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세요, 12세면 숙녀예요

오윤의 <마케팅II : 발라라 >

by 김정배

그림 위쪽, 하얀 얼굴의 여인을 볼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심플하게 잘 그려진 포스터 정도로만 생각했다. 시선이 그림의 중간 부분으로 내려가서부터 '아~' 하는 감탄사가 멈추지 않았다.

그림의 중간 부분에는 '가꾸세요, 12세면 숙녀예요'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리고 그 밑으로 12세로 보이는 여러 소녀들이 등장한다. 인근 밭에서 막 비료를 주고 온 듯한 소녀도, 머리에는 광주리를 이고 손에는 막걸리 주전자를 든 소녀도, 바께스로 물을 나르는 소녀도,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방금 전까지 미싱질을 했음 직해 보이는 공순이 소녀도, 수줍게 책가방을 들고 있는 교복 입은 소녀도, 소녀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까맣다.

12세면 얼굴을 가꾸어야 할 나이라는데 그림의 소녀들은 도대체 무엇들을 하느라 저리도 얼굴이 시커멀까. 요새 정치하시는 분들께서 유행어마냥 쓰시는 말처럼이나 이 소녀들도 어지간히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

어렴풋이 저 소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녀들도 마음 한 켠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화장품을 바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다만 현실에 휩쓸려 사는 그네들에게, 꾸밈이란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림은 위 쪽의 하얀 소녀와 아래쪽의 까만 소녀들을 대조시키며, 까만 소녀들을 일종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고 나면, 오히려 위 쪽의 하얀 소녀가 웃음거리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하루하루를 가난과 싸워야만 하는, 그래서 자신을 꾸미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는 소시민들의 삶과 비교하였을 때, 가난과는 동 떨어져 자신의 치장에만 신경 쓰고 있는 하얀 소녀야말로 '정신을 가꿀 때이다. 12세면 숙녀예요.'

뭐, 이 그림이 그려졌던 때로부터 세월도 제법 흘렀고, 준수한 외모 역시 하나의 경쟁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에, 까만 소녀들 마냥 아예 화장을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다만 까만 소녀들이 살았음직한 시대의 상황들을 떠올려 보자니,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어야만 했던 그녀들의 꿈과 목표와 기회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이들 소녀에게 빚을 졌다. 공순이라 불리었던 많은 소녀들이 적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부지런히 자신의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노고를 잊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애석하기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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