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럽의 상모 버스커>
2014년 6월 17일, 유럽행 비행기 안
앞뒤로 가방을 메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나의 셰어 메이트 한중이 내게 물었다. "정배형에게 워킹 홀리데이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나에게 워킹 홀리데이란 <한 여름밤의 꿈>이었다고. 나에게 멜버른에서의 생활들은 매우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나날들이었다. 마치 기분 좋게 하늘을 날고 있는, 언제까지라도 깨고 싶지 않은 꿈과 같은 날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림 속 남자 주인공은 화면 왼쪽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고개는 여전히 오른쪽을 향하여 있다. 그는 그가 떠나온 곳에 무엇이라도 놓고 온 것일까? 나는 이 그림을 읽음에 있어 오른쪽과 왼쪽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씀에 있어, 많은 문화권 국가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손을 이동한다. 손에 잉크를 묻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글쓰기로 인해 우리의 시선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데 익숙하다. 많은 영화에서, 그리고 많은 만화에서 대개의 화면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은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가 본래의 방향으로부터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의 돌려진 고개에서부터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화면의 채색에서부터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화면 왼쪽에 회색과 검은색 계통의 무채색들이 많은 반면, 화면 오른쪽에는 빨강, 초록, 노랑과 같은 유채색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인다. 한마디로 그는 무지갯빛 도시에서 색깔 없는 도시를 향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살았던 도시의 빛깔을 잊지 않기 위하여 오른쪽으로 고개를 향한 채 왼쪽으로 가고 있는지도........
나는 이미 멜버른이 아닌, 그리고 호주가 아닌,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호주에 건너왔을 때에도 지금처럼이나 한국을 그리워하지는 않았었는데, 아마도 요 며칠 동안은 멜버른에 대한 향수병으로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한 여름밤의 꿈은 두 달간의 유예기간을 얻었다. 다만 호주에서의 꿈이 아닌, 유럽에서의 새로운 꿈이다. 또 어떤 친구들과 얼마나 좋은 추억들을 만들지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물론 11개국을 돌며 펼칠 나의 채상과 열두발 상모 거리공연도 벌써부터 나를 가슴 벅차게 한다.
나는 지금 그림 속 주인공처럼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무지개 빛 동네에서, 그와는 또 다른 빛깔의 나라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2개월 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무채색으로 가득한 흑백의 삶은 아니려나? 아니면 새로운 무지갯빛 색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든, 멜버른에서의 그 좋았던 추억들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림으로, 소설로, 때는 동화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도시 위를 나는 샤갈의 그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