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소설 <어린 왕자>, 그 세 번째 기록

by 김정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지구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더군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2화, 도민준의 대사 중]


며칠 전에 치과를 다녀왔다. 왼쪽 상단의 사랑니가 심하게 썩어 있어서 지금 당장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른손잡이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혼자서 또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오른손 잡이니까, 당연히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입에 넣기 편하게 왼쪽 어금니 쪽에 밥을 넣어왔겠지. 그렇게 한쪽 어금니만 30년 넘게 사용했으니, 그쪽 사랑니도 이제는 당연히 고장 날 때가 되었겠지. 내가 만약 왼손잡이였다면, 나의 오른쪽 어금니가 이런 운명에 처해져 있지 않았었을까?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것이 곧 우리네의 운명일 테니까.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어린 왕자를 죽인 뱀이 미웠다. 그는 어린 왕자가 지구에 와서 의지한 몇 안 되는 친구인데, 어찌 그리도 쉽게 어린 왕자를 죽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책을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뱀은 어린 왕자의 길을 밝혀주는 길잡이이자, 인도자, 현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를 떠나기 위하여, 어린 왕자가 그의 육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자, 필연이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하여 어떻게든 자신의 육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 속 뱀의 역할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장 변호사님(김창완)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자신의 오랜 친구를 위해 궂은일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고 나서 주는 이! 그런 믿을 만한 이가 있기에, 자신의 필연적인 운명을, 떠오르는 태양처럼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구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사랑니를 뽑아, 이제는 텅 비어버린 공간에 괜히 내 검지 손가락을 넣어 더듬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공간이 훵하다. 나의 이 왼쪽 사랑니는 처음부터 썩어 문드러질 운명이었다고 치더라도, 내가 좀 더 신경 써서 관리했더라면, 그 사용수명만큼은 좀 더 늘릴 수 있지 않았었을까.

언제나 나의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나의 곁을 떠나고 있다. 나의 스무 살도, 나의 서른 살도, 그리고 나의 오래된 사랑니도...... 언제나 나의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놓아주다 보니, 이제는 나도 그리 어린 나이가,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님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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