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는 왜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어린왕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단연 노랑과 초록이다. 그의 노란색 금발 머리는 황금빛 들녘과 개나리와, 프리지아와 병아리색 유치원 등교복을 연상케 한다.
음.....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었겠지만, 내가 다녔던 어느 도시의 천사유치원은 그 외벽도 노란색이었을 뿐더러, 햇님반, 달님반, 별님반의 학급 안내표지판도, 그리고 유치원 가방도, 유치원 모자도 모두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등교복을 입고 다닌 유년시절의 기억이 뚜렷해서일까? 나에게 <노랑>은 "천진난만", "순수", "호기심", "연약함"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나에게 노랑이 가끔은 다른 의미로 다가 오기도 한다. 클림트가 그린 <KISS(입맞춤)>와 <유디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와 <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이 품고 있는 노랑의 컬러는 나에게 "신비"와 "황홀", "환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초록은 어떨까?
초록은 피어나는 새싹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성장가능성과 미래의 잠재력이 큰 어느 누군가를 일컬어 <초록 꿈나무>라고 부른다. 초록! 그것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색이 아닐까? 빨강의 사과도, 노랑의 바나나도, 분홍의 복숭아도, 다홍의 홍시도 각자 저마다의 아름다운 색감을 가졌지만, 그것이 익기 전의 시작의 색깔은 언제나 초록에서부터였다. 이것은 열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름드리의 느티나무도, 플라타너스도, 바오밥 나무도 깊고 진한 고동색의 표피를 가졌지만, 그 나무들도 처음에는 초록빛의 작은 새싹에서 시작하였다. 그래서일까? 아직 어른이 되기 전의 피터팬도, 어린왕자도, 공통적으로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 초록은 <청춘>과 <성장>, <가능성>과 <생명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미성숙함>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어느 날이었나, 초등학생인 사촌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오빠, 그런데 오빠가 좋아하는 어린왕자는 왜 맨날 초록색 옷만 입어? 어린왕자는 어른 왕자가 되어도 계속 초록색 옷만 입고 다녀야 하는 거야?"
음…… 그 아이의 질문은 나의 나른한 오후의 잠을 확 달아나게 하는 신선한 질문이었다.
“음..... 글쎄..... OO는 어린 왕자가 어른이 되면 어떤 옷을 입을 것 같아?"하고, 바로 그 아이에게 되물었기는 하지만, 이미 나의 머릿 속에는 한 가지 색의 하나의 정답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색은 바로.......... 파랑! 파랑! 파랑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 속의 어린 왕자는 성인인 비행조종사의 마음에 존재하는 내면아이다. 그 내면아이는 어른이면서, 동시에 어린 아이이기도 하다. 그 아이는 어른인 비행조종사의 성정과, 그의 천진난만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어우러져 만든 또 하나의 자아요, 존재이리라. 그렇기에 그는 어린 아이의 색(노랑)도, 어른의 색(파랑)도 아닌, 청소년과 청년의 색(초록)을 띄고 있음이렸다! 청소년기는 어린 아이의 모습도, 어른의 모습도 공존하는 참으로 신비한 시기이듯, 녹색 역시 그 안에는 노랑의 모습과 파랑의 모습이 공존하는 참으로 신기한 컬러이다.
파랑! 파랑의 그 차가운 느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린다. 하늘과 바다가 품은 파랑은 고요와 사색과 명상의 파랑이다. 그래서 파랑은 나에게 더 차분한 이미지의 컬러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어른>이라는 단어와 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파랑! 파랑이라는 단어가, 어린 아이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잘 어울렸으면 하는 나의 진짜 바람은 <Blue(블루)>라는 영어단어에 기인한다. Blue의 두번째 사전적 의미는 sad, or unhappy(슬프거나, 혹은 행복하지 않은) 의 뜻을 가졌다. 어쩌면 슬픔과 불행이, 우리의 마음을 파랗게 멍들이고 나서야,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