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형록 작가님의 <잠자리와 큰 왕자>
나는 대전의 판암동에서 열살까지 쭈욱 나고 자랐다. 지금이야 그 곳에는 지하철역도 생기고, 톨게이트도 생기고, 고속도로도 생겨 이제는 제법 인지도가 높아진 동네가 되었지만, 내가 그 곳에서 뛰어 놀던 그 때만 해도, 판암동은 포도 농사로 유명한 대전의 외곽 동네일 뿐이었다.
내가 살았던 주공 아파트 108동 건물 뒷편으로는 작은 언덕 하나가 바로 맞닿아 있었다. 그 언덕 바로 밑으로는 대전역으로 이어지는 기찻길이 하나 지나갔고, 그 기찻길을 경계선 삼아 식장산 밑으로 포도밭이 쭈욱 펼쳐져 있었다. 나는 같은 아파트의 103호 세목이형과 402호 준의, 그리고 608호의 원식이와 함께 그 언덕배기를 매일같이 오르 내리며 곤충을 잡곤 했다. 나와 내 동생은 그언덕에서, 메뚜기와 여치, 그리고 방아깨비의 생김새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고, 도마뱀을 잡을 때에는 반드시 도마뱀의 꼬리를 잡을 것이 아니라, 몸통을 잡아야 한다는 지혜도 배웠다. 물론, 잠자리는 절대로 뒤를 향해 날지 않는다는 과학 지식도 배울 수 있었다.
개구리가 울어대는 봄이면, 우리는 옥천 인근의 세천 유원지까지 약 4 km가 되는 거리를 왕복 3시간을 들여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물방개며, 장구벌레며, 개구리알과 도롱뇽의 알, 소금쟁이 등을 잡아왔다. 또래아이들에게서밖에 배울 수 없는, 어느 어른도 쉬이 알려주지 않는, 우리들만의 지식백과사전같은 시간들이었다. 나무젓가락으로 고무줄총을 만드는 방법도, 신문지로 쌍절곤을 만드는 방법도, 색종이로 동서남북을 접는 방법도, 퐁퐁으로 육각수를 만드는 방법도, 네이버 지식인이나 블로그, 유튜브가 아닌, 동네의 또래친구들로부터 배웠다. 그 때는 그랬다. 108동 뒤편의 작은 언덕!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의 커뮤니티였고, 하나의 길드였고, 하나의 문화공동체였고, 또 하나의 작은 사회집단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렇게 함께 커 갔고, 함께 성장했다.
소설 <어린 왕자> 속에는 어린왕자의 또래의 인물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B-612에서도, 지구에서도, 그에 앞선 6개의 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린 왕자 또래의 어린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점이 나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기만 할 따름이다. 또래들끼리만이 형성할 수 있는, 그 특유의 감성, 그 특유의 문화라는 것이 있을텐데, 어린 왕자가 여행 중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모두 다 어른들 뿐이다. 물론 여우며, 뱀이며, 장미며, 어린 왕자와 그 결을 같이 하는 존재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어른이 아니었을 뿐, 어린 왕자 또래의 아이가 아니었다. 어린왕자가 방문했던 소설 속의 일곱 행성이, 피터팬의 별, 빨간머리 앤의 별, 말괄량이 삐삐의 별, 혹은 (정글북의) 모글리의 별,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의 별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차형록 작가님의 작품, <잠자리와 큰 왕자>에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한창 곤충을 채집하고 있는 어린왕자가 등장한다. 보랏빛 옷에 노란색 스카프를 한 어린왕자는 다리까지 쪼그려 앉으면서까지,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와 대화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 오손도손한 모습이 제법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림 속 어린 왕자는 자신의 또래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인 것일까? 토끼풀로 꽃반지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사슴벌레를 잡으려면 이끼가 무성한 썪은 나무 기둥부터 찾아야한다는 삶의 지혜에 대해 듣고 있는 중인 것일까? 혹시 또 모르지. 밤하늘에는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단 하나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