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은 약하다. 그러나 그의 뿔은 강하다.

존 컨스터블의 <조슈아 레이놀즈 경의 기념비>

by 김정배

사람들은 사슴이 가진 뿔을 보고 매우 멋있다고 이야기한다. 곧게 뻗은 뿔이 마치 고목의 나뭇가지를 닮았다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는 일상에 지친 산 새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게끔 삶의 휴식처가 된다. 사슴의 뿔 역시 누군가의 지친 일상에 하나의 활력소가 되어줄 수 있다면 사슴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활엽수 나무들이 옆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이유는 나뭇잎이 햇살에 노출되는 표면적을 최대한 넓혀 광합성량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것! 그러나 가지가 너무 옆으로 퍼져버리면 가지는 이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버릴 것이다. 살기 위해 노력한 행동이 자신의 삶에 위험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가히 모순적인 일이다. 아마 사슴의 뿔도 이와 같을 것이다. 옆으로 길게 뻗은 사슴의 뿔은 싸움을 하기에 적합하다. 남을 공격할 수 있는 표면적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뿔이 커짐에 따라 사슴의 신체 역시 거추장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 달리는 데에 있어 그의 커다란 뿔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스치는 나뭇가지에 뿔이라도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의 인생은..........

시인은 사슴이요, 그의 시는 뿔이로다.
죽은 어느 사슴의 뿔이 오늘날에까지 그 위용을 떨치듯이, 죽은 어느 시인의 시상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다. 그의 시는, 혹은 그녀의 시는, 그야말로 장엄하고 넓게 뻗은 사슴의 뿔이다. 많은 포식자들이 사슴의 몸뚱아리를 노리고 달려들지만, 살아서 그를 지켜주는 것도 오직 그가 가진 뿔뿐이오, 죽어서 그가 남기는 유일한 것 역시도 오직 뿔일 따름이다.

사슴은 약하다. 그러나 그의 뿔은 강하다. 따라서 어떤 사슴은 강하고, 어떤 사슴은 약하다. 모든 사람이 뿔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사슴은 아니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은 사자가 되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낙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말이다. 나는 낙타가 되느니, 사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공격하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삶의 철학에 있어서 말이다. 그러나 사슴이 가진 뿔만큼은 나도 갖고 싶을 따름이다. 사슴의 뿔을 가진 사자의 정신, 사자의 정신을 가진 사슴의 뿔,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사자가 사슴의 뿔을 얻는 순간, 더 이상 사슴도, 사자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그것은 슬픈 일이다. 오늘도 나는 내 자신에게 말한다. 가슴에는 조국을, 시야에는 세계를, 심장에는 사슴의 뿔을, 두 눈에는 사자의 용맹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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