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길들이다>와 미셸 푸코의 <길들이다>
어린 왕자는 왕이 살고 있는 첫 번째 행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만 듣고도 자신을 신하로 삼고 싶다는 그 왕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볼 수 있지?”
-서수영 작가님의 저서,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다> 중
누군가를 보거나 만날 때 우리는 왜 그의 왕이 되고 싶어 하는가? 친구가 되면 안 되는가? 그가 나를 친구로 두고 싶어 한다면 나는 그에게로 가 길들여지겠다. 그러나 그가 나를 신하로 두고 싶어 한다면, 나는 결코 그에게 길들여지지 않겠다.
***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는 “길들이다”라는 단어이다. “길들이다”라는 단어가 우정, 사랑, 헌신, 시간, 추억, 그리움 같은 단어들과 함께 할 때, 이 단어는 더욱 빛을 발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동시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역시 “길들이다.”이다. “길들이다”라는 단어가 감시, 처벌, 제도, 구조, 권력, 명령, 복종 등과 같은 단어들과 함께 할 때, 이 단어는 더욱 무섭고 잔인한 단어가 되는 것 같다.
생텍쥐페리와 미셸 푸코!
내가 좋아하는 이 두 프랑스인은 “길들이다”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각각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허나, 소설가(생텍쥐페리)가 나에게 심어준 “길들여지다”의 의미와, 철학자(미셸 푸코)가 나에게 심어준 “길들여지다”의 의미는 너무나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길들여지다”라는 단어 앞에서 방황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