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부의 추월차선>의 이야기
부산행 기차를 탄다. 역시나 주말이라 사람이
많다. 이들이 다들 어느 곳으로 가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들이 무엇을 찾으러 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있는 곳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차 속 승객들은 잠을 청하거나 하품을 하고 있다. 혹은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유리창에 코를 바짝 대고 있을 뿐이다. 어린아이들만이 자기들이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다. 아이들은 헝겊 인형 하나에도 시간을 쏟는다. 그러면 인형은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들의 그 인형을 빼앗아 가면, 어린아이들은 그렇게도 서럽게 울어대는 것이다.
나의 헝겊 인형이 무엇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지금 타고 있는 이 부산행 기차도, 그 헝겊 인형을 찾기 위해 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이 헝겊 인형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없다, 내가 이 헝겊 인형에 쏟아부은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여자 친구는 이제 그만 그 누더기 헝겊 인형은 내려놓고, <부의 추월차선> 같은 책을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책을 5년 전에 읽었다. 남을 추월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차선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 천천히 부자가 될 생각을 버리고, 부의 추월 기회가 보일 때, 어떠한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부의 기회를 당겨야 한다고 한다.
(1차로가 빨라 보인다고 1차로로 들어서면, 꼭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과 겹쳐 1차로가 막히더라. 남들이 다 앞 차를 추월할 생각만 하고 있다면, 부의 추월 차선도, 결국은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법이 아닌가? 나만의 아이덴티티,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것, 그것 역시도 또 하나의 부의 추월차선을 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어린 왕자>를 놓지 않는 나를 나무라기 전에, 그녀가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어린 왕자> 책을 제대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녀는 잠을 청하거나, 하품을 하고 있고, 나에게 <부의 추월차선>과 같은 책을 읽으라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