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소설 <어린 왕자>, 그 두 번째 기록
“특별히 구애받는 음식은 없지만, 지구인과 타액이나 혈액이 섞이는 건 안 됩니다. 그래서 늘 밥은 혼자 먹지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2화 中, 도민준(김수현)의 대사]
“찰나여서 더 소중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빛, 꽃, 그림자, 바람, 소리...... 우주적 관점에선 우리도 찰나의 존재들이죠. 그러므로 소중해요. (삶의 촉수 작가님의 브런치 글 <찰나> 중 일부)”
조선이라는 나라에 불시착하여, 400년 동안 늙지도 않고 영생을 해 온 외계 남자, 도민준 씨에게는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마음을 주는 일이 부단히도 거추장스럽고 사치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곧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일테니 말이다. 4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속 도민준 씨에게,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 역시, 참으로 찰나의 존재이었을 테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으로 자취를 했던 스무 살 때에는 햄스터를 키웠었다. 낮이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저녁이면 학회나 동아리 활동, 혹은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졌지만, 모임을 마치고 나의 방에 돌아오고 나면, 서울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는 안도감도 그때 그 순간의 일시적인 감정이었을 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너무나도 낯설고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햄스터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점배와 점순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주었고,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여느 햄스터들이 그러하듯, 나의 작은 친구들은 2년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가 정을 주고, 마음을 준 상대가 이 세상을 쉽게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족이든, 말을 하지 못하는 반려동물이든간에, 나에게 정을 준 누군가를 저 멀리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은 언제나 똑같다.
나는 그 후로도 10년은 더 넘게 자취를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나의 공간에 반려동물을 다시 거두지 않고 있다. 아니, 나는 아직까지도 나의 공간에 반려동물을 거두어 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그저 동네 길냥이들의 캣 대디 역할로 만족할 뿐이다. 개를 좋아하지만, 산책 나온 멍멍이들의 머리만 가끔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이고, 그에 동반하는 커다란 아픔과 슬픔을 다시금 감당할 자신이 나는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 혼자 산다. (나 자신이 비혼주의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애 중이지만, 말 그대로, 동거인이나 반려동물 없이, 나의 공간에 나 혼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400년째, 혼밥러(혼자서 밥 먹는 사람)인 도민준 씨도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곧 앞으로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일 테니까.
찰나여서 더 소중해지는 것들이 있다. 빛, 꽃, 그림자, 바람, 소리...... 우주적 관점에선 우리도 찰나의 존재들이다. 찰나여서 소중한 것들도 있다고 하지만, 어떤 분, 어떤 분과의 인연만큼은 결코 찰나이고 싶지 않다. 그대와의 인연, 당신과의 인연, 그리고 여러분과의 인연만큼은 결코 찰나이고 싶지 않다. 우리의 인연이 한 줄기 빛과 같고, 우리의 인연이 한 아름 꽃과 같고, 우리의 인연이 한 줄기 바람과 같다고 할지라도, 나와 그대의 인연만큼은 결코 찰나의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