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rcino의 <부유함을 퇴짜 놓는 큐피드>
나는 분홍색을 좋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분홍이나 연분홍이 아닌 핫핑크를 좋아한다. 나는 핫핑크 특유의, 그 강렬하고도 밝은 느낌이 좋다. 그러나 남들에게 핫핑크를 좋아한다고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였나 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 마음에 드는 핫핑크 티셔츠가 있어서 냅다 사 오기는 하였는데, 막상 입고 외출하려고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혹여나 내가 이 핫핑크 티셔츠를 입고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게이로 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에 엄청난 용기를 내어 학교에 그 티셔츠를 입고 나갔을 때에도, 그 날 하루 종일 주위의 시선들을 의식하며 얼마나 초조해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거리의 사람들은 나에 대한 오해는커녕 나에게 일절의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였다. 그렇게 애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의 행복을 구속하지는 말자고......
가끔 나의 몇몇 지인들은 내게 이야기한다. 분홍색은 ‘원래’ 여자들이나 좋아하는 색이라고. 그러나 나는 ‘원래’라는 단어 역시 ‘본래’ 없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써, 남자가 분홍을 좋아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태초에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하며 분홍은 원래 여자의 색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차이’와 ‘다름’을 긍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원래’라는 단어는, 그리고 ‘원래 그렇다’는 담론들은 일절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부정적인 요소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남자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으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역시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지 않은가.
나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만을 만족시키다가 끝나는 삶보다는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삶이 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은 어디까지나 내가 주인이요, 주인공이지, 남의 것이 될 수는 없다. 물론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나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공부해왔고, 학교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글을 써 왔고, 타인의 기대들과 타협하며 경제학을 전공했으니까........ 물론 지금의 나 자신 역시 아직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 자신이 대견스러운 이유는, 나 자신이 행복할 삶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논지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탈리아 걸작展에서 <cupid spurning riches> (부유함을 퇴짜 놓는 큐피드)를 보고 나서부터이다. 그림 속 큐피드는 주머니에 든 금화들을 바닥에 쏟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바닥에 놓여 있는 활에만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돈이라는 것은 '사랑' 그다음에 존재하는 어느 무엇에 불과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저 그림 속 큐피드라면 주머니 속 금화들을 쿨하게 버릴 수 있었을까? 아마 내가 저 그림 속 주인공이었다면 바닥에는 활이 아닌, 펜이나 붓, 맥주 병뚜껑 따위가 놓여 있었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열두발 상모가 놓여 있었을 지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돈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시인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느냐”고,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느냐”고 노래하였지만, 자본주의의 정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알 수 없는 게, 그리고 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에 구속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시선에 자본이라는 개념이 결합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이 나의 경제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은 나에게 늘 카프카의 ‘변신’처럼이나 가슴 아픈 주제이다. 내 어깨 위에는 날개가 없어 널 찾아가지 못하는 자옥 씨의 어느 사랑이야기처럼이나, 나의 이름은 김중배가 아닌 김정배라서, 순애 씨의 마음을 돈으로 사려는 엉큼한 마음씨도 없다. 그리고 그 유명한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슴에 가득 찬 조국과, 시야에 가득 찬 세계와, 뇌리에 가득 찬 예술에 대한 의지뿐!
황금만능주의의 오늘날, 우리는 돈이 없으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없다. (대학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공부한 경제학도로서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없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그는 더 많은 효용을 얻기 위하여 언제나 자본을 필요로 하고 갈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는 자’ 역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림 속 큐피드의 저 순수한 눈망울처럼이나, 늘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랬듯,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