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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Jul 04. 2021

5월의 전보

베르메르의 <편지>

유년 시절의 나는 매년 5월이면 전보를 받았다. 학년이 바뀌고, 학급이 바뀌고, 담임 선생님이 바뀌어도, 나는 매년 5월이 되면, 전보를 받으러 교무실에 내려가곤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김정배, 교무실로 내려와”라고 부르시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 전보의 존재와 도착을 눈치채고 있었다. 나에게 5월의 전보는 연례행사였으니 말이다.


담임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전보에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우리 조카 정배, 생일 축하한다.”라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면 나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쉬는 시간을 이용해, 그 짧은 걸음으로 1층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어느 사무실 전화번호를 누르고는, “큰외삼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그 시절, 개인 핸드폰도, 개인 이메일도 없던 시절, 나와 큰 외삼촌은 전보와 공중전화로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메신저의 메시지, 혹은 sns 댓글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는 오늘에 비교하면, 전보와 공중전화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같다고 해야 할까?


거래처 담당자들과는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도 부족하다 나누면서, 가족들과는 언제부터인지 일주일에 한 통의 전화도 아쉽지 않게 느껴지게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게 된 걸까. 알고 보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만큼 슬픈 표현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 전화를 하고 싶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초등학생 사촌 동생에게도, 매년 생일 축하를 해주셨던 나의 큰외삼촌께도 전화를 하고 싶다. 아무래도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니, 더 전화가 하고 싶어지나 보다. 누군가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때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지금 그들과 마음으로나마 뜨겁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뜨겁게, 뜨겁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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