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시 소녀의 이야기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by 김정배

어렸을 적부터 나는 동물을 참 좋아하였다. 우리 집에는 노랑 빛깔의 잉꼬 한 쌍과 몇 마리의 금붕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동네의 강아지들을 쫓아 뛰어다니기 바빴다. 앞 이가 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언니와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집에서 몇 키로 떨어진 연못까지 걸어가 개구리 알과 올챙이를 한 병 가득 담아오는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나는 집시가 아니었다. 집도 있었고, 나를 반겨주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있었으니까.) 내가 올챙이를 잡아오는 날이면 언니는 어김없이 냄비에 계란 몇 알을 넣어 삶았다. 그러면 우리 엄마도 어김없이 나와 언니의 등짝을 거침없이 때리셨다. 언니는 삶은 계란의 흰자만 벗겨내어 나의 입에 쏙 넣어주었고, 노른자는 손가락으로 뭉개어 올챙이의 먹이로 주었다. (그때의 추억 때문인지 나는 요즘도 가끔 그때 먹던 계란 흰자가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노른자는 생각나지 않는다. 왜냐면. 노른자는 올챙이나 먹는 거니까!)

하루는 잉꼬를 나의 어깨에 앉히고 논다며 새장에서 꺼내다 한 마리를 놓쳐버렸다. 잉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저만치 날아가 버렸고 나는 부모님께 혼날 생각에 겁이 난 나머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잉꼬를 쫓았다. 그리고 그 날은 우리 집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나는 내 눈에 띄는 강아지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몇 달을 생활해보니 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한 무리 집시와 생활하고 있었다. 나의 친한 친구, 에스메랄다를 만나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지 적었는지는 나도, 그녀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임은 분명하다. 나는 에스메랄다가 연주하는 만돌린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곤 했고, 그녀는 나를 위해 기꺼이 만돌린 연주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한 생활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낙타를 찾아야겠다며 내가 집시 무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낙타를 만나고 싶었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 그 볼록한 혹을 껴앉고 잠을 청하면, 왠지 낙타는 사막을 건너 나를 꿈의 나라에 안내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낙타를 만나지 못하였다. 낙타를 찾아 이렇게 사막을 헤맨 것도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낙타의 혹 대신, 그 혹을 닮은 모래 언덕에 머리를 기대어 잠을 청한다. 내일 아침, 새로운 태양과 함께 한 마리의 낙타가 나의 앞에서 나를 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눈을 감고 에스메랄다와 함께 부르곤 하였던 그 노래를 부른다.
"아이는 꿈을 좇아 어른이 되고
조금씩 잊혀져 가지, 우리가 떠나온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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