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 <소나기> 속, 그 소년이 아프다

호아킨 소로야의 <해수욕장을 떠나며>

by 김정배

나는 이 그림이 너무 좋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인양 노란빛을 흠뻑 먹은 색채가 나의 두 눈을 사로잡았다면, 그림 속 두 소년, 소녀의 모습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녀는 바닷가에서 얼마나 재미나게 놀았는지 바닷물에 몸이 흠뻑 젖어 있다. 소녀의 옷은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였는지 오른쪽 어깨의 단추가 살짝 풀리었고, 소녀는 고개를 돌려 단추를 채우고 있다. 뒤따라 오는 소년은 혹시라도 누가 볼 세라 하얀 천을 넓게 피어 소녀의 뒷모습을 가리고 있다. 소녀를 위하는 양 천을 높게 들고서는, 그 천 위로 고개를 들어 소녀의 어깨를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이 응큼하다. 마치 ' 나 말고는 아무도 못 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문득 또 다른 소년,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황순원 작가의 소설 '소나기'에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년이 등장한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소녀가 감기에 걸릴 새라 소년은 수숫단을 이리 나르고 저리 날라 수숫집을 만든다. 소녀를 그 안에 앉히고는, 자기 자신은 그 밖에서 비를 맞던 모습! '아, 맵고 지려 못 먹겠다'던 자신의 말이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아, 주머니 속 조약돌만 쥐었다 피던 그 소년!

만약 소설 '소나기' 속 소년이 이 그림에 등장하였다면, 소년은 이번에도 소녀를 바로 보지 못하고 먼바다의 어딘가쯤에 시선을 두었을 테지. 어느 소년의 마음에나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그 소녀를 보호해 줄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소년의 가슴에는 한 줄기의 소나기가 쏟아질 것이다. 고요했던 바다는 거센 파도가 되어 그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나는 이 소년이 아프다.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이야기! 호아킨 소로야의 '해수욕장을 떠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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