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 많은 나무는 생각이 많은 나무인 셈이다.

김정연 작가님의 <어린 왕자>를 감상하고......

by 김정배

심리치료 미술에서 가지 많은 나무 그림은 클라이언트 자신의 복잡한 내면과 걱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가지가 많은 나무는, 생각이 많은 나무인 셈이다. 나는 곱슬머리의 자화상을 자주 그린다. 빠글빠글 곱슬머리의 내 자화상은 생각이 많은, 가지 많은 나무 그림을 닮아 있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나의 머리는 더욱 빠글빠글 볶아져 있다.


종로에서 만난 김정연 작가님의 어린 왕자는 머리카락이 없다. 어린 왕자의 심볼인 황금빛 곱슬머리도, 노란색 스카프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머리 위에 놓인 황금색 왕관으로부터 이 소년의 신분이 왕자가 아닐까 어렴풋이 가늠만 해 볼 뿐이다.


이 어린 왕자는 가부좌라도 틀려는 듯, 자신의 오른발을 자신의 왼발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가지런한 두 손은 마치 신라의 단아한 반가사유상을 닮아 있다. 아! 문득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어린 왕자는 B-612의 어린 왕자가 아니라, 기원전 어느 인도 왕국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느 보리수나무 옆에 앉아 명상에 든 그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7주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그는 모든 속세의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의미로, “붓다”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 어린 왕자의 두상을 보고 있노라면, 속세의 모든 세사와 번뇌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는데, 이 어린 친구는 참으로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나무이다.


생각이 이곳에까지 미치고 나니, 사실 저 어린 왕자가 쓰고 있는 왕관의 존재마저도 의심스러워진다. 어쩌면 저 왕관은 왕자의 왕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머리에 썼던,

중국식 관(모자)의 모습도 얼핏 닮아 있다. 어쩌면 이 행성, 저 행성을 여행하며, 여러 어른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던 어린 왕자의 이야기야말로, 여러 요괴들을 물리치며 서역으로 진리의 여행을 떠나는 삼장법사의 이야기(서유기)를 닮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다만, 그의 다른 복장들만큼은 불교나 스님의 그것들과는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가 입은 반바지와 티셔츠는 승려복이라기보다는 광대의 복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짧은 길이의 넥타이는 나에게 보아뱀의 모습으로만 보일 뿐이다. 청록색 구릿빛 피부는 그가 외계에서 온 소년이 아닐지, 혹은 영화 <아바타> 속 푸른 생명체들은 아닐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그러다 나는 문득 어느 생각에 잠겨 버린다.


어린 왕자, 너는 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지. 네가 나를 길들였던 것은 아주 멋진 일이었어. 나는 금빛으로 물결치는 밀밭을 보며 너를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면 나는 밀밭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마저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런데 너는 이제 그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제

어쩌면 황금빛 밀밭은 나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을지 몰라. 그건 참 슬픈 일이겠지. 너를 추억할만한 물건 하나를 잃게 된 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네 표정만큼은 평온해 보여서 나는 좋아. 그간 너를 괴롭혔던, 모든 걱정과 불안들로부터 자유로워 보여. 너는 지금 혼자 명상에 잠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너는 지금 행복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