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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Mar 24. 2023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양을 넣는 것이예요.

“스캇님! 그런데 어린왕자는 왜 비행조종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한 거예요?"

"스캇님! 어린왕자는 비행조종사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가요? 그의 어렸을 적 꿈이 화가였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을까요?"

"스캇님! 그런데 양이 설마 장미도 먹을까요?"


어느 이른 봄남의 저녁, 플로리스트 블루데이지님(@bluedaisy_flower )께서 나에게 이러한 질문의 메세지들을 보내오셨을 때, 나는 제법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를 수리하고 있는 비행조종사에게 다가가 느닷없이 양 한마리만 그려달라고 하는 어린왕자 같았다고나 할까? 나는 블루데이지님께서 왜 양에 대해 이토록 집요하게 물어보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로 블루데이지님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블루데이지님께서 여주의 초록공간을 찾아주셨다. 그리고 나와 우철님을 위한, 특별한 원데이 클래스도 함께 열어주셨다. 그것은 바로 프리저브드 드라이 플라워를 이용한 꽃꽂이 수업! 작품 하단의 유리단지는 컬러스톤과 와이어, 그리고 선인장을 이용하여 사막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작품 상단의 플라워볼은 수국을 이용하여 어린왕자가 사는 b-612 행성으로 꾸미었다.



블루데이지님께서는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리 단지에 양을 넣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리 단지에 양 피규어를 넣지 않는다면, 바오밥나무가 B-612 행성에 무시무시한 뿌리를 내려 거침없이 자라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오늘 작업한 이 꽃꽂이 수업도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블루데이지님께서 그 날 왜 나에게 그토록 양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셨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지. 그렇지. B-612에는 바오밥 나무의 새싹을 먹어치울 양이 반드시 필요하고 말고.....



블루데이지님께서는 그저 단순하게 드라이 플라워 작품에 어린왕자 피규어만 얹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곳 초록공간에서의 원데이 클래스를 위하여, 어린왕자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으신 다음에, 나에게 한번 더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소설 속의 여운이 진득하게 남는 명작 꽃꽂이 작품을 함꼐 만들어 보고 싶으셨다고 하였다.


음..... 이 곳 초록공간을 위해 이렇게 마음 써주심이 그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가 없었다. "너의 장미꽃이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너의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라는 소설 속 여우의 대사가 생각났다. 나와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하여 공들이셨을 블루데이지님의 시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리고 그 다음날의 저녁, 그리고 그 다다음날의 저녁까지도, 블루데이지님께서 남겨주신 한 마디의 말이 떠올라 혼자 피식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유리 단지에 양을 넣는 거예요. 만약, 유리 단지에 양 피규어를 넣지 않는다면, 바오밥나무가 B-612 행성을 잡아 삼켜버리고 말 거예요.“라는 블루데이지님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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