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소설 <어린 왕자>, 그 네 번째 기록
“사랑은 성욕을 기반으로 한, 성적 쾌락을 무기로 합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도 뜨겁고, 달콤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거죠. 여러분은 가끔 사랑이 영원할까 고민할 것입니다. 단언컨대, 그대들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인간은 거기로부터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죠. 사랑이 거룩하다면, 그 이유는 종족을 유지시키고 번성시키기 때문일 뿐, 이 이상의 이유는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이 보여주는 잠깐의 허상 때문에,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하지 마십시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3화, 도민준(김수현)의 대사 중]
나는 인간이 한 명의 인간이기에 앞서, 한 마리의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데즈먼드 모리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이성과 사고력을 가졌기 때문이라지만, 그 이성과 사고력에 우선하여 작용하는 것이 감성과 동물적인 욕구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인간의 모든 기저 심리를 성적 욕망과 그 결핍으로부터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상대방을 성적 대상화함으로써 그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리비도, 팔루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단어들로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헌신적이기만 한 사랑, 인류애적인 사랑, 그런 순수한 사랑들도 이 세상 어디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에로스적인 사랑 말고, 아가페 같은 사랑 말이다. 단지 우리 몸의 호르몬에 의해 두 사람의 사랑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인간은 그보다도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존재이지 않은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물리적인 제한을 넘어선, 그 어떤 초월적인 사랑도 존재함을 믿고 싶다.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인간은 사랑을 주고, 또한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나는 톨스토이가 이야기하는 그 사랑이, 드라마 상에서 도민준이 언급하는 육체적 사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그 어떠한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도,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도, 결국에는 성욕과 성적 쾌락에 대한 이야기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