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사자는 왜 말의 등을 물었을까?

George Stubbs의 <말을 공격하는 사자>

by 김정배

한 마리의 말이 사자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사자의 공격에 고통스러워하는 말의 표정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만큼은 그리 사실적이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사자는 정글보다는 초원에서 서식한다. 사자는 대개 초원의 덤불 등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의 사냥감이 근접해지기를 기다린다. 사자는 오직 단거리에서만 그들의 사냥감보다 빠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사냥을 시작해야 한다. 장거리의 사냥이 될수록 그 사냥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그림 속 사자의 사냥터는 덤불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다. 자신의 몸을 은폐할만한 것 하나 없는 저 들판에서 사자가 말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그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오른편의 절벽에서 말이 오기까지를 기다렸다가 뛰어내렸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자가 아니라 호랑이의 사냥 방법이다. 사자는 사냥을 위해 뛰어내리지 않는다. 그저 사냥을 위해 달릴 뿐이다. 초원에 절벽이란 것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그림 속의 저 상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저 그림 속의 말이 엄청 게으르거나 혹은 정말 둔한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멀리에서부터 사자가 다가오기까지 어찌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는가.

둘째로, 그림 속 사자가 말의 등을 물고 있는다는 설정도 그리 사실적이지 않다. 사자는 사냥을 함에 있어 사냥감의 목을 제일 먼저 공격한다. 목이야말로 다른 어느 신체부위보다도 출혈이 쉬운 곳이다. 목을 문 채로 조금만 실랑이를 벌이고 있노라면 사냥감은 금세 심한 출혈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림 속 사자는 말의 목이 아닌 등을 물고 있다. 등을 열 번 물고, 스무 번 물어보아라. 목을 열 번 물고, 스무 번 무는 것보다 빨리 쓰러뜨리나. 내 생각에 저 사자가 말의 등을 두 번도 채 물기 전에 말은 이미 사자를 내팽개치고 저만치 도망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이 그림 속 말과 사자 모두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사자가 은폐도 않고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말의 상황도 웃기고, 기껏 자신에게 굴러들어 온 찬스에서 말의 등을 물어 먹잇감을 놓치게 될 사자의 상황도 웃기다. 말과 사자 모두 둔하고 어리석지 않은 이상, 그림 속의 저 상황은 실제의 자연에서 거의 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 속의 말과 사자가 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음은 전적으로 화가의 연출에 기인함이리라. 그래야 공격하는 사자의 강인함과 공격당하는 말의 절박함이 사실적으로 표현될 테니까. 말과 사자의 동작에 대한 표현은 정말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있다. 오일로 강조된 붓터치는 공포에 질린 말의 표정을 잘 살려냈다. 저 그림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말이 액자를 뚫고 관람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입체적으로 잘 그려진 그림이다.

그래서 저 말과 사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사자가 말의 목을 물지 않은 이유로 자신의 먹잇감을 놓쳤으리라 100% 확신한다. 나는 위와 같이 그림 속 작은 힌트 하나하나를 찾아, 나만의 또 다른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 너무 좋다. 마치 추리 소설 속 탐정이 된 기분이랄까? George stubbs의 A lion attacking hors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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