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와 자라지 않는 나무

김정연 작가님의 <어린 왕자가 있는 풍경>

by 김정배

꽤나 견고하게 생긴 나무 프레임 안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보통의 나무라면 자신을 둘러싼 그 프레임에 갇혀, <자라지 않는 나무>가 되어버렸을 텐데, 이 나무 친구는 참으로 기특하게도 자신을 둘러싼 그 프레임(틀)을 깨트리고, 자신의 가지를 하늘 위로 뻗쳤다.


헤르만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새(나무)는 알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가 하나의 세계를 깨트렸고, 그리하여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상자 속 어린 왕자는 나무틀의 경계에 엉덩이를 걸터앉고는, 자신의 두 다리를 아주 진작에부터 나무 프레임 밖으로 내놓았다. 그리고는 천장을 향하여 자신의 오른손을 쭈욱 뻗는다. 작품 속 나무상자의 견고함이나 답답함 따위는 어린 왕자의 안중에도 없다.


자신을 둘러싼, 갑갑하고, 딱딱한 프레임 때문에 상자 속 묘목이 어른 나무로 자라지 못하고, 말라죽으면 어떡하나 사실 나는 많이 걱정하였다. 자신을 둘러싼, 갑갑하고, 딱딱한 주위 환경 때문에 온실 속 어린아이가 건강한 정신의 어른으로 자라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작품 속 묘목도, 어린 왕자도 자신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존재로 거듭났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어른도, 아이도 아닌 불완전한 존재로 방황하는 이들을 우리는 사춘기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이 작품 속의 어린 왕자도 지금 어른과 아이의 그 어느 경계, 그 어느 문턱에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 있는 것일 테다. 어린 왕자가 자신을 둘러싼 이 갑갑하고 딱딱한 프레임으로부터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나,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걷는 그때, 그 때야 비로소 어린 왕자는 어른이 되는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그 누구도 아닌, 어린 왕자만큼은 영원히 어린아이인 상태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버리고만 마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다면, 그리하여 어린 왕자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면, 부디 어린 왕자만큼은 <피터팬 컴플렉스>니, <어른아이 컴플렉스>니 하는 어른들의 언어들에 갇혀 살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향해 용기 있게 찾아 나서는 그런 건강한 정신의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