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에두아르 피코의 <에로스와 프시케>
프시케는 한 왕국의 세 공주 중 막내로 태어나 아름다움으로 그 이름을 날렸다. 프시케의 아름다움을 질투한 미의 여신 비너스는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를 시켜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사람과 프시케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든다. 그러나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반한 큐피드는 실수로 자신의 몸에 화살을 찌르며 프시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큐피드가 프시케에게 말하기를, 오직 완전한 어둠 속에서만 자신을 만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면 영원히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프시케는 자신의 남편을 바라볼 수도, 그리고 자신의 남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자상함과 행복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갔다.
한편 프시케를 시기한 그녀의 두 언니는 프시케의 남편이 괴물일지도 모르니 밤에 그의 얼굴을 확인해 보라고 부추겼다. 마음이 흔들린 프시케는 등불을 밝혀 큐피드의 얼굴을 직접 확인한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때 등불의 기름이 큐피드의 어깨에 떨어졌고, 이에 잠에서 깬 큐피드는 프시케의 불신을 꾸짖고 떠나버린다.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영혼’ 또는 ‘나비’를 뜻한다. 프시케를 표현한 미술작품에서 나비의 이미지를 종종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프시케라는 이름이 ‘영혼’과 ‘나비’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으로 상징되는 신화 속 프시케의 자리에 우리 자신을 한번 대입해보자. 우리 각자의 영혼은 본래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며 태어났다. 그리고 그 매력은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하여 억지로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늘 행복을 발견하고, 그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행복을 의심하는 순간, 자신의 행복과 함께 했던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엎어진 물을 다시 되 담을 수는 없다. 자신의 지난 실수는 깨끗이 인정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다가올 미래를 보다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프시케가 큐피드의 사랑을 되찾기 위하여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그러한 까닭이라 하겠다.
우리의 영혼은 나비와 같아서 아름다운 날개 짓으로 하늘 높이 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연약함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추락할 수도 있다. 그 추락으로부터 몸을 다시 추슬러 하늘 높이 날개 짓을 할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아 날개를 접고 살 것이냐는 오로지 우리들 자신의 영혼의 깊이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신병을 뜻하는 psychosis가 프시케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