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어린 왕자

<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을 읽고

by 김정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생텍쥐페리는 유년시절 두 번의 변곡점을 맞는다. 첫 번째 변곡점의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남편의 공백으로 가정의 생계에 어려움이 생긴, 생텍쥐페리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생텍쥐페리의 외할아버지의 성에 들어가 살기로 한다. 수많은 하인과 하녀를 둔 그 성에서 생텍쥐페리네 가족은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생텍쥐페리가 나이가 차, 예수회 소속의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그의 인생의 두 번째 변곡점을 맞는다. 난생 처음 마주한 엄격한 규율의 기숙사 생활은 그를 외롭게 하였다. 외할아버지의 성 안에서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없었지만 홀로 가족과 떨어져 유학생활을 하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돈에 대한 궁핍이 있었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어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하지만 그는 낙방을 하고 만다. 그는 비행기를 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거액의 사비를 들여 비행 조종 수업을 받는다. 물론 그 거액은 그의 가난한 어머니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얻은 것이었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어머니에 대한 금전적 의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군의 항공여단에 입대하고 나서도 자신의 집필 활동에 집중할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며, 막사 외에 따로 자취방을 구해 달라고 그의 어머니에게 부탁을 한다. 잠은 병영 내 막사에서 자야만 했으니, 순전히 개인 정비 시간에 잠깐 글을 쓰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자취방을 구한 것이다. 물론 자취방의 그 월세는 이번에도 경제적 능력이 없는 그의 어머니의 몫이었다. 독방과 아파트, 자신만의 방,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소행성을 마련하기 위해 생텍쥐페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가난한 어머니의 주머니를 쥐어짜서만 그것들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의 소행성은 어린 왕자가 그렇게도 비난하는 어른들의 계산과 속물성에 의지해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생텍쥐페리는 경제에는 관심이 없었고, 또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하였다.


생텍쥐페리의 삶을 이야기하자니, 비슷한 노선에 있는 한 청년의 삶이 떠오른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가구회사의 부도. 금산으로의 이사. 전학.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풍족하지도 않았던 할아버지 댁 대가족 생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자본주의 하에서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오던 한 청년은 평생 자신의 삶에서 돈과 경제를 떼어낼 수 없다면, 오히려 그 경제라는 것을 전공으로 공부하여, 지피지기면 백전백승해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 청년은 본인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무엇을 위해 출근을 하고, 무엇을 위해 야근을 하는가? 돈 때문에? 승진 때문에? 매출 증진을 위해? 사회적 명성을 위해? 확실한 사실은 그는 경제적 이윤이나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에게는 돈이 아닌 다른 동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대의나 명분, 혹은 명예 같은 것!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관청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에 들어가 종사하고 있는 점은 내가 생각해도 참 우스꽝스럽고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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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추구의 관점으로는 교환가치가 없는 장미꽃은 그저 잡초일 뿐이야. 장미도 잡초가 되다니, 삭막한 세상이로구나. 자본주의에서는 상품화가 안 되는 물건들은 그저 잡동사니일 뿐이야. GDP에 잡히지 않는 활동은 그저 허튼 수작일 뿐이라고! 아아, 현대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사는 것일까?” (P.18-19)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성공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실업에 대한 공포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휘두르는 실업이라는 채찍이 두려워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닐까?” (P.23)


“1953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유럽의 선진국들은 ‘관광부’라는 것을 만들어 관광을 체계적으로 산업화했고, 노동자들은 관광으로 저축을 소진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사파리 여행에서 중남미 지역의 카리브해 연안에 이르는 대규모 관광 루트들이 선진국 정부의 적극적 협조에 의해 개발되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풍요의 시대에 걸맞은 ‘레저를 위한 삶’이라는 만들어냈다. 많은 노동자들이 여름휴가에서 자신이 1년 동안 모은 대부분의 돈을 관광으로 소진하였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일종의 강요된 궁핍 속에서 노동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대규모로 생겨난 일종의 정부 주도형 여행 사업은 후기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통제를 더 쉽게 하기 위해 생겨난 현상이었다.” (P.42)


“마셜 살린스의 <석기시대의 경제학>은 원시인들 대부분이 일주일에 이틀 이상 일하지 않고,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축제나 놀이 등의 예술 활동으로 보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렇지만 그들이 먹는 음식의 열량은 지금 우리들이 먹는 음식의 열량보다 크게 낮지 않았다. 강요된 소비 속에서 개인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동시에 생태계도 피폐해진 지금, 과연 우리는 왜 노동을 하고 왜 경제적 생활을 하는가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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