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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Apr 14. 2022

노을 지는 저녁의 해는 내 마음속 슬픈 마음을 닮았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소설 <어린 왕자>, 그 열두 번째 기록

“내가 왜 이 건물에 이사 왔는 줄 알아? 저게(천송이의 모습이 담긴 옥외광고판) 잘 보이잖아. 저기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비싼 자리거든. 저 위에 광고를 달려면 한 달에 무려 1억! 그래서 저 자리에는 당대 최고로 잘 나가는 스타의 얼굴이 걸리는 거지. 그래서 그게 지금 나이고.

내가 저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거든. 밤에 잠을 자기 전에, 아침에 일어날 때도, 우울할 때, 배고픈데 다이어트하느라 아무것도 못 먹을 때, 저걸 딱 보고 있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배도 부른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을 때에도, 내가 저렇게 예쁘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좀 위로도 되고, 나는 그렇다는 말이지.”

-별에서 온 그대 5화, 천송이(전지현)의 대사 중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의 슬픔은 왠지 나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슬픈 마음을 닮았다. 저녁의 노을 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도 어떻게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광경이 나에게는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나에게는 저녁노을 같았던 그 위안의 존재가, 천송이에게는 그녀의 사진이 걸려있는 옥외광고판이었으리라!



[아! 어린 왕자, 이렇게 나는 너의 여리고 쓸쓸한 삶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너에게는 해가 지는 감미로운 광경을 보는 것 외에 오래도록 다른 낙이 없었다. 네가 넷째 날 아침에 말했을 때 나는 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해 지는 광경이 정말 좋아. 해 지는 걸 보러 가자.”

“아직 기다려야 돼.”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지.”

처음에 너는 아주 놀란 표정을 하더니 이내 혼자서 까르르 웃었어. 그러고는 말했지.

“지금도 내가 내 별에 있는 것만 같아서......”


과연 그렇다. 미국에서 정오면 프랑스에서는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다. 1분 만에 프랑스로 갈 수 있다면 충분히 해 지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작은 별에서는 의자에 앉은 채 몇 발짝만 당겨 앉으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이 원할 때마다 석양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는 해지는 광경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잠시 뒤에 그가 덧붙여 말하였다.

“있잖아...... 나는 몹시 슬플 때면 해 지는 광경을 보고 싶거든.....”

“마흔네 번이나 해 지는 걸 봤던 날, 너는 그렇게나 슬펐던 거야?”

어린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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