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태 작가님의 <흩날리다> 작품을 보고......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2011년, 내가 아끼는 동생인 인석이와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까지 자전거로 완주하는 일명 <금산에서 금산까지> 여행 중이었다. 산 많고, 고개 많기로 소문난 금산, 무주도 자전거에서 한번 내리지를 않고 쉴 틈 없이 달려왔건만, 덕유산의 그 험한 산세에는 나와 인석이도 끝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 고개까지만 자전거를 끌고 갈 생각으로, 비탈진 경사로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저기 저만치의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학생들, 잠깐만 이리 와 봐요.”
“네? 저희요?”
“응, 잠깐만 이리 와 봐요.”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민 할머니 한 분께서 우리에게 손을 내저으며 얼른 와보라 하셨다. 흐음, 무슨 일이실까? 혹시 우리가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던 중에 핸드폰이나 지갑이라도 떨어트렸던 걸까?
“아이고, 둘이서 자전거 타고 여행하고 있는 중인가벼? 어디서부터 오는 길이여?”
“저희는 금산에서부터 출발해서 진주까지 내려갈 참이에요.”
“그려? 내가 총각들한테 뭐라도 주고 싶은디, 우리 집에 마땅히 학생들한테 줄만한 게 없네. 아참, 냉장고에 음료수 있는디, 음료수라도 한잔 혀고 가.”
할머니께서는 담장 밖으로 내미신 얼굴을 거두시고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종이컵과 사이다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담장 너머로 손을 뻗어 우리에게 사이다 한잔씩을 따라주셨다. 사이다는 진작에 김이 빠져, 단맛 밖에 나지 않는 설탕물 상태였지만 돈 없는 우리 대학생 여행자들을 생각해주시는 시골 할머니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껏 마셔본 그 어떤 음료보다도 시원하고 달콤했다.
종이컵 속 김 빠진, 그 사이다는 분명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어떤 마음은 분명 따뜻한 그 무엇이었다. 차갑지만, 따뜻했다. 응, 그 사이다는 분명 차갑지만 따뜻한 것이었다. 강석태 작가님(@seoktae.kang )의 작품, <흩날리다>가 딱 그러했다. 차갑지만, 따뜻한 그림! 분명 차가운 여름 바다를 닮은 파란빛 그림인데, 그 여운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나의 친구들에게 강석태 작가님의 이 작품을 소개하고 자랑하였다. 친구들은 이 그림으로부터 나의 그림자를 보았다고 하였다. (아마 내가 요새 그림자놀이를 자주 하는 탓일 테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림 속 어린 왕자의 모습이 얼핏 나의 뒷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사막 속의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미소 짓는다. 그 아이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다. 그 아이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사막 한복판, 지금 나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라고는 김 빠진 사이다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할 지라도, 나는 기꺼이 이 음료에 내 마음을 담아 그 노란 머리의 아이에게 건네줄 것이다. 지난 여행에서 만나 뵈었던 시골마을의 그 어느 할머님처럼 말이다.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선물해 주셨던, 차갑고도 따뜻했던, 그 사이다와 그 안에 담긴 마음처럼 말이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셨던 그 차갑고도 따뜻했던 사이다 한 잔! 나는 강석태 작가님의 이 아름다운 그림으로부터 예전 추억 속 그 사이다를 느꼈다! 강석태 작가님의 <흩날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