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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Jul 05. 2021

내가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상모를 돌리는 이유!

이케나가 야스나리의 <내가 속한 곳으로부터>

대만 친구와의 대화 중 익숙한 멜로디의 영화 ost가 흘러나왔다. 나는 혼자 신이 나서, 대만 영화들의 제목을 줄줄이 읊어댔다. 이 얼마나 로맨틱한 영화인데 아직도 보지 않았냐고 대만 친구를 나무랐다. 그 친구는 나에게 혹시 한국 드라마(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를 봤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할 새도 없이 당당히 이야기하였다. “응, 아니” (“No, I haven’t”)


참 흥미로웠다.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는 한국 사람과 대만 영화를 보지 않는 대만 사람! 미국 친구에게 왜 American Idol을 보지 않냐고 물을 필요가 없다. 프랑스 친구에게 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지 않냐고 나무랄 필요가 없다. 나라고 한국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과 모든 소설을 보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고 한식만 먹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한국인이라고 한국적인 문화만을 향유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퓨전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대만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Lisa Ono의 노래를 들으며 한 시간 정도 노을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 장면은 마치 내가 콘서트장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노을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일본 사람인 가수(Lisa ono)가 부르는 재즈 풍의 샹송을 들으며, 대만 친구와 영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가히 글로벌했다고 생각한다. 외면적으로는 단순한 두 친구의 대화에 불과했겠지만, 그 안에는 브라질과 일본, 프랑스와 미국, 대만과 한국, 이 6개 나라의 문화가 퓨전처럼 녹아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좋다. 세계 속의 나를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그래서 나는 한국 드라마 대신 미국 드라마를 본다. 대만 영화를 본다. 일본의 소설을 읽는다. 내 동생은 그런 나에게 “형, 그거 문화사대주의야.”라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세계의 일부로 느껴지는 게 너무나도 좋다.


사실 퓨전이라는 주제를 글로 쓰고 싶었던 배경에는 대만 국립 미술 도서관에서 접한 그림 한 점의 영향이 컸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그림의 이중성이 좋았다. 이 그림은 일본적이지만, 일본적이지 않았다.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담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전통 회화 기법을 그대로 고수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것 같지만, 현대적이다. 현대적인 것 같지만, 또 전통적이다. 일종의 전통의 현대적 계승인 셈이다. 나는 한국적이지만, 한국스럽지 않다. 나는 김정배지만, Scott Flinders다. 나도 일종의 퓨전 인간인 셈이다. 나는 이런 퓨전이 너무나 좋다. 경계를 허무는 것! 일상의 고정관념과 틀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어울림을 시도하는 것!

내가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상모를 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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