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동의 상모 버스커>
멜버른 야라강 이남의 사우스뱅크에서 한 한국인 아저씨를 만나 뵌 적이 있다. 그 아저씨께서는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시고는, 자신의 코에 빨간 공을 붙이고 계셨다. 연두색 곱슬머리 가발에, 하얀색 도트무늬 가득한 빨간색 광대 복장! 그렇다. 그 아저씨께서는 멜버른의 한국인 삐에로이셨다.
아저씨께서는 평일에는 사무실에 출근하여 일반적인 회사원의 삶을 살고,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이면 이따금씩 이곳 사우스뱅크에 나와 버스킹을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연 중에 문득문득 한국인을 닮은 얼굴이 보이면, 자신의 이 우스꽝스러운 몰골이 부끄러워져 자꾸만 공연의 자신감이 위축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저씨께서 저에게 말을 걸어주시기 바로 전까지도, 저는 아저씨께서 한국분이실 거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 걸요?”
아저씨는 그래도 혹여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이 길을 지나치기라도 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하셨다. 멜버른의 한인 지역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좁은 곳이라며 말이다.
아저씨께서는 자신의 저글링과 마술로, 멜버른 시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하셨다. 회사에서는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이곳에 오면, 자신의 공연을 구경하는 이들의 웃음으로부터, 자신도 그 웃음에 전염이 되는 것 같아, 매주 주말이 마냥 기다려진다고 하셨다. 그래도 기왕이면 자신의 공연에는 한국분들이 덜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직까지는 한국인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 많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하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아저씨가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저씨께서는 왜 스스로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자기 자신을 그토록 부끄러워하시는 걸까.
서른이 넘고,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내 밑에 몇 명의 후배 직원들을 두고 보니, 그때 그 아저씨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그리 젊지 않은 나이! 회사에서의 지위! 사회에서의 위치!
특히나 아저씨께서는 결혼까지 하시어, 와이프와 처자식들까지 있으셨으니,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실 수 없으셨을 것이다.
“정배 씨, 혹시 요새도 인사동 가서 꽹과리 쳐요?”라는 질문을 가끔 거래처분들로부터 듣는다.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정배 씨는 역시 멋지게 산다니까?!”라는 그분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괜히 혼자 뜨끔하여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 이야기가 마치 “정배 씨는,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언제 낳아서 키우려고 그러고 있냐”는 질문을 돌려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금씩, 천천히,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