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소설 <어린 왕자>, 그 열 번째 기록
<별에서 온 그대> 18화에서는 발목에서부터 빛을 내며 사라지는 도민준(김수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모습이 어린왕자 소설의 플롯을 그대로 따르는 것만 같다. 드라마 속 이 장면을 생택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어린 왕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일어났다. 그가 한 발 내디뎠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 근처에서 노란빛이 한번 반짝했을 뿐이다. 그는 한순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그루의 나무처럼 천천히 쓰러졌다. 모래바닥이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설 속의 장면과 드라마 속 장면을 겹쳐 보며 들었던 나의 생각은 “왜 하필 어린 왕자의 발목에서 빛이 났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곧 혼자만의 탐정놀이에 또 빠지고 만다.
어린 왕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분명 뱀의 독이다. 사막의 바닥을 기어다는 뱀에게는 사람의 발목이야말로 사람을 공격함에 있어 제일 효과적인 공격 부위일 것이다. 발목보다 조금 낮은 쪽을 공격한다면, 신발의 튼튼한 내구성에 뱀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고, 발목보다 조금 높은 쪽을 공격한다면, 그 공격은 그 공격대로 바짓 자락의 두께에 의해 독침 공격이 무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뱀이 인간을 공격하기에 가장 적당한 포인트는, 바로 신발과 바지 밑단의 그 중간 지점인 발목 근처가 되겠다.
그런데 또 하필이면 발목은 사람의 치명적인 급소다.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불멸의 존재, 아킬레스도 바로 이곳 급소, 아킬레스건을 다쳐 죽음에 다다르지 않던가!
아킬레스건에는 수많은 신경과 힘줄이 있다. 그래서 이곳의 근육이 끊어질 시,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아킬레스건의 부상이 치명적인 이유는 바로 이곳에 동맥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도축장에서는 도축한 가축들의 피를 손쉽게 빼내기 위하여 가축을 거꾸로 매단 채로 아킬레스건을 끊고 피를 빼낸다. 아킬레스건을 다친 사람이 과다출혈에 따른 쇼크사로 사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린 왕자는 뱀에게 발목을 물렸고, 아킬레스건에 독이 퍼져 어느 곳으로도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뱀에게 발목을 물림으로 인해, 어린 왕자는 오히려 (지상에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더 먼 곳으로까지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 글을 끝마침에 앞서, 노래 한곡을 부르고 싶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 병난다.”
우리의 조상들은, 정말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발에 병이 나기를 원해서 이 노래를 불렀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떠나는 이의 마음에 부담을 주어, 사랑하는 나의 님이 나의 곁을 떠나는 것을 막고만 싶었을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하지만 결국 소설 속의 어린 왕자도 소설 속 “나”의 곁을 떠났고, 드라마 속의 도민준도 천송이의 곁을 떠났다. 나를 떠난, 나의 님이 제발 십리도 못 가서 다시 나에게 돌아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뿔싸! 혹여라도 나의 님이 발 병이 나서 나에게 아니 돌아오시면 어떡하나?!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나를 버리고 떠나신 님아,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발 병만은 나지 마소. 발 병이 났다 하여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남은 날들을 어찌 살아가오? 사랑하는 나의 님아,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던 그 약조는 잊지 마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섣달에도 꽃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