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동의 상모 버스커>
그녀는 한참이나 나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두 곡, 세 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동안, 그녀는 팔짱을 끼고 나의 춤을 진지하게 쳐다보다가는, 이내 또 그 팔짱을 풀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곤 하였다. 그녀는 나의 모자가 Cool 하다며(제법 멋이 있다며), 혹시 자신도 나의 춤을 배워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럼요, 그야 물론이지요. 다만, 당신의 지금 헤어스타일이 조금 망가질 수도 있어요. 하하하.”
그녀는 마음으로는 쉽게 원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실제로 상모를 써보니 원을 그리기는커녕, 벙거지에 달린 물채(막대기처럼 기다란 부분)를 움직이는 일부터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한국사람도 제대로 된 원을 그리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연습해야 하는 걸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시고 있는 거예요.”
계속되는 실패에 이제는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그녀는 나의 안내에 따라 열심히 연습하였다. 정말 대단한 열정과 집중력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외사(제자리에서 뛰며, 생피지로 동그란 원을 만드는 동작)를 완벽히 알려주기는 힘들 것 같아, 좀 더 쉬운 동작인 연풍대(몸을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돌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를 알려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그 동작에 만족스러워하고는, 그제서야 상모의 턱끈을 풀고, 머리 위의 두건을 풀었다. 자신에게 이 춤을 알려 주어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이 모자의 이름을 영어 알파벳으로 알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Sure. Why not? It is Sang-mo. And, you can also call it <Chae-sang>”
그녀는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네며 말하기를, 자신은 사실 스페인 출신의 안무가라고 이야기하였다. 나의 모자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나중에 자신의 작품에도 꼭 사용했으면 한다고 말하였다. 혹시 나중에 비즈니스나 여행으로 스페인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부담 느끼지 말고 언제든 연락을 해달라고 하였다.
“네? 스페인이요? 스페인 어디 도시요? 아, 마드리드요?! 마드리드 잘 알지요. 저 마드리드에서 버스킹도 했었는 걸요?! 여기 제 핸드폰에 그때의 사진과 동영상도 있어요. 그때 그곳 마드리드에서 당신을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그래도 이렇게 이곳 인사동에서라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사실,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를 다시 방문할 날이 다시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설령 내가 그녀에게 정말로 연락을 할 마음이 있기나 한 건 지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투우와 플라멩고, 그리고 열정의 나라, 스페인이 너무나도 가고 싶었었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내 안에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 대한 동경이 더 커져있어, 스페인은 여느 나라들과 다를 바 없는 나라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 스페인의 어느 한 도시에는 나, 김정배라는 사람을 기억해 주는 한 명의 친구가 생겼다. 물론 그녀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더 돈독한 우정을 만들어 나가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정 반대편에, 나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추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마치 우주의 저 어느 별에서인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있을 어린 왕자 덕분에, 오늘의 이 밤하늘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