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의 <정물화, 창가의 꽃병>
이 그림을 처음 접하는 순간,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이 그림이 명작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림 전반에 풍기는 무거운 공기가 금세 나를 압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림의 제목은 '정물화, 창가의 꽃병'! 이 그림은 꽃병을 그린 정물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그 외의 것들에 더 시선이 갔다. 꽃병 옆에 놓여진 책 한 권과 창 밖으로 비치는 커다란 건물! 그리고 창을 뒤덮고 있는 몇 줄기 덩굴!
먼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책에 집중해서 바라보고 싶다. 보통의 사람들은 책을 책상에 올려놓을 때, 제목이 쓰여진 겉표지가 위를 향하도록 올려놓는다. 책의 전개가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루어지므로 제목이 쓰인 표지를 위로 향하도록 놓는 것이 예전에 자신이 읽었던 부분을 찾는 데에 보다 효율적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림 속의 책이 뒤집혀 있음은 가히 주목할 만하다. 뒤집혀 있는 책은 내용이 다 끝난 책을 의미한다. 책의 페이지를 다 넘겨 더 이상 넘길 수 있는 페이지가 없어질 때, 책은 저처럼 뒤집혀진다. 나는 이 책이 상징하는 바 ( :다 끝난 이야기)가 곧 이 그림의 주제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따라서 이 책의 주인은 더 이상 이 책을 찾지 않을 것이다. 고로 이 책과 책 주인과의 인연도 끝났다. 앞으로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찾아 꺼내지 않는 이상, 저 책은 책장 어느 곳엔 가에 꽂혀 평생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테다.
다음으로 창문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창문 밖으로 식물의 몇 줄기 덩굴이 보인다. 덩굴은 이미 오른쪽 창문을 빼곡히 덮어 버렸다. 여닫이 창문에 저렇게 덩굴이 가득히 덮여있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창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열리지 않은 창문! 그래서 이 방은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단절되었다. 한편 창문 왼쪽으로는 커다란 건물이 하나 보인다. 그러나 이 건물은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창 밖의 맑디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 이 건물은 분명히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창문은 굳게 닫힌 상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덩굴과 커다란 건물에 의해 차단된 상태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이 그림의 창문이 '닫힌 공간', 또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그림의 꽃병에 주목해보고 싶다. 식물은 무엇으로 사는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리고, 그 씨가 다시 싹을 틔우고, 그 싹이 다시 꽃을 피우고, 그 꽃이 다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어 씨를 뿌리는 게 식물의 운명이자 삶의 메커니즘이 아닐까? 그렇다면 꽃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표상? 향기의 원천?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꽃이란 식물의 생식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았을 때, 꽃병 속에 존재하는 꽃들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거세된 존재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고, 더 이상 씨를 뿌릴 수 없는, 그래서 자신의 욕구가 금기시된 존재들! 그림 속의 꽃들은 자신의 본래 뿌리를 잃고 꽃병 속에 '고립된 존재들'이다.
이제 그림 속의 모든 기호들을 종합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미 끝난 이야기'의 책!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유리창! 그리고 '거세된 채로 꽃병에 고립된' 몇 송이 꽃!!!!!!! 이 얼마나 우울한 조합인가!
그러나 사실 이 우울한 조합에 한 가지 더 추가시켜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이 방의 주인이자,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시선이다! 책과 창문과 꽃병이 이처럼 어둡게 해석되는 것에는 이를 바라보는 자의 감정이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무력함을, 그림을 그림으로써나마 해소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위의 정물화가 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작품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아니라 관객에게 우선하여 있다는 점에서 위의 우울한 조합에 이 그림을 우울하게 해석하고 있는 '나'라는 요소를 추가해야 할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끝으로,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일부를 인용함으로써 이 감상의 말꼬리를 갈음하고자 한다.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모양으로 까닭도 모르고 또한 아무 필요도 없이 제자리에서 맴을 돌며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생의 길일까? 오직 먹기를 위해서, 씨를 퍼뜨리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서로 싸우고, 잡아먹지를 못해서 앙앙 거리고, 발버둥을 치다가 끝판에는 한 삼태기의 흙을 뒤집어쓰는 것이 인생의 본연한 자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