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가 두렵다

뭉크의 <절규>

by 김정배

나는 벌레가 두렵다. 벌레, 그 자체는 그닥 무섭지가 않은데 혹여나 어느 날 내 자신이 벌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늘 두렵다.

그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리의 걱정과 비슷한 것이다. 보험 판매원으로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주인공이 어느 날 벌레로 변신하였을 때 그의 가족들은 그를 더 이상 자신의 아들로, 자신의 오빠로 맞아 주지 않았다. 그들 가족에게 있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그레고리는 말 그대로 '벌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문득 카프카의 소설에서 벌레로 변하는 설정은 불교의 윤회사상에 기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업보에 따라 사람이 될 수도, 나무가 될 수도, 벌레가 될 수도, 한낫 미물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것 역시 권선징악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돈이 없으면 그 죄로 벌레가 되어야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 한해서는 그 명제가 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나의 동생이 "형도 곧 벌레가 될 거야, 일벌레."라고 말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내가 벌레가 될 거라는 소리에 일벌레라는 소리는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얼마간을 벙 쩧어 있었다. 나는 벌레가 되기는 싫은데, 나는 정말로 벌레가 되고 싶지 않은데 내가 머지않아 벌레가 될 거라니..... 동생은 “형도 곧 돈을 벌기 위해 일만 하는 일벌레가 될 거야. 나 봐봐, 벌써 일벌레 다 됐잖아."라고 하였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유년시절의 경험 탓에서인지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 벌레가 되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를 소심하다고 부르고, 다른 누군가는 나를 세심하다고 부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우유부단하다고 부른다. 나는 내 인생에서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패할만한 일에는 애초부터 도전을 안 하였기 때문이다.

위 논리의 연장 선상에서, 나는 여태껏 '카오스'라는 게임에서 누군가에게 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겨본 적도 없다. 그 게임을 해 본 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패배도 경험해야 하고, 실패에서 온 경험들이 훗날의 성공을 이끈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잊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 곧 서른 즈음. 나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나의 여자 친구를 위해서라도 나의 불확실성을 좀 더 줄여야 할 필요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늦지 않았을 때,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떠나고자 한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조차 해보지 않는 것은 미래의 김정배 씨에게, 그리고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일일 것이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어 본다. "청년이여, 가슴에는 조국을! 시야에는 세계를!" 그리하여 나는 조만간 떠나겠다. 뭉크의 절규. 끝.


( * 이 글은 대학의 졸업을 앞둔, 2013년 7월의 어느 여름날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그 해 9월 호주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