 교수님이 한 분 더 오셨어요. ‘각시탈’을 쓰신 유현미 작가님이에요. 저는 정말 제 직장이 감사해요. 좋아할 수 있는 분들이어서요. 이미 좋아해 왔고,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이고요. 직장도 복인데, 참 좋은 팀이에요.
잘은 모르지만, 교수 사회는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갈등도 많고 비리도 있는 집단으로 그려집니다.
여긴 전혀요. 100%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사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분들이라 남을 견제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 기록 경기 하시는 분들이니까요. 분야가 달라서 옆 사람이 잘하면 오히려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시인으로서 활동을 잘하고, 소설가로서 활동을 잘하면 같은 학교니까 자랑스럽죠. 유현미 작가님까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더 좋아요. 요즘 활약하고 있는 명지대나 동국대, 역사도 길고 전통의 강자인
서울예전이나 중앙대에 비하면 출발한 지가 늦었고 상대적으로 성과도 적지만 정용준 작가라든지 이제 슬슬 좋은 작가들이 나오고 있는 타이밍이에요.
소설가나 시인, 순수미술 쪽도 그렇고 창작자가 강단에 서기도 하지만 한쪽에선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다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선도 있지만, 그건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예로 조선대의 이승우 선생은 이곳에 온 지 13,4년이 되었거든요.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쓰셨고, 예전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으셨고 예술가로서 더 뛰어난 경지에 올랐어요. 예술가로서 나태해지는 건 본인의 문제이지, 시스템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교수를 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정적인 일이나 논문 등 병행해야 하는 일이 물론 있죠. 이걸 하면서 글을 꾸준히 잘 쓰느냐가 저의 숙제인데 게을러질 것 같진 않아요.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지금까지 해왔기 때문에, 그 열망이 게을러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부임 후, 광주일보에 실린 기사 중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광주가 지향하는 정치적 관점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평론가의 문학적 관점과 일치되는 시점이 있다.”
말이 되게 거창하지만 질문은 그냥 이거였어요. 고향이 대구인데 광주에 왔는데 어떠냐. 전 그런 건 전혀 상관없고 따지고 보면 광주가 제게 더 친근한 도시예요, 이런 뜻으로 드린 이야기였어요. 제가 정치적으로 좌파다, 진보적이다, 말할 수는 없어요. 그건 그런 입장을 삶에 관철시키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말이고. 그래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진보성은 지키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있죠. 제 또래의 글 쓰는 사람들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가 오히려 적을걸요? 거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죠.
얼마 전, 새 책을 낸 김영하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고급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삶을 단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에 공감하고 그렇게 산다고. 평론가님의 일상은 어떠한가요?
평온하고 단순한데 생각은 깊게 할 수 있는, 조용히 읽고 쓰는 일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이런 말은 20년, 30년 글을 쓰신 분들이 할 수 있는 말이죠. 작가 중에는 그런 분들이 꽤 있어요. 사람들 거의 만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글 쓰고 산책하고, 맥주 한잔 하고. 김영하 작가님 스케줄이 아마 이럴걸요.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잘 쓰는 사람들의 특권이죠. <몰락의 에티카>가 2008년에 나왔으니까 벌써 6년이 지났고. 이제는 긴 호흡으로 깊게 고민한 결과물을 내놔야 할 때라 두 번째 평론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음악으로 치면
두 번째 정규앨범인 셈이라 정말 잘 내고 싶고 또 하나 원하는 건 지금보다 좀 더 삶을 단순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을 좀 줄여가고 있어요. 광주에 있는 학교로 취직이 된 것도 적절한 타이밍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글 김만나
문화인류학, 건축도시디자인을 공부하고 아트와 건축, 디자인 분야를 취재하며 글을 쓰고 있다. <JJ 매거진>, <헤리티지 뮤인>, 월간 <디자인>에서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디자인프레스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mannakim_revie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