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역사학자의 관심 대상이 국가의 역사, 또는 지배계급의 계보 등을 기록하는 것이라면, 인류학자의 관심 대상은 인간 전체의 역사, 다시 말해 민중의 역사를 포함하여 역사 없는 자들의 역사에까지 그 영역이 걸쳐 있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역사학자는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자들에게, 인류학자는 역사적으로 이름 없는 자들에게까지 관심을 갖는다.
본론을 풀어나가기 전에 이름(name)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이름. 이름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름을 처음으로 짓는 자에게 그 권력이 있다."
이문열의 소설 '들소'(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소설이다)에는 신석기시대의 한 부족이 등장한다. 그 부족의 소년들은 들소 사냥을 함으로써 일종의 성년식을 치루어야 하는데, 사냥에서의 업적에 따라 이름이 부여된다. 겁이 많고 내성적인 주인공은 '소를 두려워하는 자'라는 이름을 얻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뿔을 누른 자', '큰 목소리' 등의 명예로운 이름을 얻기도 한다. 부족장은 소년들로 하여금 더 명예로운 이름을 획득하기 위하여 들소 사냥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부추긴다. 그래야 부족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들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이처럼 초기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통제를 용이토록 하는데에 이름을 이용하여 왔다. 자신이 만든 이름으로써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Right'라는 단어는 '옳은'이라는 뜻과 '오른'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Right hand'는 오른손이 될 수도, 옳은 손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오른손이라고 부르는 손이 옳은 손인지, 그른 손인지 누가 판단할 것인가. 옳은 손이 아닌 반대편 손은 옳지 않은 손이라도 된단 말인가. 오른손잡이가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왼손을 옳지 않은 손으로 부름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오른손을 사용하게끔 부추길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그의 초창기 작품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에서 나타나는 빈센트 특유의 노랑, 파랑의 거친 붓 터치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까닭은 바로 그 묘사의 대상이 이름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어서 그들에 대한 기록도 없고, 이름이 없어서 자기 자신의 이름이 붙은 초상화 한 점 없지만, 그들은 실제로 실재했고 오늘날의 우리네와 같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과거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과거는 무한하고 모든 과거를 역사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하여 우리 후손들은 무관심할 테니 말이다. 그것은 마치 살수대첩하면 을지문덕, 임진왜란하면 이순신만을 떠 올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절대로 을지문덕만의, 이순신만의 역사는 아니었을 것인데 말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항상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으라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다른 한 편(On the other hand)으로는 또 저렇게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학의 이론적 틀에는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이 존재한다. 서로 상충하는 내용으로 의견이 분분할 때도 있지만 거시의 이론은 미시의 이론에서의, 미시의 이론은 거시의 이론에서의 한계점을 보완해준다.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배운 역사라는 것들이 대개가, 아니 거의 모든 것이 거시적인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역사도 미시적인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역사, 오늘날의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의 역사 말이다. 그래서 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많은 인류학자들의 인류애를 향한 노력들을 좋아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